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유명 웹드 마다하고 '짧은대본'에 열광하는 이유
2020-02-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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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대본' 대표가 위키트리에 밝힌 인기 요인
“좋은 배우들 덕분이다”
웹드라마 전성시대다. 몇 년 전부터 작은 스튜디오들이 신인 배우들 모아 찍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방송국과 유명 배우들도 뛰어드는 레드오션이 됐다. 쏟아지는 웹드 속에서 '짧은대본'의 활약은 인상적이다. 소위 '비주얼 멤버'나 극적인 연애 없이 대학생들 일상을 그대로 반영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파른 유튜브 구독자 수 증가는 출연 배우들에 대한 팬덤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인들이 가득한 웹드 바닥에서 작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위키트리는 짧은대본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1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짧은대본 공동대표 최○○와 황○○를 만날 수 있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이 아닌 작품에 관심이 가길 원한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호칭도 대표가 아닌 피디로 통일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최) 회사 운영을 맡고 있다. 외주제작 피디로 10년 정도 일했다. 황 피디와는 절친한 사이다.
(황) 웹드라마 제작을 맡고 있다. 역시 10년 차 외주제작 피디다. 최 피디는 술 잘 사주는 좋은 선배였다(웃음).
# 어쩌다 회사 '짧은대본'을 차리게 됐나.
(최) 우리 둘은 '새끼 피디' 시절 만났다. 방송 일을 하면서도 직접 기획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2018년 황 피디가 웹드라마 기획을 보여주며 같이 해보자고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 방송 일을 하면서 웹드 '짧은대본'을 제작했다. 이후 반응이 좋아 아예 회사를 차렸다.
# 웹드 '짧은대본'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황) 사실 드라마를 해본 적은 없다. 학교에서는 영화를 전공했고 방송에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폰으로 웹드를 즐겨 봤는데 재미가 없더라. 보고 싶은 웹드를 내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안 써서 최 피디에게 보여줬고 바로 시작했다. 첫 영상인 '가희' 1편 촬영 장소가 그냥 사무실이었다. 책상 구석으로 밀어넣고 찍었다. 유튜브에 올릴 때도 비즈니스 채널이 아니라 개인 채널에 바로 올렸다. 가희가 전화오더라. 다른 영상들은 뭐냐고(웃음).

# 요즘 웹드가 정말 많다. 대형 제작사와 유명 배우들도 흔하다. 그럼에도 짧은대본이 인기를 끄는 요인은 무엇인가?
(황) 좋은 배우들 덕분이다. 우리는 배우가 품을 들이지 않으면 제작이 어려운 상황이다. 배우들에게 '열악한 환경인데 도와달라'고 했을 정도다. 이들이 의상부터 애드립까지 여러 가지를 준비해온다. 열정 가득한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
#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하다.
(황) '그놈의 열등감' 편을 촬영할 때였다. 극 중 정국이 '피스타치오'를 '파스타치오'로 잘못 발음하다 호석에게 지적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호석 역의 세현이 대본을 보더니 구글에서 피스타치오 영어 발음을 찾아 읽었다. 다들 빵 터졌고 이를 반영했다. 덕분에 이 장면을 재미있게 살릴 수 있었다.
# 다른 웹드에 비해 현실적인 스토리도 인기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진짜 대학생들 이야기라고 할까. 작가 몇 명이서 어떻게 대본을 쓰고 있나?
(황) 혼자서 한다. 대학 시절 내가 겪었거나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많이 가져온다. 매너리즘에 빠질 때는 최 피디가 잘 잡아준다. '이 아이디어는 좋다', '이건 아쉽다' 등. 배우들도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진아 역 수민이가 비공식적으로 짧은대본 막내작가다(웃음).

#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
(최) 처음에는 둘이서 월급을 쏟아부었다. '시영' 편부터 협찬을 받았다. '진원' 편은 오산시에서 협찬받았다. 최근에는 의류, 화장품, 어플 등 PPL 문의가 늘고 있다. 조금씩 지원받아 아껴가며 제작하고 있다.
# 어려운 점은 없나?
(최) 괜찮다.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사업하는 선배들을 만났다. 다들 어렵다고 하더라.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려운 게 왜 없겠냐만은 재미가 있으니까 힘이 생긴다.
(황) 딱 집어서 어려운 거는 없다. 물론 모든 게 어렵지만 일이 재미있으니까. 꿈을 꾸고 달려가기 바쁘니까 괜찮다. 힘이 들면 앞으로 계획에 대해 최 피디와 얘기한다. 그러면 힘을 얻는다.
#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짧은대본 하면서 싸운 적은 없나.
(황) 없다. 최 피디가 역할 분담을 확실하게 했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이다.
(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나도 피디인데 왜 제작에 개입하고 싶은 순간이 없겠나. 하지만 운영을 맡은 내가 개입하면 안 된다. 황 피디를 믿고 맡긴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 올해 짧은대본의 계획은 뭔가?
(최) 후배들을 키우고 싶다. 소수 정예로만 할 수 없고 회사를 키워야 하기에. 유튜브 말고 다른 플랫폼에도 들어갈 생각도 하고 있다.
(황) '가희', '시영', '진원' 편에 이어 '다희' 편을 준비 중이다. 매주 업로드하는 영상 수도 하나에서 둘로 늘리고 싶다.

인터뷰 시간 90분이 훌쩍 지나갔다. 두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짧은대본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웹드라마는 만드는 사람을 닮아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