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퍼레이드 ‘노출’은 음란한 걸까

2016-06-10 17:40

add remove print link

한국 최대 성소수자 행사인 ‘퀴어문화축제’가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17년째 이어진

한국 최대 성소수자 행사인 ‘퀴어문화축제’가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17년째 이어진 퀴어문화축제는 모든 종류의 성소수자(queer) 권리를 지지하기 위한 행사다. 

지난해 6월 퀴어문화축제에서 화두가 됐던 것은 성소수자 권리만이 아니었다. 당시 약 3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축제에서 몇몇 참가자들은 속옷만 입거나, 신체 일부를 노출한 채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지난해 6월 27일 퀴어문화축제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신체를 노출했다. / 이하 위키트리

  

일부 언론은 노출이나 선정성을 중심으로 퀴어문화축제를 보도했다. 2014년 행사처럼 ‘빤스 퍼레이드’라는 노골적인 비하는 없었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노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아직 열리지 않은 올해 행사에 대해서도 일부 교계와 시민단체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기독당은 서울광장 퀴어문화축제 사용허가 취소가처분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기독당 서울시당위원장 김영일 씨는 “지난해 퀴어문화축제가 말로 담기 어려울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행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며 “(주최 측이) 음란하고 퇴폐적인 행위를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 1일 서울시민 김모씨가 퀴어축제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공연음란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정에서 김씨는 “지난해 아이들과 함께 축제를 봤는데 옷을 벗고 음란 행동을 하는 등 부적절하다고 느꼈다”며 “이런 행위는 법이 막아줘야 한다”고 했다. (☞바로가기)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 의견에는 노출이나 선정성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던 참가자들은 노출에 대한 언론 보도나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진이 다소 과장됐다고 말한다. 

여성 단체 여성 민우회 활동가 문보미 씨는 “몇 년간 퀴어문화축제를 오면서 눈살을 찌푸릴 노출을 본 적이 없다”며 “일부 언론이 노출을 중심으로 기사를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출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말 행사에 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문 씨는 “성기 노출이 아닌 합법적인 선 안에서 노출은 괜찮다고 생각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검찰은 노출 행위로 고발된 참가자들에게 전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같은 혐의로 고발된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과다노출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27일 퀴어문화축제에서 퀴어 퍼레이드 행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즐기고 있다.

 

서울광장 운영을 심의하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임시회가 지난 3월에 열렸다. 당시 회의록에는 지난해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 '노출'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회의록(☞바로가기)에 따르면, 위원 중 한 명은 “그 많은 인원이 참여한 사람 중에서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측에서 본인들에게 유리한 사진만을 찍어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모습이 전체적인 흐름을 드러낼 정도였다면 당시 언론에서 상당히 많은 비판보도와 지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퀴어문화축제 노출을 보도한 언론사는 일부였고, 특히 종교 매체에 집중돼 있었다.

성소수자 단체나 여성 단체 활동가들은 퀴어문화축제의 노출에 대한 비판이 성소수자 혐오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문보미 씨는 “노출이 문제가 안됐더라면, 다른 점을 욕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 혐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단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 웅 씨는 “란제리와 수영복 차림 이미지가 넘치는데, 포털과 언론은 아무 여과나 문제제기 없이 이미지를 유통한다”며 “퀴어퍼레이드가 노출로 불쾌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왜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출과 전혀 상관없는 ‘동성애 OUT’, ‘항문성교=AIDS’라는 모욕적이고 반인권적인 구호를 들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퀴어문화축제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기독교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퀴어문화축제에 3년 연속 참석했던 로카 씨는 올해 열리는 행사에도 갈 예정이다. 로카 씨는 “사회에서 괴상한(queer) 존재로 규정되어 온 성소수자들이 계속해서 존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시위”라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은 투쟁 방법의 일종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로카 씨 말처럼 퀴어퍼레이드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음지에 있던 성소수자의 벗은 몸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일종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퀴어 퍼레이드는 1969년 6월 28일 벌어진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6월 중에 열린다. 1969년 당시 스톤월 인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들을 위한 작은 술집이었다. 경찰들은 이성의 옷을 입은 드래그퀸, 동성애자를 단속했고 많은 성소수자들은 도발적인 복장으로 시위했다. 이후 일본 도쿄, 미국 뉴욕, 스페인 마드리드 등 전 세계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들이 특이한 복장으로 참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 한 참가자가 셀카를 찍고 있다. / 텔아비브 = 로이터 뉴스1

 

11일 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은 노출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 예정이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참가자들이 축제를 어떻게 즐길지는 본인의 자유”라고 밝혔다. 그는 “단, 참가자에게 지나친 노출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 역시 노출이 행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몸을 드러내는 것이 단순히 음란성을 띄는 노출이 아니”라며 “사회에 억눌려져 있던 자신의 성에 대해 참가자들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눈을 통해 판단하시는 데, 직접 퀴어문화축제에 나오셔서 판단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퀴어퍼레이드의 노출이 단지 노출 그 자체로만 소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웅 씨는 “수만 명이 참여하는 성소수자 축제에서 (여론이) 노출로만 수렴되는 것이 축제에서 나오는 다양한 풍경들을 얼마나 담을 수 있을지 우려가 생긴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에서 노출이라는 자극적인 문구 외에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home story@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