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필요없어" 내가 쓴 책, 직접 출판해봤다
2016-06-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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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연필진'과 안내서. 여기에 연필 한 자루가 세트다. / 이하 위키트리"요즘 사

"요즘 사람들은 책을 너무 안 읽어"라는 말이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2016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15년 사이 전국에서 서점 2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반면 '독립출판물'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독립출판물은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제작해 유통하는 책을 말한다.
독립출판물 전문 책방 '헬로인디북스' 이보람 대표는 "처음 우리 가게를 열었을 때만 해도 독립출판물 책방이 전국에 10곳도 채 안 됐다. 지금은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동네 책방만 10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헬로인디북스를 거쳐 책을 판 개인만 600명 정도다. 하루에 한 권 이상, 한 달에는 4~50권에 달하는 책이 입고된다고 한다.


디자이너 황성진 씨가 제작한 잡지 ‘연필진(zine)’은 독립출판물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이다. 황 씨는 ‘연필진’을 “가내 수공 소량 생산 매거진”이라 표현한다. 그 역시 워크숍을 계기로 '연필진'을 기획했다. 연필진은 연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다.

한번 만들면 몇 쇄고 다시 찍어낼 수 있는 책들과는 달리 '연필진'은 한 번에 12권만 만들어진다. 12는 연필 한 다스를 의미하기도 하고 디자이너라는 생업과 병행하면서 만들 수 있는 최대치다.

처음엔 "이 작은 책을 누가 살까" 싶었던 '연필진'은 재고가 없어 독자들이 전시용 샘플을 사갈 정도로 인기있다. '연필진'은 원가 3배인 1만 2000원에 판매된다.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려면,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 자본으로 디자인·편집·제본·유통·판매·홍보까지 모두 도맡아야 한다. 독립출판물을 만든 사람을 작가 대신 '제작자'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수요가 아니라 오롯이 제작자 의지만으로 제작된다는 점도 상업출판과 다르다. 내용은 물론 책 디자인, 크기, 두께, 글씨체, 종이 질감에서도 제작자 개성이 100% 반영되는 콘텐츠다.
이렇게 만들어진 출판물은 작은 엽서에서부터 A4용지에 한글 파일로 인쇄한 시집, 수백 페이지짜리 양장본까지 형태와 내용이 모두 제각각이다. 상업출판물보다 주제도 가볍고 개인적이다.
이런 독립출판물을 접한 사람들은 "나도 만들고 싶다"를 넘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헬로인디북스'를 찾은 임은비 씨도 "여행과 그림 그리기,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언젠가는 나도 다른 제작자들처럼 여행 후기를 그려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보람 대표에게 "어떻게 만드냐", "제작 비용이 얼마나 드냐”고 질문하는 손님도 많다. 그때마다 그는 다른 책방에서 주최하는 독립출판물 제작 워크숍을 추천한다.

책을 인쇄용 파일이 아닌 jpg 형식으로만 만들어 인쇄소 사장님에게 욕을 듣기도 했다는 주먹구구식 일화는 이제 옛말이다. 워크숍에서는 내가 원한다면 만들고자 하는 책에 잘 맞는 인쇄소까지 소개해준다. 워크숍은 독립출판이 좀 더 쉬워진 계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워크숍 때문에 책이 획일화된다는 비판도 있다. 가령 판형이 똑같은 사진집 몇 권이 입고됐는데 알고 보니 같은 워크숍에서 제작된 책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독립출판은 질을 따지는 시장이 아니다. 이렇다 정의 내리기조차도 어려운 콘텐츠이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제작자 만족도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자기만의 콘텐츠를 녹이고 만들고 싶은 형태로 만드는 게 최고의 독립출판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걸 책으로 제작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을 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대학 졸업반인 윤자영(23) 씨는 1년 동안 본 영화 후기 100편을 엮어 지난 4월 '어제 극장에서 토끼리를 만났어'(이하 '토끼리')를 출판했다.

윤자영 씨는 영화를 본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하기 위해 독립출판을 마음먹었다. 그 역시 출판을 위해 워크숍을 찾았고 '토끼리' 500권을 인쇄했다.
독립출판물 대부분은 일반 서점에서는 판매되지 못한다. 도서 검색을 위해 ISBN(국제 표준 도서 번호)가 필요한데 ISBN을 신청하려면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씨는 "얼마 전 '토끼리'라는 이름 상표 등록을 마쳤다. 가능하다면 '토끼리'를 1년에 한 권씩 만들어 일반 서점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올해를 기준으로 독립출판물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 예상한다. 독립출판물을 파는 책방 대부분은 주로 2년 전에 많이 생겼다. 따라서 건물 임대 계약 '2년'이 끝나가는 시기가 고비다. 책방이 유지되느냐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서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히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독립출판물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도 보인다.
*나만의 책 만들기 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