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끝나면 각자 하와이" 김보통 작가 인터뷰

2016-08-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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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 '내 멋대로 고민 상담' 웹툰 이미지 / 위키트리,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김보통 작가, '내 멋대로 고민 상담' 웹툰 이미지 / 위키트리,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김보통: 우리 내년에 하와이 놀러갈 거예요.

기자: 워크숍인가요?

김보통: 워크숍 아니에요. 워크숍, 세상에서 제일 싫어해요.

(어시스트 분들) 따로따로 항공권 끊어드릴 거예요, 알아서 갔다 오라고.

꼭 하와이어야 하는 건 아니고 가고 싶은 나라로…

부럽다... / giphy

최근 어시스트 정규직 공고로 화제가 된 작가가 있다. 웹툰 ‘아만자’, ‘D.P-개의 날’로 알려진 김보통 작가다.

그는 지난 3월 SNS에 ‘근무시간 5시간/정규직 어시스턴트 월급 100만원(☞바로가기)’이라는 공고를 내걸어 SNS 사용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공고 조건보다 열악한 실제 어시스트 처우에 비하면 ‘꽤 괜찮은 대우’라는 평이다.

실제로 만화가 작업을 보조하는 어시스턴트들은 최저 시급보다 못한 돈을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폭언을 듣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알려졌다.

당시 김보통 작가는 공고를 올리면서 “업계 상당수 어시님들은 정규직이 아니다. 노동 강도가 절대 낮지도 않은데 급여 수준은 생각하는 것보다 높지 않다. 나 같은 비루한 만화가도 어시스턴트에게 이 정도 노동 환경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정규직 어시스트 공고로 업계에 반향을 일으켰던 김보통 작가를 지난 16일 만났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였다.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어시스트 권유리, 손효림 씨도 만나볼 수 있었다.

김보통 작가는 인터뷰 중간중간 “제 만화를 실제로 그려주시는 두 분이다. 저는 이름만 빌려주는 바지사장”이라는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덧붙여 "현재 어시 분들이 받는 월급은 120만 원"이라고 앞서 화제가 된 공고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김보통 작가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그는 앞서 눈길을 끈 어시스트 공고 내용부터 작품 아이디어 등 다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줬다.

지난 16일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만난 김보통 작가. 그는 필명 '김보통'에 대해 "발음이 예뻐서 그렇게 지었다. 필명이 '김보통'이라 그런지 알랭드 보통 좋아하냐는 이야기도 종종 듣기도 한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고 답했다 / 위키트리

- 요즘 어떻게 지내나

한국에선 주로 외주작업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블로그에 만화가들 연재하는 란이 있는데 현재 그곳에서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그외 보건복지부 웹툰 등 다양하게 하고 있다.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웹툰 이미지, 김보통 작가는 지난 7월부터 엔씨소프트 블로그에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바로가기) 게임 NPC(Non-Player Character) 설정을 통해 녹록치 않는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다뤘다 / 엔씨소프트 블로그 (작가 동의를 받고 게재했습니다)

- 최근 어시스트 정규직 고용 공고로 화제가 됐다.

상 받고 책도 내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면서 어시님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다. 죄책감 그런 게 있어서 더이상은 싫더라.

그래서 페이스북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글을 썼다. 페북에 썼으니 꼭 지켜야 하지 않나. 그게 무서워서 지키려고 페북에 글을 썼다. 내 양심을 못 믿기도 하고.

저는 간사하고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페이스북이나 인터뷰에 “어시스턴트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박제해두지 않으면 혼자 독식한다.

내년에 연재 끝나고 나면 하와이 놀러 갈 거다. 어시 분들 항공권 끊고 알아서 다녀오라고 할 생각이다. 이런 얘기 왜 할까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에 딱 박제가 되면 안 갈 수가 없다.

인터뷰에 박제를 해놔야 나중에 제 마음이 흔들려도 '안돼. 내가 그때 위키트리랑 인터뷰 때 그렇게 말했으니까 보내드려야해' 이렇게 강제력이 생긴다. 사람 마음이 되게 간사하다.

작업실 옮기면 체육관도 끊어드리기로 했다.

- 데뷔작 ‘아만자’가 미국,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연재 예정이라고 들었다. 지난해에는 ‘아만자’로 부천만화대상에서 시민만화상를 수상하는 등 국내외로 인기 끌고 있다

상은 받았지만 아직 ‘대중적이다. 인기 있다’ 그 수준까지는 아닌 거 같다. 그냥 먹고 살 정도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아만자' 웹툰 이미지, '아만자'는 암환자를 발음대로 쓴 말이다. 평범한 젊은 남성이 위암말기 진단을 받은 뒤 투병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웹툰이다. 김보통 작가 데뷔작으로 지난 2013년 '올레마켓'에서 연재해 인기를 끌었다. 현재는 '레진코믹스'에서 재연재하고 있다 /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작가 동의 하 게재했습니다)

- 최근 일본에서 책도 출간되고, 일본 매체와 인터뷰도 했다

한국 인터뷰랑은 좀 다른게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하더라. 제사 지내는 느낌이었다.

사전 질문지가 정해져 있고, 추가 질문 없이 딱 그것만 물어봤다. 중재하는 편집자나 PR 담당자 와서 사회도 봤다. 제 신상을 되게 세밀하게 여쭤보고 생년월일, 출생지, 거주지까지 물어보더라.

김보통 작가는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완전한 '익명'으로 등장한다. 이름, 나이는 물론 얼굴도 공개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일본에선 얼굴 팔릴 일이 없다. 그런데 한국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 모르는 사람한테 알려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알던 사람한테 ‘쟤 만화그려?’ 이렇게 알려지는 게 싫어서다. 만화가 김보통으로 불리고 싶지, 내가 아는 누구 이런 식으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 김보통 작가 제공(러브모멘트 스튜디오)

당시 한국인 작가로서 일본에 책 낸 소감 등 질문을 받았다. 비유하자면 메이저리그,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었다. 만화도 일본이 가장 큰 시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큰 물에 들어섰구나 그런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큰 물인지 체감해 절망하기도 했다.

- 일본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거 같다

김보통 작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팬으로 일본 할머니를 꼽기도 했다. 그는 "'아만자' 초기 때부터 봐주신 분이었다. 문장구조가 쉽고 비문이 적어서 한글 공부하기 기에 좋다고 하더라. 그분이 본다고 생각하니까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해야지' 식으로 더 신경 쓰게 됐다. 나중에 일본 서점에서 제 책이 나온 다음에 "책 나왔다"고 사진 찍어 보내주시기도 해서 기억에 더 남는다"고 했다.

제가 체감하기로는 저는 안 알려진 만화가가 맞다. 그런데 일본에선 매대 좋은 데 책(아만자)이 깔려 있고, 유명 매체들과 인터뷰하고 그러니까 저도 의아하다. 담당자들도 "왜 그럴까"하면서 의아해한다.

아무래도 '아만자' 소재인 암이 주요한 질병이고 굉장히 보편적인 소재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인들이랑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한국에서도 위암으로 죽는 사람 많냐"고 물어보더라. 그런 부분에서 동질감을 갖는 거 같다.

-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웹툰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원래 만화가를 꿈꾸었는지

못 해먹겠어서, 이대로는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 이런저런 다른 일…장사, 작곡, 로스쿨 등등 다양하게 했는데, 다 망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만화로 돈을 벌었다.

절대 만화가의 꿈을 갖고 그거 되려고 회사 그만둔 건 아니다. 만화가 되겠다고 회사 그만두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 어떻게 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성공한 케이스로 볼 수도 있는데

우선, 성공하지도 못했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회사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하는 사람 거의 없다.. 자유롭게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 그러다 안되면 누가 책임져줄 것도 아니고... 그런 것에 낭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은 가혹하니까...

운이 좋아 먹고살고 있긴 하지만 이 정도 성취로 다른 사람들에게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퇴사 후 뭘 할 지 정하고 나와도 아무 소용없고,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 '아만자', 'DP-개의 날' 등 다작을 연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첫째, 둘째, 셋째 자식 같은 느낌이다. 다 애틋하고 기억에 남는다.

아만자는 가장 오래됐는데 아직도 여기저기 나가는 거 보니까 대견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런 거 있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그렇게 좋아했던 건 아니라(웃음)

지금 그리고 있는 만화(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고 있는가)가 제일 신경 쓰인다. 5화까지는 망한 거 같지만 6화부터는 재밌을 거 같다.

항상 이번화까진 망했고 다음화부턴 재밌을거 같다 그 생각으로 그리고 있다.

*'아만자'는 암환자 이야기를 다룬 웹툰이다. 오랜 시간 암 투병 생활을 해온 아버지를 간병했던 작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고 있는가'는 인터뷰한 16일 기준으로 5화까지 업데이트된 상태다.

- 작품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원래 니코틴에 의존해 그렸다. 지금은 담배를 끊어서 망하고 있는 거 같다.

담배를 피우면서 밤을 새워서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영감 얻는 방법이 다양한 것처럼 그냥 떠오를 때까지 생각했다. 계속 앉아서. 누우면 잠이 들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서 괜찮은데, 처음엔 너무 막막해서 밤에 자본 적이 없다.. 정말 괴로운 시절이었다. 요즘엔 그냥 자고 적당히 하려고 한다. 특히 수영하면서 많이 생각한다.

- 공감 얻을 수 있는, 감성 돋는 만화 멘트 등도 인기 요인이라고 보는데. 감수성이 풍부한 편인지

살면서 감수성 풍부하단 얘기 한 번도 안 들어봤다. 굉장히 예의 없고 배려 없고 이기적이란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에 그걸 부정하면 나를 아는 사람이 가증스럽다 생각할 거 같다.

30대 넘어가면서 호르몬 변화 있는 거같다...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감수성이 깊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상황 모티프는 직접적인 경험에서 얻지만, 인물 감정 같은 건 저를 참고하진 않는다. 만약 나 같은 상황에서 정의감이 투철한,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런 식으로 한다.

'아만자(왼쪽)', 'NPC는 전기용의 꿈을 꾸는가' 웹툰 이미지 일부 /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NC소프트 블로그

- 아기자기한 그림체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은 그냥 따로 연습했다. 회사 다닐 때도 일반 사무직이었고, 대학 전공도 일반적인 학과였다.

그냥 그림 그리는 기기 사서 집에서 연습했다. 그린 그림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계속 피드백을 주더라. 그러니까 계속 교정이 되고. 반응이 없는 그림은 떨구고, 반응 좋은 걸로 계속 연습했다.

- 작품 가운데 ‘내 멋대로 고민 상담’ 웹툰은 소재가 신선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독자들 고민 상담해주는 콘셉트던데, 시작 계기가 있다면?

그때 적자 상황이었다. 제가 "너무 힘들어서 돈 좀 더 달라"고 담당자한테 이야기했는데, 담당자가 "만화를 하나 더 그려라"라고 그러더라.

‘내 멋대로 고민 상담’은 그 당시 트위터에 농담조로 그렸던 건데, (담당자가) "그걸 만화로 그려봐라. 돈줄테니까" 하더라. 당시 'DP-개의 날' 연재 중에 어시비 충당하기 위해 시작했던 건데... 시작해보니 ('DP-개의 날'보다) 인기가 더 많았다.

'DP-개의 날'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보통 작가. 'DP-개의 날'은 탈영을 소재로 군대 인권 문제를 다룬 웹툰이다. 지난해 말까지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했다 / 김보통 작가 제공(러브모멘트 스튜디오)

- 죽고 싶어 하는 독자를 상담해준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당신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릴테니 죽지 말라"고 했는데

이후 그 독자한테서 "알겠다.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작품 주인공으로 삼아야 하니까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런 것들 물어봤다. 지금 작품 끝나고 시작할 예정이다.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죽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저도 똑같이 십대 지냈고, 힘든 상황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학생들 사연 들어보면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 싶더라. 성적, 가정불화 등등, 부모가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안 줬다면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후속 작품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작품 계획은… 일단 지금 연재하는 거 끝내고 하와이 다녀온 뒤 학생들 이야기를 그리려고 한다.

사무실을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어시스트 연봉도 연말까지 올리고, 한 분 더 채용하려고 한다. 에세이도 써야하는데 너무 바쁘다. 작품 좀 마무리되고 스케줄 좀 나아지면 하려고 한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이 봐달라. 연재하는 모든 만화가들 마음이다. 보여주지 못하고 사라지는 거 너무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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