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비싼 국내 화가' 김환기에 대한 흥미로운 8가지 사실

2016-06-0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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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서울 강남구 K옥션에서 열린 김환기 작가 작품 '창공을 날으는 새'가 경매

지난 3월 9일 서울 강남구 K옥션에서 열린 김환기 작가 작품 '창공을 날으는 새'가 경매 현장. 12억원에 낙찰됐다 / 연합뉴스

 

세상을 떠난 지 42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국 미술계 '최고 스타'는 여전히 김환기다. 

김환기 작가 작품은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연달아 경신 중이다. 지난해 10월 홍콩 경매에서 1971년작 푸른 점화가 47억 2100만원에 팔리며 박수근 '빨래터'를 제치고 한국 미술품 최고가 자리를 꿰찼다. 지난 4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점화 1970년 작품이 48억 6750만원에 낙찰됐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달 29일(현지시각)에는 제 19회 홍콩경매에서 1971년작 '무제3-Ⅴ-71 #203'이 45억 6240만원에 낙찰됐다. 

국내 최고가 작품 1~3위가 2016년 6월 현재 모두 김환기 작가 작품으로 채워졌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국내외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일 비싼 화가'라는 화려한 수식이 김환기 작가 작품세계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역할까지 한 건 아니다. 시장 가격 1위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그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건축상을 받을 만큼 아름답게 지어진 환기미술관 내부. 김환기 작품세계를 반영한 건축물이 인상적이다. 자연광이 풍부히 들어와 시간대에 따라 작품 느낌도 달라진다 / 이하 위키트리(환기미술관 제공)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조용한 골목 끝자락에 있는 환기미술관을 방문한 건 이 때문이다. 1992년 11월 완공한 환기미술관은 환기재단이 설립한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김환기 작가 작품 약 2400여점이 이 재단 보유하에 관리되고 있다. 

이곳에선 1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특별기획전이 진행 중이었다. 올해 전시 주제는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다. 성민아(42) 큐레이터 설명에 따르면 1950년대 초기 작부터 전성기 대표작, 1974년 유작까지 아우르는 역대 최대 규모 전시다. 

김환기, 2-X-73 #321 Air and Sound Ⅰ, 1973, 코튼에 유채, 264x208cm

 

김환기, Duet 22-Ⅳ-74 #331, 1974, 코튼에 유채, 178x127cm

 

환기미술관 곳곳을 둘러보며 성 씨와 나눈 대화를 읽기 쉽게 정리했다. 김환기 작가에 대해 덜 알려진 흥미로운 사실 8가지다. 

1. 유복했지만 '금수저'라 성공한 건 아니다
김환기와 김향안, 1957, Paris / 위키트리(환기미술관 제공)

 

김환기 작가는 1913년 전남 한 섬에서 태어났다. 섬 유지였던 아버지 덕에 꽤 넉넉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일본 유학도 이런 가정 환경 덕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유복한 집안 환경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이어졌던 그림에 대한 열망과 도전 덕이 크다. 젊은 시절 이미 홍대 미대 학장을 할 만큼 성공했음에도 작가는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했다. 

'달항아리',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대표작은 그가 파리로, 뉴욕으로 도전을 이어갔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2. 초기작에도 추상화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김환기 작가가 남긴 드로잉들. 드로잉 작품은 그가 그림을 그리며 고민한 흔적을 더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 연합뉴스 
젊은 시절에 그린 초기작에는 1920년대 유럽 미술계에 유행하던 미니멀리즘, 아방가르드 화풍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다. 일본 유학 시절 김환기 작가는 이런 화풍을 잇는 스승들에게 사사를 받았다. 
3. 구상에서 추상으로 형식이 바뀌었을 뿐, 담고자 한 내용은 일관성 있다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에는 초기작부터 유작까지 작가 대표작이 역대 최다 걸린 전시가 진행 중이다 / 이하 위키트리(환기미술관 제공)

 

성 씨는 많은 관객이 '왜 갑자기 김환기 작가가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냐'는 질문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환기 작가의 추상화는 한국 특유의 미감,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하면 보편적 언어로 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초기부터 이어지는 김환기 작가 주제의식이다. 그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보면 이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4. 아내 김향안 여사에게 상당히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이었다
김환기와 김향안, 1968, 뉴욕 아뜨리에, Winston 촬영, New York

 

김향안 여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할 만큼 당대 최고 '엘리트'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지인 소개로 알게 되어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었다. 환기미술관에는 연애시절 김환기 작가가 보낸 편지, 홀로 뉴욕에 머물며 보낸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그리운 향안", "보고싶소" 등 다정함이 마구 드러나는 글귀와 그림이 인상적이다. 

5. 키가 185cm 이상인 '훈훈한 남자'였다
김환기, 1972, 뉴욕 아뜰리에, New York (2)

 

현재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큰 키다. 김환기 작가 생전 사진을 보면 외국인 옆에 있어도 체격 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가 큰 키 때문에 목 디스크를 앓았다는 것이다. 뉴욕 체류 시절, 작가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큰 캠퍼스를 테이블 위에 눕혀 놓고 작업을 했다. 목을 쭉 뺀 자세로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려야 했던 작가는 말년에 목 디스크로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한다.

6. 이중섭 화가 엉덩이를 발로 찬 적이 있다 
이중섭 작가. 이중섭 작가와 김환기 작가는 생전에 우정을 나눴다

 

생전에 친구 사이였던 두 작가가 또다른 작가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을 때 벌어진 일이라 한다. 가난했던 이중섭 작가는 초대받은 친구 집에 어떤 것도 사갈 수 없었는데, 이게 너무 미안해서 내내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를 본 김환기 작가는 이중섭 작가 엉덩이를 차며 그만 울라고 다그쳤다. 이중섭 작가를 나무랐다기보단 막역한 친구를 달랬다고 할 수 있겠다. 감수성이 매우 섬세했던 이중섭 작가와 호방한 성격의 김환기 작가 성격이 명확히 대조되는 일화다.   

7. 타고난 재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굉장한 성실파다
김환기, 7-Ⅶ-74, 1974, 코튼에 유채, 235x183cm. 미완성 상태로 남겨진 유작. 색이 덜 칠해진 흰색 부분 마저 작품 일부로 보일 만큼 아름답다

 

그의 그림 구도와 색은 지금 봐도 세련됐다. 일례로 '달항아리'는 공중에 과감하게 항아리를 띄운 점, 항아리와 나뭇가지 등 꼭 필요한 소재 외 일체를 생략한 수평·수직 구도 등 매우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을 자랑한다. 색깔에 있어서도 그의 감각은 탁월하다. 김환기 작가는 색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주조색(작품의 주 분위기를 결정하는 색)은 푸른색이다. 구상화부터 추상화까지 그의 작품은 저마다 빛깔이 다른 다채로운 푸른빛을 띈다. 

그러나 작가는 재능만으로 '최고 작가' 반열에 오른 건 아니다. 김환기 작가는 1956년부터 약 3년 8개월 동안 파리에서 개인전을 무려 7회 펼쳤다. 뉴욕에 머물던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추상 전면 점화만 약 400여점을 그렸다. 그가 남긴 일기에는 어떻게 하면 좀 더 교감을 높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실험을 거듭한 나날이 빼곡이 적혔다고 한다. 

8. '국내 제일 비싼 작품' 반열에 오른 김환기 작가 전성기 대표작,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김환기, 16-Ⅸ-73 #318, 1973, 코튼에 유채, 265x209cm

 

김환기 작가 작품 상당수는 환기재단이 보유하고 관리한다. 

주목할 점은 김환기 작가 작품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전면 점화 상당수가 환기재단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뉴욕에 머물며 그린 대규모 대표작들이다. 

재단에서 엄격히 관리되는 김환기 작품은 거래가 불가능하다. 언제든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관객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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