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기 위해 돈 쓰는 취준생... “취업 준비로 월 100만 원 이상 쓸 수밖에 없어요”
2018-06-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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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이 심화하고 준비할 스펙이 많아지면서 준비 비용도 함께 늘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강혜영 인턴기자 = "몸이 천근만근이긴 한데 언제까지 집에 계속 손 벌릴 수는 없잖아요."
올해 대학 졸업반인 이 모(24) 씨는 몇 달째 일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는 학교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한 뒤, 저녁에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과외를 한다.
끼니는 교내 식당 등에서 간단히 때운다. 이 씨는 "토익 응시료나 자격증 취득 비용을 비롯해 정장 구입, 생활비 등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은 쓴다"면서도 "부모님도 퇴직을 바라보시는데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낙방도 괴롭지만 취업 준비도 고달프다. 이 씨처럼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분야에 따라 매달 100만원이 넘는 돈이 들기도 한다.
취준생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취준생들은 "취업난이 심화하고 준비할 스펙이 많아지면서 준비 비용도 함께 늘었다"고 부담감을 호소한다.
◇ 취업 사교육비 부담스럽지만…
김 모(24) 씨는 금융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이다. 지난 겨울방학 두 달간 김 씨는 324만5천원을 취업 준비에 투자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항목은 인터넷 강의다.
미시 경제학, 국제 금융 등 세 과목을 수강하는 데 90만원이 들었다. 교재비는 10만원이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비 및 시험 응시료에 30만원, 중국어능력시험(HSK)에는 35만원을 썼다.
면접을 위해 정장을 구입(50만원)했고, 이력서에 쓸 사진(5만원)도 찍었다. 이 비용 모두 김 씨의 부모가 부담했다. 김 씨는 "그래도 월 80만원이 드는 식대 및 생활비는 과외로 충당하고 있다"며 "데이트 비용까지 하면 빠듯하긴 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의 월평균 취업 준비 비용은 30만원에 달한다. 연 단위로 계산했을 때는 384만원이다. 전문직이 33만원으로 가장 많고, 공무원 32만원, 사무직 31만원 등이다.
취업 준비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어학 점수나 자격증 취득 등 사교육 부분이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이 구직 비용 중 가장 부담스럽다고 느낀 항목은 취업 사교육비로 나타났다. 취준생 80.4%는 어학 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48.4%는 컴퓨터 처리 능력 향상, 36.3%는 자격증 취득 및 직무 관련 교육을 위해 각각 학원에 다녔다고 답했다.
위원회 측은 "기업들이 면접 비중을 확대함에 따라 자기소개서 첨삭이나 모의면접, 이미지 메이킹 등을 위해 고가의 취업 컨설팅 학원에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 "자식 힘들어하는 모습 보면 지원해줄 수밖에 없어"
취업 비용이 부담스러운 건 구직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취업 비용 중 상당 부분은 부모 등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이 취준생을 대상으로 취업 준비 비용 마련 방법을 조사한 결과, 59%가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고 답했다. 가족과 친지 도움은 58%로 그 뒤를 이었다.
청년위원회 조사에서도 역시 취업 사교육비 수강비용 마련 방법으로 '부모 등 가족의 지원'이 44.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스스로 마련+가족 지원'이 27.4%, '스스로 마련'이 27.2%로 그 뒤를 이었다. 대출 또는 융자라고 답한 이도 0.6%를 차지했다.
26세 취준생 아들을 둔 남 모(50) 씨는 "자식이 취업이 안 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지원해줄 수밖에 없다"면서도 "솔직히 대학 교육까지 뒷바라지해줬는데 취업 준비까지 해줘야 하니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준비생인 이 모(21) 씨는 "인터넷 수강비와 교재비 등으로 매달 70만원 가량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다"며 "죄송스럽긴 하지만 공부에 방해돼서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 길어지는 구직기간
더 큰 문제는 구직기간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실업자의 평균 구직기간은 3.1개월이다. 이는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로 가장 긴 것이다.
실제로 대졸자의 구직기간은 전공에 따라 최대 1년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졸업자의 평균 구직기간은 7개월이다. 교육 전공생이 13개월로 가장 길었고, 인문(10개월), 예체능(9개월) 등의 순이었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유 모(24) 씨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보통 2년 안팎인) 자격증 기한이 하나둘씩 만료된다. 다시 공부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며 "구직기간이 길수록 들어가는 돈은 곱절로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씨는 "취업할 때까지 돈이 얼마나 더 들지 모르겠다"고 했다.
◇ 취준생 지원 등 사회안전망 확충 필요
전문가들은 취업준비생을 위한 사회적인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의 경우, 근로 경력이 없어서 고용 보험 가입이 안 된 취업준비생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없다"며 "반면에 벨기에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구직자들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교육 수당 등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청년 일자리 대책'에 따르면 내년부터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지 2년 이내인 청년들은 6개월간 월 50만원의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민주홍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현행 취업 지원 제도는 국가가 지정한 훈련 기관에서 특정한 교육을 받는 것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데, 이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직업 분야에만 그칠뿐더러 지원 분야 이외의 것을 준비하는 구직자에게는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민 연구위원은 "지원 범위를 넓혀 다양한 취업 스펙 마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