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서 보고..." 4대궁 외국인 관광객 폭증 이유 '한복체험'
2017-05-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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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이(왼쪽)와 남자친구 / 이하 이정은 기자 "왜 한복을 입었냐고요? 예쁘잖아요. 엄청 멋

"왜 한복을 입었냐고요? 예쁘잖아요. 엄청 멋져요!"
지난 2일 서울 경복궁에서 만난 록 이(Lok Yee·26)는 꽃 자수가 놓인 저고리에 분홍색 치마를 입고 배씨댕기를 매고 있었다. 홍콩 출신인 그는 4년 전에 이어 두 번째로 경복궁을 방문했다. 다시 찾은 이유는 "한복" 때문이라고 했다. 분홍색 작은 손가방도 한복과 잘 어울렸다. 이의 남자친구도 금자수가 놓인 한복을 차려입었다.
이는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한복 인증샷을 나도 찍고 싶었다"며 "한복 빌릴 수 있는 가게들이 경복궁 바로 옆에 있었다. 비용도 12~13 달러(약 1만 4000원)로 저렴했다"고 말했다.
최근 1년 사이에 조선 사대궁(경복궁, 덕수경, 창경궁, 창덕궁)에 중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5월 10일까지 나라별 관람인원과 올해 같은 기간 나라별 관람인원을 분석한 결과, 4대궁과 종묘를 찾은 비중국어권 관광객은 15만 9089명에서 24만 487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동남아·중동권 관람객은 6만 3033명에서 12만 7566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영어권 관람객도 5만 9573명에서 2만 6427명 늘어 8만 6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사드 문제로 중국인 관람객이 대폭 줄어든 자리를 다른 언어권 관람객이 채웠다.

외국인 관광객 유입량이 늘어난 데에는 한복 체험 문화가 한몫했다. 올해만 해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수백 미터 안쪽에 한복 대여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100m 거리 안에 있는 한복 대여점만 세도 10개에 이른다. 2시간에 1만 원대로 한복 한 벌을 빌릴 수 있는 가게들이다. 안국역 인근에도 10여 곳 넘게 있다.
배석한(48) 씨는 10개월 전 경복궁역 근처에서 한복대여점 '도령아씨'를 열었다. 배 씨는 "우리 가게가 생길 때만 해도 경복궁역 근처 가게라곤 두어 개뿐이었다"며 "요 건너편 집도 며칠 전에 생겼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복 입고 무료 입장하는 관광객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4대 궁에선 한복 입은 사람에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한복 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정책이다.

2013년 말만 해도 한복 관람객은 한 달에 40~70명으로 매우 적은 숫자였다. 한복 관람객이 수만 명 단위로 늘어난 건 최근 일이다. 지난해 4월 한복을 입은 관광객은 6198명에 그쳤지만, 지난 4월엔 무려 6만 124명으로 폭증했다. 1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복 체험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의 상관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일 한복대여점 '구르미한복'에는 여기저기서 외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붐볐다. 박용우(60) 사장은 "한복집에는 유럽이나 미국권도 많이 오지만, 동남아나 홍콩, 특히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한복대여점을 운영한 지 한 달 된 이다영(25) 씨는 "영어권 남자 관광객들끼리도 온다. 한 번은 무리 중 한 명만 여자 한복을 빌리는 게임을 하는 걸 봤다. 한복을 입어 보는 걸 즐거워 하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도령아씨' 배 사장은 "전에는 외국인 손님이 10명에 1명쯤 됐나 싶다. 인스타그램에 태그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요즘엔 10명 중 4명 이상은 외국인 손님이다"라고 설명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복 사진을 보고 흥미를 갖게 된 외국인들이 많다고 했다.

경복궁에선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은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온 네이슨(Nathan·24)은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고리에 배자까지 갖춰 입은 차림이었다. 그는 "오늘 한복을 처음 입어봤다"며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누비니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아 흥미롭다"고 말했다.

갓을 쓴 미국인 할아버지도 있었다. 클리포드 존스(Clifford Jones)는 한복을 입고 뒷짐을 진 채 경회루 앞에서 열린 국악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미국 보스턴에서 온 그는 "한국 출신 아내와 함께 경복궁을 찾았다"고 말했다. 39년 전 결혼한 존스 부부는 당시 드레스와 양복 정장을 입고 경복궁에서 결혼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경복궁은 많이 변했다고 했다. 존스는 "그때만 해도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 오늘 와서 보니 특히 한복 입은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며 "젊은이들이 자국 문화를 잘 지켜나가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고 말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한국에 놀러 온 카타리나(Katharina·35)는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경복궁을 자주 찾았다. 10번째 한국 여행이라는 그는 올 때마다 경복궁을 찾는다고 했다. 카타리나는 "처음 한국에 온 게 2003년이었는데, 그땐 경복궁에 유럽권, 영어권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엄청 많아졌다. 특히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확 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한복 입는 법을 잘 모르는 터라 아무렇게나 걸치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지난해 문화재청에는 "한복을 마구잡이로 입는 사람들 때문에 격이 떨어진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들이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점에 한복을 입을 땐 댕기를 맨다든지, 성별에 맞게 입는 등 제대로 갖춰 입도록 안내해달라고 공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