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라, 모르는 여자라면 괜찮다... 내 여친은 안돼”

2017-09-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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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라에 대한 1020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어봤다.

"너 다 티 나. 남자들이 본다니까!"

'노브라' 생활 2년 차인 이은혜(여·25) 씨가 남자친구에게 들었던 타박이다. 하지만 이 씨는 아랑곳 않고 계속 '노브라'를 실천했다. 처음에는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팔짱을 끼고 다녔지만, 한번 익숙해지니 노브라가 더 편했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거리낌 없이 '벗고' 다녔다. 이 씨는 "누군가 노브라라고 나를 지적한다면, '그 부위'를 계속 관찰하는 그 사람이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 씨처럼 최근 '노브라'를 시도해봤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SNS에서도 노브라 체험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편하긴 하지만,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 고등학생은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차지 않고 학교에 가서 진짜 편했는데 친구에게 말했더니 '더럽다'고 했다. 이게 왜 더러운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고 쓰기도 했다.

10대, 20대 청년들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노브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지난 21일 서울 신촌으로 나갔다. 지나가는 청년들에게 ‘개인의 자유다’, ‘보기 불편하다’, ‘잘 모르겠다’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전체 응답자 320명 중 225명(70.3%)가 '개인의 자유'라고 답했다.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은 182명 중 124명이, 남성은 130명 중 101명이 노브라에 찬성했다.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은 18%에 불과했다.

앙케이트 결과 통계
앙케이트 결과 통계

노브라가 '개인의 자유'라고 답한 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대학생 양수성(25) 씨는 “(노브라 이슈는 남들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유태환(25) 씨도 "불편하다면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도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성 참여자들도 "남자 역시 유두가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왜 여자만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보기 불편하다는 주장은 논리가 없다" 등 브래지어를 입는 게 개인의 자유라는 데 동의했다. 브래지어가 “하나의 옷이자 패션일 뿐"이라며 "자유롭게 착용하거나 착용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21일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 '개인의 자유다' 칸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사진=김원상 기자
21일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 '개인의 자유다' 칸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사진=김원상 기자

하지만 남성 응답자들 대부분은 "내 주변 여자가 노브라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는 다른 답변을 내놨다. 이들은 “내 가족, 특히 내 여자친구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지안(25) 씨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여자친구가 안 입고 다니는 것은 싫다”고 했다. 대학생 김영훈(24) 씨도 “노브라에 대해 반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가족 중 누군가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상관없다”면서도 “여자친구가 그러는 건 싫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또 “노브라에 대한 인식 변화가 과도기에 있으면서 (문화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여성들도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람들 ‘시선’을 언급한 응답자가 많았다. 여고생 이승연(19) 양은 “불편한 시선과 아직 껄끄러운 분위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노브라로 다닌다면 말리고 싶다”고 했다. 이가영(여·26) 씨는 “노브라 이슈는 익숙함 문제인 것 같다”며 “시선 처리가 어려워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영경(여·27) 씨는 “노브라가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시대가 빨리 바뀐다고 다른 사람 또한 빨리 따라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설문 결과 총 320명의 응답자 중 225명이 '개인의 자유다'에 투표했다. 보기 불편하다는 58표, 모르겠다는 37표였다. / 사진=박혜연 기자
설문 결과 총 320명의 응답자 중 225명이 '개인의 자유다'에 투표했다. 보기 불편하다는 58표, 모르겠다는 37표였다. / 사진=박혜연 기자

설문이 한창이던 때 '개인의 자유다'에 스티커를 붙이던 한 여중생이 돌연 “나 지금 노브라인데”라고 고백했다. 함께 있던 친구가 당황하며 "너 미쳤어?"라고 했지만 여중생은 "불편해서 입지 않는다"며 브래지어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청소년들은 대체로 노브라가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중·장년층 의견은 사뭇 달랐다. 앙케이트에 관심을 보인 한 50대 남성에게 다가가 생각을 묻자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으면 ‘불편하다’에 스티커를 붙이고, 제대로 받지 않았으면 ‘개인의 자유다’에 붙이겠지"란 답이 돌아왔다. 한 아주머니도 "그래도 아직은 불편하지"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에서 올해 7월3일부터 5일간 전국의 20~26세 여대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트렌드 및 가치관 변화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500명 중 68%가 '브래지어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단 5%만이 '한국에서 노브라로 살 수 있다'고 답했다.

신라대 여성문제연구소 최희경 소장은 "한국 사회가 타인 신체에 대해 너무 많은 관심이 있다"며 "특히 여성 신체에 대해 타인 시선을 많이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선 옷 위로 '여성 유두' 윤곽이 보이는 걸 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걸림돌이라는 말이 많다. 지난 6월 방송된 EBS1 젠더토크쇼 '까칠남녀'에서 지난 3월부터 3개월 간 '노브라'에 대한 SNS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성관계' '가슴' 등 성적인 코드와 관련된 키워드들이 다수 나왔다.

오히려 "브래지어를 입는 게 편하다"는 여성들도 있다. 노브라 상태로 운동을 하거나 오래 활동하다 보면 유두가 옷에 계속 쓸려서 때로 피부가 붉어지거나 따갑기 때문이다. 대학생 박모(여·22)씨는 "유두가 예민한 편이라 절대 노브라로 못 다닌다"며 "쓸려서 아프고 일단 브래지어 없이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하다"고 설명했다.

"옷맵시 때문에 브래지어 입는 것을 선호한다"는 견해도 있다. 직장인 김정민(여·22) 씨는 "평소 달라붙는 옷을 즐겨 입는데 브래지어를 입지 않으면 맵시가 안 난다"며 "가슴에 잘 맞고 편안하면서도 라인이 사는 속옷을 주로 입는다"고 말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노브라 출근 포기. 옷맵시가 안 나서"라는 글을 올렸다.

*김원상, 박은주, 차형조 기자가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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