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우대?" 시내 면세점에 뿔난 한국 소비자
2016-10-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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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면세점 코엑스점/ 이하 위키트리 "마이이송이, 씨엔칸이샤 (买一送一, 先看一下, 원 플

"마이이송이, 씨엔칸이샤 (买一送一, 先看一下, 원 플러스 원입니다. 일단 보고 가세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화면세점에서는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려왔다. 향수 코너 한 점원에게 한국어로 질문하니 잘 알아듣지 못해 난색을 표했다. 해당 점원은 자신은 한국인이 아니라며 한국인 점원을 불러왔다.
동화면세점에서 만난 한국인 하모(남・32) 씨는 "주말에 중국으로 출국할 예정인데, 이미 중국에 와 있는 것 같다"며 "한국 시내 면세점 직원들이 한국어보다 중국어를 더 잘 하는 게 이상하고 씁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른 면세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2일,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국인 고객이 대다수이다 보니 점원들은 모든 고객에게 중국어로 인사하고, 제품을 소개했다. 'T' 명품 매장 직원은 "중국어를 하는 인력이 많이 필요해 채용 시 '중국어 자격증'을 본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유학하는 중국인 학생들도 많이 지원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면세점에는 '한글 간판'도 사라지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신라면세점 본점과 동화면세점에는 화장실 안내판이 영어와 중국어로만 쓰여 있다. 입출구, 층별, 할인 안내판은 대부분 중국어로만 적혀 있어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상 면세점을 자주 방문한다는 직장인 신모(여・28) 씨는 "지난 몇 해 동안 면세점 내에서 '한글'이 꾸준히 사라지고 있다. 중국인 고객이 많다고 대부분 안내판을 중국어로 표기하는 게 비정상으로 느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할인 혜택까지 중국어로 표기하니, 중국인 고객만 우대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 신라면세점에서는 중국 건국기념일인 '국경절'을 기념해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구매 금액에 따라 선불 카드를 지급하는 이벤트다. 롯데면세점에서 만난 우모(여・53) 씨는 "'국경절' 이벤트라고 해서 한국 개천절 관련 행사인 줄 알았더니 외국인 대상이라고 하더라. 국내 면세점에서 중국 국경절까지 챙기며, 외국인에게만 할인 혜택을 준다고 하니 역차별 받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불만을 토로하는 내국인 고객들과 달리 중국인 고객들은 입을 모아 "편하다"고 했다. 산둥(山东)성에서 온 중국인 자유여행객 왕(王・남) 씨는 "모든 매장 직원들이 중국어를 잘 해 편했다"며 "매장 배치도, 이벤트 관련 팸플릿 등이 모두 중국어로 돼 있어 가이드가 없어도 쇼핑하는데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왕 씨 일행인 여성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환영받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밝혔다.
면세점 측은 중국인 우대가 아닌 '마케팅 일환'으로 여긴다. 동화면세점 관계자는 7일 위키트리에 "중국 단체 입장객이 워낙 많다 보니 고객 국적 구분이 어려워 중국어로 먼저 말을 거는 것"이라며 "이 일로 내국인들한테 항의를 받은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영문, 중문으로만 쓰여 있는 화장실 안내판에 대해서는 "일반 백화점에 가도 화장실 안내판은 영어로만 쓰여 있다. 우리는 중국 고객을 위해 중국어로 추가 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이 같은 마케팅이 내국인 고객에 불편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 공감하며 "중국 국적 점원에 한국어・서비스 관련 교육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인 관광객 편의를 위해 중국어 서비스를 강화하는 마케팅이 근시안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어 없이 중국어로만 안내 문구를 표시한다는 건 한국인, 비중국어권 관광객에 대한 역차별일 뿐 아니라 한국적 특색을 상실하게 된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문기 교수는 "한국 국가 브랜드 가치, 한국산 상품 브랜드 가치는 중국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고유 특색을 강화하는 데서 나온다. '중국화' 추세가 확산되면 한국적 특색, 브랜드 가치에 대한 중국인 관광객 평가도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광대국 어디에도 자국어 서비스 없이 외국어로만 안내하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 이탈리아는 기본적인 안내문에서도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을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우려에도 면세점이 중국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끊임없이 강화하는 이유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7일 위키트리가 제윤경 의원실에게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4대 면세점(롯데・신라・SK・동화) 총매출 8조 589억 원에서 중국인 관광객 비중은 5조 353억 원으로 62%에 달한다.
SK 네트웍스 워커힐 면세점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78.4%다. 2013년 중국인 매출 비중이 33.1%였던 동화면세점은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이 69.6%에 달했다.
면세점 시장에서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 급상승은 '성장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 외교적, 환경적 변화에 따라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할 수 있어 다각도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문기 교수는 "중국인 관광객이 단기간 내에 급감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리막길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관광・유통 산업 변수로는 사드 같은 외교안보적 측면, 한류 산업 지속성・주력 상품 경쟁력 같은 산업 경쟁력 측면, 전염병・자연재해 같은 환경재해 측면이 있다. 면세점에서는 산업 경쟁력 측면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통으로 분류되는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리적으로 가까울뿐 아니라 한류 열풍 등으로 인해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중국 관광객 감소는 국익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에 외교적 현안, 외부 환경 변화가 관광객 감소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정부 차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균형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 다양화가 단기간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내국인 고객에 대한 마케팅도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호 의원은 "중국 국경절은 장기 연휴로 유통업계가 '국경절 특수'를 누릴 수 있는 기회다. 이 기간 동안 내국인들이 중국인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면서도 "면세점 등 유통업체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국경절 특수'가 끝나면 국내 내수에도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