사람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순간 7가지
2016-04-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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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이기적인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다. '이기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이기적인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다.
'이기심'이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지도 않다. 이기심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다. 굳이 극단적 상황에 놓이지 않아도, 인간의 이기심은 일상 생활의 표면 위로 쉽게 떠오른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국어사전은 '이기'를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내 이익을 조금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
인간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순간 7가지를 정리해봤다.
1. 오랫동안 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릴 때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다리는 아픈데, 늘어선 인파 행렬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확 새치기 해버릴까?" 내 앞에 선 사람도 나만큼 오래 기다렸음을 안다. 하지만 당장 내가 힘들고, 귀찮다. 남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에 불과하다.
2. 대중 교통 이용하다가 빈 자리가 눈에 띄었을 때
출퇴근길, 혹은 등·하굣길 버스, 지하철 승강장은 피로에 찌든 사람들로 무진장이다. 제발 '편하게 앉아서'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인원은 넘쳐나고, 좌석은 모자르다. 잠깐의 머쓱함만 감수하면 편안한 출퇴근, 등·하굣길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들어, 마침내 한 자리를 꿰차고야 마는 이유다.
3. 연애 중에 내가 '갑'이란 걸 느꼈을 때
연애는 '불공평'하다. 어느 한 쪽으로 반드시 사랑의 추가 기운다. 필연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연애 중, 스스로 '갑'이라는 걸 느낄 때가 문득 있다. 추가 내게 기울었음을 인지한 순간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확인하겠다는 미명 아래 '갑질'을 시작한다.
4. 사람은 많은데, 음식은 하나만 남았을 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자원은 제한적이다. 누가 저 마지막 음식을 차지할 수 있을까. 눈치 게임을 벌인다. 누군가 알아서 "난 안 먹겠다"며 기권하면 좋겠지만, 섣불리 이 눈치 게임을 드러내선 안 된다. 음식 하나를 놓고 누가 먹네, 마네 입씨름하는 일. 참 볼품 없기 때문이다.
맨 처음도 내 것, 맨 마지막도 내 것이었음 하는 게 모든 이의 마음이다.
5. 시험 준비할 때
나쁜 결과를 얻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상황이야 어떻든, 모두 1등을 목표로 한다.
시험은 응시자가 노력한 만큼 정직하고, 정확한 결과를 내놓는다. 하지만 시험 결과를 받아든 사람들은 대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재수가 없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며 자기 합리화 하기 바쁘다.
한 것 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기 바라는 것은 '요행'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깨닫지 못한다.
6. 상대방이 내 생각,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낄 때
"난 이 만큼 널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던진 순간부터, 관계는 '계약'으로 변한다. 내가 이 만큼 해주면, 너는 이 만큼 해주기로 양해각서를 쓴 것도 아니다. 네가 얼마만큼 뭘 했든 간에 아닌 건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다.
당신이 투자한 생각, 눈물, 시간만큼 상대방이 무언가를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네가 내 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읍소하는 건 결국 '뿌린대로 거두고 싶다'는 뜻을 보여준 꼴밖에 안되는 셈이다.
7. 문득,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독일의 염세적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1788~1860)에 따르면, 자살은 오히려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이기적 행위다. 고통에 못 이긴 죽음은 본질적으로 지금의 괴로움을 털고 안정을 찾으려는 의지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락사와 같은 특수한 상황은 제외다.
죽음이 궁금해서, 그냥 죽고 싶어서 자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외부 환경과 내면적 고민이 자살을 부추긴다.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살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강력한 자살 충동은 반대로 삶을 향한 의지가 들끓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고 싶을 만큼 살고 싶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