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오늘,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2017-01-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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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심문 도중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1

연합뉴스

"심문 도중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 1987년 1월 16일, 경찰 총수 강민창 치안본부장

오늘은 고 박종철(1965~1987) 씨가 고문을 받다 사망한 날이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재학 중이던 박종철 씨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박종철 씨를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주요수배자 박종운(55) 씨 소재를 알아야 한다는 이유로 체포 영장도 없이 잡아갔다. 박종철 씨는 물고문을 받던 도중 욕조에 목이 눌려 사망했다.

이후 경찰은 박종철 씨가 심문 도중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자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부검 결과 박종철 씨 몸에는 고문 흔적이 역력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박종철을 살려내라"고 외치며 독재 정권을 비판했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 1987년 당시 시민들이 들고 행진하던 현수막 문구

당시 시민들은 무고한 학생을 죽이는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동시에, 대통령을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선거로 뽑을 것을 요구했다.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아야 민주주의가 싹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두환(85) 대통령은 국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7년 4월 13일, 그는 '대통령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본인은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

국민은 민심을 무시하는 전두환 대통령 발언에 분노했다. 그러다 1987년 6월 9일, 당시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이한열(1966~1987) 학생이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박종철 씨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씨 사건, 전두환 대통령 호헌 조치 등에 복합적으로 분노한 국민은 6월 10일 저녁 6시 이후 서울 곳곳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6월 민주항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집회는 6월 내내 이어졌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84)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이후 1987년 10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9차 개헌이 공포됐다.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