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진관 멋진 언니 되고 싶어“ '시현하다' 사진작가 김시현 인터뷰

2017-09-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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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화제가 됐던 형형색색 개성넘치는 증명사진들.

시현하다 홈페이지
시현하다 홈페이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특이한 태그(tag) 하나가 인기를 끌었다. 바로 '#시현하다'다. 인스타그램에서 '시현하다'를 검색하면 다양한 증명사진이 나타난다. 그런데 증명사진이 보통 증명사진이 아니다. 인물 배경이 형형색색 매번 다르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한쪽 눈을 치켜뜨거나 치아 교정기가 보이게 웃는 등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짓는다.

지난 20일 '증명사진 전문 사진관'인 '시현하다'를 찾았다. 서울 신논현역 번화가 골목에 있는 사진관 건물에 들어서자 "안녕하세요!" 밝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기자를 반겼다.

사진작가 김시현 씨는 목소리만큼이나 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태그 '시현하다' 를 치면 나오는 무수한 사진들을 찍은 주인공이다.

김시현 씨를 따라 지하 1층 스튜디오로 내려갔다. 99㎡(3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커튼과 벽으로 구분된 독립 공간이 있었다. 월세를 아끼기 위해 타투이스트, 플로리스트, 금속공예가 친구들과 공간을 나눠 쓴다고 했다. 어두운 외벽에 검은 타투 도안이 걸려있는 타투 작업 공간부터 반지, 목걸이 등 은세공 액세서리가 놓여있는 아담한 공방까지 각자 개성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스튜디오 한켠에 자리잡은 시현하다 사진관엔 수많은 증명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테이블에는 크기가 다른 액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테이블 옆에는 보정작업을 하는 컴퓨터가 있었고 맨 오른쪽에는 각종 조명과 카메라가 세팅돼 있었다.

◈ "사진 몇천 장을 보정해도 질리지 않았죠. 재밌었어요"

김시현 씨 /이하 '시현하다' 제공
김시현 씨 /이하 '시현하다' 제공

어린 시절 생일선물로 받은 '카메라'는 김시현 작가가 사진을 시작한 계기였다.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대안학교를 다녔던 김시현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사진작가를 꿈꾼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물사진을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 전학을 7번이나 다녔죠. 친구들과 가장 빨리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가 '사진'이었어요. 그 시절엔 싸이월드가 대세였어요.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고 포토샵으로 보정해서 주면 친구들이 매우 좋아했죠.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 다니다 보니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게 됐어요.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린 시절 꿈이 사진관 사장님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사진관 사장이 되는 게 꿈입니다. 원래는 대학에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핀잔을 주셨습니다. "넌 대학에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것"이라며 사진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지도 않았다고 말이죠. 그 말에 오기가 생겨 공부를 시작했어요.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들어와 보니 부모님 말씀이 맞았어요. 사진 이론과 역사를 배우면서 사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진관 사장님이 되는 꿈은 변하지 않았죠.

◈ "증명사진이 도장 찍듯 찍어내는 사진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싶었어요"

김시현 씨는 인물사진이 좋았다. 증명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증명사진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사진'이라고 평했다. 돈벌이 수단일 뿐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고민했다. 결국 대학 '졸업작품'으로 증명사진을 찍기로 결심했다.

왜 증명사진이었나요

시작은 졸업전시회였어요. 교수님께서 "남을 만족시키는 사진은 상업사진"이라고 말씀하시길래 제가 "남을 만족시키는 게 저를 만족 시키는 건데 그렇다면 이건 예술사진 아닐까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만든 증명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만족감을 느끼면 그게 저에겐 큰 기쁨이 됐기 때문이죠. 많은 고민 끝에 도전하게 됐어요.

'1000명 초상사진 아카이빙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작년 9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증명사진으로 시대 트렌드를 기록하고 싶어 시작했죠. 1000명의 증명사진을 모아 놓으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모습과 트렌드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100장을 추려 '시현하다 과정전'을 열었어요. 많은 분들이 와서 직접 서로를 보고 반가워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당일치기로 와주신 분도 계셨어요.

배경색을 다르게 한다는 컨셉이 특이합니다

나를 온전히 담는 증명사진인데 개성이 너무 없었습니다. 사진관에서 찍는 증명사진은 똑같은 배경이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배경색'이었어요. 사람은 다 자기만의 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배경색을 바탕으로 내 모습을 찍으면 더 나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고 잘 나타낼 수 있겠다 느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든 분도 있고 면접에 합격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시현하다 증명사진 컨셉을 모방하는 사람도 있고 악플도 많다고요

저희 작업을 무조건 따라 하거나 홍보방법마저 비슷하게 하는 경우를 접합니다. 화가 나기도 해요. 제 작업에 관해 언급을 해주신다면 괜찮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을 통해서 증명사진에 대한 가치나 인식이 바뀌면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악플은 저에게도 많이 달리지만 사진 찍는 분들한테도 많이 달립니다. 특히 모델분들 외모를 비하하는 악플이 많이 달리는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 "돈을 벌고 싶었다면 몇십 명 씩 예약을 받았을 거에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포기했습니다"

시현하다에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치열한 '클릭 대란'을 뚫어야 한다. 한 달에 100명 촬영신청을 받는데 1만 4000명이 동시에 접속한 적도 있다. 예약은 30초 만에 끝났다. 작업은 사진 촬영부터 보정까지 30분 안에 모든 게 이뤄진다.

촬영 가격이 10만 원인데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

상품 가치는 한 사람이 그 상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를 보는데 한 노인이 캐리커처를 15분 만에 완성하자 어떤 사람이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캐리커처가 너무 비싸다"라고 불만을 제기했어요. 그러자 노인은 "15분 만에 캐리커처를 완성하기 위해 나는 30년을 노력했다"라고 말했어요. 저 역시 30분 안에 촬영과 보정을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 많은 시간에 걸쳐 노력했습니다. 무수한 포토샵 작업 덕분에 손도 빨라졌죠. 제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예약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다 받지 않는지

돈을 벌고 싶었다면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처음과 끝 손님에게 똑같이 집중해서 좋은 퀄리티 사진을 드리고 싶었어요. 사진도 제가 다 직접 찍고 보정도 하나하나 다 합니다. 작업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하죠. 그게 예약자 수에 제한을 둔 이유입니다. 또 하나는 저에게 '저녁 있는 삶'이 정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하루에 주어진 일만큼만 하고 저녁에는 가족, 연인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욕심부리지 않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가족사진관을 차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은 저와 같은 또래들이 많이 공감해줍니다. 앞으로 더 실력을 쌓아서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할머니 주름도 예쁘게 보이고 아기 젖살도 돋보이게 찍는 실력 좋은 사진관 사장님이 꿈입니다.

home 박송이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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