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당선인을 만나다] “죽으려고 일하나… 장시간 노동문화 끝내고 싶다”

2020-05-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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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회사가 노동환경 개선에 모범 보여야… 노조 일상화 앞장”
“주 52시간제에 꼼수 있다… 노동자들 직접 찾아 목소리 청취”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하 위키트리 전성규 기자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하 위키트리 전성규 기자

1992년생. 올해로 만 28세. 2024년까지 4년 동안 대한민국 의정을 책임질 21대 국회에 최연소로 입성. 역대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얘기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류호정 당선인을 만났다.

류 당선인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게임 업체 스마일게이트에 입사했다. 하지만 배정된 팀이 목표 달성에 미치지 못하자, 회사는 팀 해체와 부서원 전환배치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류 당선인만 권고사직하는 일이 발생했다. 류 당선인은 재직 당시 노조 설립에 관여한 것이 밉보여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고 지적한 반면에 회사는 전환배치할 적합한 부서가 없어 합의하에 사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류 당선인은 게임 BJ로 변신해 방송 활동을 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으로 적을 옮겨 선전홍보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 류 당선인은 지난달 정의당 비례대표 1번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례적일 정도로 젊은 나이, 독특한 이력, 톡톡 튀는 발언…. 더구나 당 지지도를 고려할 때 당선은 떼놓은 당상. 류 당선인은 즉각 이슈의 중심으로 부각했다.

정의당 정치인답게 류 당선인의 첫 번째 관심은 노동 문제, 그중에서도 IT·게임 업계 노동 문제다. 그런 면에서 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을 맡은 것은 당연한 행보다. 그는 “국회의원 권한을 약자들에게 사용할 것”이라며 향후 행보에 의욕을 보였다.

류호정 당선인은 스마일게이트 재직 당시 노조 설립을 주도한 바 있다.
류호정 당선인은 스마일게이트 재직 당시 노조 설립을 주도한 바 있다.

- 스마일게이트 재직 당시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해 달라.

지금은 없어졌는데 제가 있을 당시 신입사원 워크숍에서 춤을 추게 했다. 일단 췄다. 이후 이 문화를 내가 없앴다(웃음). 춤은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춰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춤추는 것 역시 싫어한다(웃음).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점 역시 기억에 남는다. 2017년 말에 정의당 당원으로 가입했고, 이를 통해 네이버 노조와 연락이 닿았다. 게임 업계에선 처음 있었던 시도라고 하더라. 파리바게뜨 노조처럼 평범한 노동자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 스마일게이트 노조 설립을 주도했을 당시의 사정을 자세히 얘기해 달라.

네이버 노조에 자극을 받았다. 네이버 노조는 2018년 4월에 생겼다. 동종(IT) 업계 일이라 더욱 피부에 와 닿았던 것 같다. 네이버에 노조가 탄생한 것을 보고 노조를 만들어 합법 테두리 안에서 근로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후 스마일게이트 내에서 구성원을 찾기 위해 힘썼다. 다만 회사 입장에선 민감한 부분 아닌가? 비밀리에 진행돼야 했다. 때문에 인원을 모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도와주면서도 익명을 요구하는 분들도 있었다.

- 이후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렇다. 민주노총 화섬노조로 적을 옮겼고 선전홍보부장을 맡게 됐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스마일게이트에서 나온 후 노조가 설립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당시 지배적이었다. 죄책감이 상당히 컸다. 스마일게이트 재직 당시 나는 게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선전홍보부장을 맡았을 땐 게임이 아닌 게임을 만드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도 보람찬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류호정 당선인은 노조가 일상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류호정 당선인은 노조가 일상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 게임 업계 빅3인 3N(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가운데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노조가 없다.

노조 설립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설립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대를 짊어질 사람이 필요하다. 일부 구성원은 노조 일에만 전담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 커리어의 중단으로 이어진다. 노조 설립엔 찬성하나 이를 걱정하는 분이 상당히 많다. 일각에선 ‘3N 같은 큰 기업에 굳이 노조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현재 게임 업계는 장시간 노동·고용 불안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큰 회사가 앞장서 노동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저 역시 엔씨소프트, 넷마블 노조 설립에 힘을 보태며 노조가 일상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다.

-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출발점은?

포괄임금제 폐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은 건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죽으려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 공짜 노동을 유발한다. 이를 폐지하면 노동자는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회사도 노무 관리에 신중을 기할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역시 개선해야 한다. 노조가 있으면 노동자가 52시간 초과 근로에 대해 노조에 신고할 수 있다. 때문에 회사는 긴장하고 제도 준수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노조가 없는 회사의 노동자는 다르다. 야근을 하고 52시간 근무를 초과했는데 기록을 못 하게 한다는 제보도 받았다. 이처럼 주 52시간 근무제에도 꼼수가 있다. 근로 감독제 등이 보완돼야 하는 이유다.

“정의당 정치인은 한 곳(IT·게임 업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정의당 정치인은 한 곳(IT·게임 업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 IT·게임 업계 전반에 걸쳐 노동자 사망·사고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IT·게임 업계를 넘어 모든 노동자들에게 힘이 돼 도움을 드리고 싶다. 정의당 정치인은 한 곳(IT·게임 업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먼저 노조가 없는 기업의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가 귀를 기울일 예정이다. 4년간 항해의 시작이 될 것이다.

- 게임 내 유료형 아이템 결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게임도 콘텐츠이므로 이용자가 업체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 자체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유료 결제를 하지 않으면 게임이 불가능한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A, B, C, D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사실상 게임이 불가능하게 운영된다더라.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 아직까지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게임은 문화이자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질병으로 생각하는 등 부정적인 편견을 깨려면 ‘게임 문화의 날’ 제정과 같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생각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편견을 깰 수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류호정 당선인.
‘설명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류호정 당선인.

그는 ‘평범하게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무난하게 대학교에 가서 취업하고 결혼하는 삶을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런 삶을 동경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천편일률적인 삶에서 벗어나 의문을 제기하고 남들과 다른 일상을 이어가도 ‘설명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사회, 다름을 모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는 말일 터. 의원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숱한 부침과 논란으로 맘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발언이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당선 전 불거진 ‘리그 오브 레전드’ 대리 게임 논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리 게임은 제가 잘못한 일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과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다만 “대리 게임으로 취업이나 제 삶에서 이득을 취한 일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home 김성현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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