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자식 키운 보람 있네' 하셨을거다” 조정래 가족문학관 개관

2017-1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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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작가는 매달 마지막주 전국 3개의 문학관에서 독자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해냄출판사 제공
해냄출판사 제공

"아버지가 생전에 '태백산맥'을 보시곤 '자식 키운 보람 있네'라고 하셨답니다. 지금 문학관을 보고 저승에서 그러실 거에요 '아들 키운 보람 있네'"

지난 30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국내 최초로 가족문학관이 개관했다. 고흥군 남양면 출신의 승려이자 시조시인인 아버지 조종현 선생, 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저자인 아들 조정래 작가, 그의 부인 김초혜 시인이 그 주인공이다. 정식 명칭은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이다.

이날 개관식에는 조정래·김초혜 선생 내외를 비롯해 박병종 고흥군수, '남한산성'의 저자 김훈 작가, 조종현 선생의 법제자인 활안스님, 유재영·김영재 시조시인 등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

울먹이는 조정래 작가 / 차형조 기자
울먹이는 조정래 작가 / 차형조 기자

"저희 아버지는 일제시대 만해 한용운 선생을 총재로 하는 승려들의 비밀 독립투쟁결사체 '만당'의 일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300명 승려 중 한 명이었고, 거기서 재무위원(자금책)을 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순천 선암사에서 승려들의 직선을 통해 주지(스님)가 됐습니다. 여순사건 때 아버지는 '태백산맥'에 나오는 김범우처럼 반대파에게 모함을 당해서 빨갱이로 고발당하고, 11년 동안 조사를 받으며 기구한 인생을 사셨지요"

조정래 작가는 개관식 답사에서 "저는 아버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너무 고난 속에서 종교와 문학과 교육에 매진하면서 평생 가난하게 살았습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책(태백산맥)이 잘 팔려서 '효도할 수 있겠다' 할 시점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라면서 "그 회한의 세월이 갈수록 깊어져서 밥을 먹다가도 문득 눈물이 납니다"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가족문학관 건립으로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는 아버지 문학이 세월에 따라 잊혀 가는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안타깝고 아쉬웠다고 했다. 조 작가는 "(문학관 건립이 추진되고) 비로소 우리 아버지가 되살아났구나. 불효한 회한이 함께 사그라지는 고마움과 감동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정래, 김초혜 문인 내외 / 해냄출판사 제공
조정래, 김초혜 문인 내외 / 해냄출판사 제공

이번 가족문학관 개관으로 조 작가는 세 번째 문학관을 가지게 됐다. 조 작가의 소설을 주제로 전남 보성군에 '태백산맥문학관', 전북 김제시에 '아리랑문학관'이 운영되고 있다.

최초 가족문학관을 만들자는 고흥군청 제안에 아내인 김초혜 시인은 두 가지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김 시인은 "이 문학관이 생긴다면 아들 잘 둬서, 남편 잘 만나서 문학관이 생긴다고 남들이 손가락질할 것이다"라고 조 작가에게 말했다고 한다. 조 작가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여보 그게 아니잖아. 아버지나, 당신이나, 나는 이미 교과서에 실렸잖아. 그러니까 그다음 단계인 문학관이 만들어져도 괜찮아"라며 명분을 내세웠다고 한다.

조 작가는 문학인이 자신 문학의 가치를 네 단계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작품을 발표해서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는 것, 둘째는 그것을 기초로 문학상을 타는 것, 셋째는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는 것이었다. 그는 "세번째부터는 몇몇 사람만 보던 문학 작품이 전체 국민이 배우는 모국어의 핵심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엄청난 것이지요"라면서 마지막 단계로 '문학관이 만들어 지는 것'을 꼽았다.

"당신을 문학관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요"

조 작가 설득에도 김 시인은 반발 여론을 들어 문학관 건립을 반대했다. 조 작가는 "이건 가족문학관이기 때문에 욕먹을 게 아니에요"라고 설명했지만 김 시인의 말이 한동안 뇌리를 점령했다고 했다.

조 작가는 결국 고흥군수에게 가족문학관을 보류하자는 내용으로 5장 분량의 편지를 썼다. 2015년 '철운 조정현 선생 학술대회'부터 '조정래 가족문학관' 건립을 공언해왔던 박병종 고흥군수는 충격으로 한동안 군정을 보지 않고 자택에 칩거했다고 한다. 이 결정 이후 조 작가 형제들도 조 작가에게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조 작가는 "우리 집이 4남 4녀 8남매입니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니까 (아내까지) 12명이 저에게 12자 포화를 가했던 거에요. '너 때문에 우리 아버지 문학관 못 만들었어'하고 공격하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우리 그냥 문학관 하시죠" 편지까지 보낸 후 마음을 굳힌 조 작가를 김 시인이 다시 설득했다고 한다. 조 작가는 당시 "내가 그러한 편지를 썼는데 이를 번복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당신이 저지른 일은 당신이 해결해"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김 시인은 지인과 함께 박 군수를 만나 가족문학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조종래 작가가 가족문학관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해냄 출판사 제공
조종래 작가가 가족문학관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해냄 출판사 제공

조 작가는 문학관이 자신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과거에 해 온 일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 둘째는 앞으로 더욱 잘하라는 격려다. 그는 "국민의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글을 쓰는 것이 문학관에 대한 배려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 작가는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문학관을 포함해 3개의 문학관에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조 작가는 "내후년 6월에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100년의 질문'이라는 책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활동이 끝나면 매달 마지막 한 주를 할애해 이틀간 각 방문관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조종현 시조시인 육필 원고 '나도 푯말 되어 살고 싶다'  / 해냄출판사 제공
조종현 시조시인 육필 원고 '나도 푯말 되어 살고 싶다' / 해냄출판사 제공
조종현 선생이 네 아들에게 평생 유념하고 살아야 할 점을 적시해 내린 휘호, 둘째 아들인 조정래 씨는 '겸허'라는 단어가 적힌 휘호를 받았다 / 차형조 기자
조종현 선생이 네 아들에게 평생 유념하고 살아야 할 점을 적시해 내린 휘호, 둘째 아들인 조정래 씨는 '겸허'라는 단어가 적힌 휘호를 받았다 / 차형조 기자
조정래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 쓴 글  / 차형조 기자
조정래 작가가 아버지에 대해 쓴 글 / 차형조 기자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은 조종현 문학실, 조정래 문학실, 김초혜 문학실 등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에는 세 문인의 육필원고와 집필 도구, 사진 자료를 포함해 문인들의 삶과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물품 1274점이 전시됐다.

이날 조정래 작가와 김초혜 시인은 개관식을 마치고 박병종 고흥군수와 함께 문학관을 관람했다. / 해냄출판사 제공
이날 조정래 작가와 김초혜 시인은 개관식을 마치고 박병종 고흥군수와 함께 문학관을 관람했다. / 해냄출판사 제공
사진 자료 앞에 선 조정래 작가와 김초혜 시인 내외 / 차형조 기자
사진 자료 앞에 선 조정래 작가와 김초혜 시인 내외 / 차형조 기자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신정·설날연휴·추석연휴는 휴관한다. 관람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061-830-5990)으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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