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도 올리고, 충전기도 있고... '와칸다 극장'이라 불리는 숨은 명소 '동광극장'

2018-05-15 17:30

add remove print link

“젊은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추천한다”

동광극장 외관 / 이하 서용원 기자
동광극장 외관 / 이하 서용원 기자
지난달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한 단관 극장이 '와칸다 극장'이라 불리며 SNS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한 관람객이 찍은 극장 사진들에 따르면, 극장 겉은 손으로 작성한 상영 시간표, 전봇대에 광고전단처럼 걸려있는 포스터 등 허름하기 짝이 없는데, 막상 극장 안은 깜짝 놀랄 편의시설들이 숨어 있었다.

'와칸다'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가난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엄청난 기술과 무기로 무장한 첨단 국가다.

정말 '와칸다'일까. 지난 4일 '동광극장'을 방문했다.

동광극장 앞 전봇대에 걸려있는 영화 포스터
동광극장 앞 전봇대에 걸려있는 영화 포스터
동광극장 앞에 놓여있는 극장 상영 시간표. 직접 시간대와 영화이름을 손으로 썼다.
동광극장 앞에 놓여있는 극장 상영 시간표. 직접 시간대와 영화이름을 손으로 썼다.
◈"몇 분이세요? 8000원입니다"
"몇 분이세요? 8000원입니다."
대중목욕탕 혹은 음식점에서나 들릴 법한 이 인사말. 동두천시 중앙동 길거리에 위치한 동광극장에 들어가면, 입구 옆 매표소에 앉아 있는 고재서(62) 동광극장 대표가 으레 손님에게 건넨다. 극장 관람료는 1인당 8000원이다.
입구로 진입하면 매표소, 매점 등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비하면 훨씬 작다. 극장 전체는 약 496㎡ (150평) 규모라고 한다.
동광극장에 입장하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 끝이 '매표소'다.
동광극장에 입장하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다. 사진 오른쪽 끝이 '매표소'다.
동광극장 매점
동광극장 매점
남자 화장실 입구
남자 화장실 입구
여자 화장실 입구
여자 화장실 입구
하지만 좌우를 조금만 둘러보면 동광극장을 색다르게 만들기 위해 고재서 대표가 노력한 부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수족관과 피규어다. 수족관이 15개가 있는데, 종류가 다른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수입이 금지되기 전 들여놓은 피라니아(piranha)도 있다. 피규어는 스타워즈, 쥬라기 공원 등 별개 테마를 갖고 있다. 모두 고 대표가 직접 구입한 물품들이다.

TV와 수족관 일부 모습
TV와 수족관 일부 모습
대기실에 놓여있는 피규어들
대기실에 놓여있는 피규어들
고재서 대표가 올 6월 개봉 예정인 쥐라기 공원을 기념해 마련한 공룡 피규어들
고재서 대표가 올 6월 개봉 예정인 쥐라기 공원을 기념해 마련한 공룡 피규어들
상영관은 생각보다 넓다. 총 286석이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좌석은 2층 앞자리다. 이 좌석은 발을 올리고 영화를 볼 수 있다. 심지어 좌우 끝자리는 '스마트폰 충전기'까지 있다. 영화관 1층 맨 앞 좌석은 소파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도 다리를 올리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화질과 음향도 대기업 멀티플렉스 일반 영화관과 딱히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고재서 대표는 "같은 모델의 영사기는 아니더라도 대기업 영화관과 같은 디지털 영사기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상영관 내부 모습
상영관 내부 모습
상영관 2층 좌석들
상영관 2층 좌석들
스마트폰 충전기 사진
스마트폰 충전기 사진
기자가 좌석에 앉아 다리를 올려본 사진
기자가 좌석에 앉아 다리를 올려본 사진
상영관 1층 사진
상영관 1층 사진
1층 맨 앞 소파 좌석.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게 보조 의자가 마련돼 있다.
1층 맨 앞 소파 좌석.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게 보조 의자가 마련돼 있다.
◈"데이트하러 오기 좋은 것 같아요"

서울 노원구에서 관람을 온 이지원(26) 씨는 "어벤져스를 2번이나 봤지만 인터넷을 보고 동광극장에 오고 싶어져 (어벤져스를) 또 보러 왔다"고 말했다. 이 씨는 2층 앞 좌석에서 다리를 올리고 영화를 관람했다.

다리를 올리고 앉은 이지원 씨
다리를 올리고 앉은 이지원 씨

"관람 소감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그는 "일반 대기업 영화관들과 똑같다"며 "대기실에 구경할 것도 많고, 근처에 유명 맛 집도 있으니 젊은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반드시 데이트하러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광극장 근처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3학년 최 모양은 "대기업 영화관보다 가격이 저렴해 자주 이용한다. 매점도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최 양은 "최신 영화도 개봉일에 맞춰 바로 나온다"라고 덧붙였다.
이지원 씨와 최모 양 둘다 "광고 없이 예정된 시간에 영화가 바로 상영되는 점이 가장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극장에 단점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최 모양은 "화장실이 낙후돼서 불편하다. 혹시 관람을 오시는 분들이 있으면 근처 외부 화장실 이용 추천한다"라고 했다.
◈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유일한 단관 극장

동광극장은 1959년에 개관했다. 고재서 대표가 1986년에 극장을 인수해 32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고 대표는 “선친이 영화관을 운영하셔서 나도 영향을 받아 동광극장을 인수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동광극장은 과거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세간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의정부시에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들어서면서 동광극장 운영은 점차 어려워졌다.

1993년 11월 5일자 동두천신문
1993년 11월 5일자 동두천신문

"하루 관람객이 몇 명정도 되냐"는 질문에 고 대표는 "영화에 따라 다르다. 최근에는 어벤져스가 인기가 많아서 평일 하루 최대 30명까지 온다. 이게 많은 거다"라고 했다.

동광극장 매표소, 매점, 상영실, 청소 등을 모두 고 대표 혼자 책임진다. 그는 "아르바이트 생을 고용할 사정이 못 된다. 바쁜 주말에는 가끔 가족들이 도와준다"고 했다.

네이버에 '단관 극장'을 검색하면 "현존 유일의 단관 극장"으로 '광주극장'을 소개한다. 또 동광극장과 관련된 다른 신문 기사에서는 고재서 대표를 "고재선", "고재석" 등으로 소개한다.

대중의 무관심과 잘못된 정보에도 고재서 대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고 대표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사정만 된다면 극장 운영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home 서용원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