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슈바이처” 평생 병원 옥탑방에 살며 '인술' 펼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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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대표적인 위인 '장기려 박사'를 조명한 유시민 작가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한평생 희생...'무소유' 삶 실천해

곰TV, tvN '알쓸신잡3'

'한국판 슈바이처'라고 불린 고(故) 장기려 박사 일대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6일 방송된 tvN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 작가는 멤버들에게 고 장기려 박사 얘기를 전했다. 장기려 박사는 한국 외과학 분야 선구자로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 의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부산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위인인데 부산 분들은 꽤 많이 알지만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전국적 인물로 부각이 안 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의사로서도 훌륭한 분이지만 거의 성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이하 tvN '알쓸신잡3'
이하 tvN '알쓸신잡3'

장기려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간 절제 수술에 처음으로 성공한 외과 전문의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평생 복음병원 옥탑방에서 기거하며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월급을 모두 썼다.

유시민 작가는 "어떤 환자한테는 생닭 두 마리값을 처방전으로 줬다. 영양실조로 온 환자인데 이 사람은 먹어야지 병이 나으니까"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장기려 박사는 돈이 없다는 환자들에게 몰래 뒷문을 열어주며 도망치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장기려 박사는 국가에서 국민의료보험제도를 만들기 전 국내 최초로 민간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보험'을 만들기도 했다. 환자들이 적은 회비를 내고 나중에 다쳤을 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청십자의료보험은 1989년 국민의료보험이 만들어질 때 참고가 되기도 했다.

장기려 박사는 6.25 전쟁 당시 북한에 두고 온 아내를 평생 그리워하며 재혼을 하지 않았다. 유시민 작가는 "주변에서 재혼을 그렇게 권하고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했지만 6남매를 낳았던 부인 사진만 간직하고 사셨다"라고 말했다.

장기려 박사는 이산가족 상봉 당시 정부에서 특별 상봉 대상으로 선정돼 아내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특권으로 가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그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거절했다. 장기려 박사는 끝내 아내를 만나지 못하고 1995년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