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까지 633km '따릉이' 타고 간 대학생

2017-11-03 15:00

add remove print link

그는 “싸이 다음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패기만큼은 '국가대표급'이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부산까지 다녀온 대학생 김동겸 씨.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공원 부근 대여소에서 빌린 따릉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하 손기영 기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부산까지 다녀온 대학생 김동겸 씨.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공원 부근 대여소에서 빌린 따릉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하 손기영 기자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린 대학생이 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김동겸(25) 씨다.

김 씨는 지난달 6일부터 12일까지 6박 7일 동안 '따릉이'로 무려 633km를 달렸다. 인천(아라서해갑문인증센터)에서 출발해 서울 한강 변, 여주, 충주, 문경, 칠곡, 창녕 등을 거쳐 목적지인 부산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했다.

김동겸 씨는 지난해 취업한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이후 따릉이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도전을 했다
김동겸 씨는 지난해 취업한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이후 따릉이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도전을 했다

김 씨는 예전에도 자전거로 장거리를 달린 경험이 있다.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횡단했다. 쉽지 않은 대도전이었다.

"미국 여행 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김동겸 씨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따릉이'를 타고 부산까지 가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서울 밖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던 따릉이가 김 씨 덕분에 '다른 세상' 구경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냥 부산까지 가면 재미없으니까 따릉이를 타고 가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따릉이가 얼마나 튼튼한지 내구성도 궁금했고요."

여행 첫날인 지난달 6일 따릉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동겸 씨. 여행 때 사진은 셀카 또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찍었다고 했다 / 이하 김동겸 씨 제공
여행 첫날인 지난달 6일 따릉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동겸 씨. 여행 때 사진은 셀카 또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찍었다고 했다 / 이하 김동겸 씨 제공

원래 따릉이는 하루 2시간 이상 이용할 수 없다. 김씨는 서울시에 여행 취지를 설명하고 따릉이를 여행 기간 내내 빌렸다. 서울시는 따릉이를 무상으로 빌려준 데다가 여행 경비 일부도 선뜻 지원해줬다.

따릉이는 변속기어가 3단 밖에 되지 않아 언덕길을 오르기 버겁고 고속주행도 하기 어렵다. 요즘 웬만한 자전거는 이용자 편의를 위해 21단 변속기어를 달고 있다. 따릉이는 평탄한 도심 단거리 구간을 달리는 용도로 제작됐다.

김동겸 씨는 "출발할 때 따릉이로 부산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여행 기간 동안 펑크나 고장 한 번 나지 않아 놀라웠다. 타이어 공기압도 잘 유지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만 따릉이는 자전거 안장 높이가 좀 낮은 편이어서 성인 남성이 장시간 타기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김동겸 씨가 따릉이를 타고 문경~칠곡 구간을 달리고 있다
김동겸 씨가 따릉이를 타고 문경~칠곡 구간을 달리고 있다
충주~문경 구간
충주~문경 구간

미국 자전거 여행에 비해 쉬울 줄 알았던 '따릉이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여행 초반 갑자기 찾아온 '몸살 감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여행 첫날부터 몸살 감기가 심하게 왔다. 당황스러웠다"며 "첫날 경기도 여주까지 가려고 했는데 결국 약국에서 약을 사먹은 뒤 서울 강동구에서 숙박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애초 4박 5일을 목표로 했던 일정도 건강 문제 때문에 6박 7일로 늦춰지게 됐다고 했다.

김동겸 씨는 포기하지 않고 부산을 향해 달렸다. 그는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문경새재 자전거길 소조령~이화령 구간을 꼽았다. 해발 362m~548m에 달하는 경사가 가파른 산악지대다.

김 씨는 "따릉이로 달린 여행 코스 중 가장 힘들어서 잊히지 않는 곳"이라며 "도로 경사가 가팔라 변속기어가 3단인 따릉이로 올라가기 쉽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갔다. 정상 구간에 올라가니 사람도 거의 없고 어두 컴컴해서 무섭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따릉이를 몰고 언덕을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릉이를 몰고 언덕을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동겸 씨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꼽은 문경새재 소조령~이화령 구간.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해 사진이 컴컴하게 나왔다
김동겸 씨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꼽은 문경새재 소조령~이화령 구간.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해 사진이 컴컴하게 나왔다

김동겸 씨는 여행을 하면서 '서울 출신' 따릉이를 보고 "이게 무슨 자전거냐?"며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무작정 떠난 따릉이 여행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자극'을 줬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가 벌인 일을 완전히 매듭진 적이 거의 없었어요. 음악을 무척 좋아했지만 중간에 음악 활동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과 국토 종주 따릉이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 벌여놓은 일을 스스로 매듭진 성공 사례였어요"

나름의 '인생 공부'도 했다고 했다. 그는 "여행 기간 '인생 살면서 장비 탓을 하지 말자'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며 "그저 평범한 스펙을 지닌 따릉이로 부산까지 완주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가 자전거로 가나 따릉이로 가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 상황을 잘 참고 목표까지 가는 사람이 승자"라고 했다.

지난달 12일 목적지인 부산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한 김동겸 씨
지난달 12일 목적지인 부산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한 김동겸 씨

김 씨는 현재 대학 친구 김경수 씨와 함께 유튜브 채널 'DKDKTV'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하고 친구와 함께 출연도 한다고 했다. 방송 멘트는 모두 영어로 한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김동겸 씨는 망설임 없이 "싸이 다음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답변이 돌아오는데 불과 3초도 걸리지 않았다. 패기만큼은 '국가대표급'인 사람이었다.

유튜버로 활동하는 김 씨는 이번 따릉이 여행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지난달 28일부터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여행 주요 장면을 차례로 공개하고 있다.

김동겸 씨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따릉이' 여행 영상 1편 / 유튜브, DKDKTV

따릉이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대여하는 서울시 공공자전거다. 1일 최대 이용시간은 2시간이다. 1일권 기준 이용요금은 1시간 1000원, 2시간 2000원이다. 자전거를 빌려 탄 뒤 목적지 근처 다른 대여소에 반납만 하면 된다.

따릉이는 2015년 10월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올해 10월 현재 서울시 전체 따릉이 보유 대수는 1만 1600대다. 자전거 대여소는 896곳에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전체에서 따릉이를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따릉이를 2만 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home 손기영 기자 story@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