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사실 6가지

2017-05-17 22:30

add remove print link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18일 광주에서 열리는 '제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제37주년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는 5.18 상징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기로 했다. 참석자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제창'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으로 격하된 지 9년 만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사실 6가지를 정리했다.

1. 영혼결혼식 헌정곡

이하 뉴스1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향년 30세) 열사와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박기순(향년 21세)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다.

윤상원 열사와 대학 후배인 박기순 열사는 연인 사이였다. 박기순 열사는 1979년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숨졌다. 다음 해인 1980년 5월 27일 윤상원 열사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을 위해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곡을 만들고 황석영 작가가 가사를 썼다. 황석영 작가는 재야운동가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옥중에서 지은 시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했다.

2. 곡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 '1박 2일'

황석영 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5월 황석영 작가 자택에서 만들어졌다. 전남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광주지역 노래패 10여 명은 황석영 작가 제안에 따라 황 작가 자택에 모였다. 이들은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곡을 완성했다.

3. 대표 민중가요 → 금지곡 → 금지곡 해제

5.18 민주묘지에 헌화하는 유치원생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0개가 넘는 카세트테이프에 복사된 뒤 전국으로 확산되며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하지만 이 곡은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분류됐다. 1997년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금지곡에서 해제됐다. 이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4. '임'을 두고 벌어진 이념 갈등

제창 요구하며 피켓 시위하는 정의당 의원들

이명박 대통령 임기 2년째인 2009년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2009년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됐다. 2011년 기념식부터는 합창단이 부르고 원하는 참석자만 따라 부르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다. 당시 기념식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관련해 종북 논란이 있다며 제창에 반대했다. 당시 일부 보수단체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임'이 김일성을 지칭한다고 주장했다.

5. 원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

곡의 원래 제목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하지만 한글 맞춤법 표기에 따르면 '님'이 아니라 '임'이 맞다.

작곡가인 김종률 사무처장은 사실상 고유명사가 된 제목대로 가능한 한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써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곡을 만들 당시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극존칭으로 나오는 '님'이 고결하고 소중한 느낌이라 5.18로 인해 희생당한 분들을 기리는 노래를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썼다"고 덧붙였다.

6. 다시 제창하게 된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틀째인 지난 11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해온 박승춘 전 보훈처장을 경질했다. 다음 날인 12일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라고 지시했다. 오는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제37주년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게 된다.

home story@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