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감 깡패" 필름 카메라에 푹 빠진 디지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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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남대문 카메라 상가에 전시된 필름 카메라들 / 이하 이순지 기자"한 여학생이

"한 여학생이 머리 희끗희끗한 아버지 손 잡고 왔더라고. 아빠, 엄마 추억이 담긴 필름 카메라 고치고 싶다면서... 추억을 이어 담고 싶다면서. 요즘 젊은 애들은 필름 카메라에서 이런 의미를 찾아내는구나..."
서울 인의동 세운스퀘어에서 카메라 수리점을 하는 김유진(58) 씨는 한 여학생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김 씨는 '필름 카메라' 장인이라 불린다. 필름 카메라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필름 카메라 때문에 오는 손님은 지난 20년 간 점점 뜸해졌다. 하지만 요새 특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20대 젊은이들이 필름 카메라를 수리해달라고 그렇게 많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하루에 10~30명이나 찾아왔다.
"부모님이 쓰던 오래된 카메라를 집 구석에서 발견해 가지고 오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김 씨의 낡은 작업 책상에는 이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필름 카메라 부품들이 가득했다.
서울 동묘 벼룩시장에서도 중고 필름 카메라를 사려는 20대를 많이 만날 수 있다. 동묘 시장은 '필름 카메라' 입문자들이 꼭 들려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누군가의 손이 탄 '필름 카메라'가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야시카, 라이카, 미놀타, 코니카 같은 브랜드 제품은 아니지만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카메라가 곳곳에 진열돼 있다.
상인 이복길(남·60) 씨는 "확실히 요즘 필름 카메라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하루에 한 두명은 카메라를 찾는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필름 카메라 붐이 느껴진다. 유명 '빈티지 필름 카메라' 구매 사이트 '엘리 카메라'엔 구매 예약자 게시물이 가득하다. 원하는 제품을 사기까지 2주에서 2달이 걸린다고 한다.

필름 카메라를 시장에서 밀어 냈던 '디지털 카메라'는 이젠 스마트폰에 밀려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공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디지털 카메라 판매량은 2010년 1억 215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 5분의 1 수준인 2419만대로 급감했다. 성장 가능성에 회의를 느낀 삼성전자는 지난 7일 디지털 카메라 생산 및 판매를 중단했다.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질 줄 알았던 필름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현상으로 본다.
김유진 씨에 따르면,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긴 과정'에 있다고 했다. 그는 "필름을 사고 사진을 찍고, 다 찍은 필름을 들고 다시 사진관으로 가야 한다. 이 과정 안에 아날로그적인 향수와 추억이 담겨 있다"고 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16년 동안 카메라 판매점을 운영 중인 전문가 A씨는 "젊은 세대는 '필름 카메라'를 또 다른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이 나오는 자체를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과정은 '편리함'에 익숙한 20대들에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필름'을 사려면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한참 뒤지거나 사진관에서 발품을 팔아 구매해야 한다. 사진 촬영 후에는 사진관에 맡긴 후 스캔하거나 현상하기까지 약 1주일을 기다린다. 예전처럼 필름을 '인화'하는 것보다는, 필름을 스캔해 디지털화하는 게 대세다.
필름 사진을 디지털화하는 이유는 뭘까.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기 위해서다. 젊은층 '필름 카메라' 열풍이 시작된 곳도 아이러니하게 SNS다.
카메라 전문가 A씨는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 '필름 카메라' 관련 사진들이 갑자기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며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매력을 느낀 젊은층이 많아졌다"고 했다. 동묘시장에 필름 카메라를 사러 온 대학생 전진영(남·24) 씨도 "인스타그램에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봤다. 신기해서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필름 카메라를 약 3개월 전에 구입했다는 김진솔(23) 씨는 "(필름 카메라 촬영 후) 사진 파일을 받아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가끔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을 경우에만 현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는 어떤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색감이 크게 달라진다. 디지털 카메라 센서와 해상력이 발전해도 필름 카메라가 주는 질감과 명암을 따라 잡을 순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필름 카메라 '명품'이라고 풀리는 라이카 미니룩스 제품을 구매한 한 20대 회사원 B(여)씨는 "필름 카메라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카메라가 표현하지 못하는 색감을 필름 사진이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름 카메라를 배우고 싶어 작년에 라이카 미니룩스를 샀다고 했다.
카메라 전문가들은 '아날로그 감성', '사진 색감' 등 필름 카메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 20대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서울 서대문 인스튜디오 관계자는 "디지털 세대적 감각과 필름 카메라가 가진 장점이 조합돼,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카 미니로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