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도 군대에 가야 하나요?”

2020-07-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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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선양 불구하고 e스포츠는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불발
e스포츠 두고 “게임 질병” vs “게임도 스포츠” 의견 분분

'페이커' 이상혁 / 뉴스1
'페이커' 이상혁 / 뉴스1

최근 사석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롤)을 주제로 설왕설래하던 와중에 동석한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손흥민은 병역이 면제됐는데 왜 페이커는 군대에 가야 해?” ‘롤’로 국위 선양 중인 페이커가 군복무보다는 지금처럼 한국의 위상을 떨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주장이다. 올해 초 중국 유력 포털 사이트가 페이커를 김연아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그룹 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 손흥민 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5대 국보’로 선정한 만큼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아니다.

5대 국보 2명이 2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적이 있었다. 대회에서 한 명은 금메달을, 또 한 명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흥민은 금메달 획득으로 군복무 혜택을 누렸고, 페이커는 “좋은 경험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롤’을 비롯한 e스포츠는 당시 아시안게임에서 시범 종목이었다. 메달은 주긴 했으나 공식 집계나 순위 통계에 반영하진 않은 것이다.

이후 ‘롤’을 비롯한 e스포츠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대회 정식 종목 37개 명단을 공개했지만 아쉽게도 e스포츠는 명단에 없었다. 최종 명단은 오는 9월 발표되지만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혹자는 “게임은 질병이다”, “게임은 스포츠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아시안게임, 올림픽 종목으로 e스포츠가 거론될 때마다 쌍심지를 켠다. 대부분 스포츠는 공공재지만, 게임은 배제성을 갖춘 사유재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배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엔 게임 개발사 저작권, 퍼블리싱 문제까지 곁들여진다.

앞서 주장과 대척점에 선 이들은 게임을 스포츠라고 말한다. 온라인 상이지만 정신·신체적 능력을 활용해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게임이 축구·농구와 같은 스포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게임이 스포츠인지 아닌지 논란을 떠나서 일단 e스포츠로 분류하기 때문에 스포츠로 통칭할 수는 있겠다.

브라질 축구 영웅 호나우두가 페이커와 손을 맞잡고 있다. / OGN 방송화면 캡쳐
브라질 축구 영웅 호나우두가 페이커와 손을 맞잡고 있다. / OGN 방송화면 캡쳐

다만 좀 더 살을 붙이면 이렇다. ‘롤’ 월드챔피언쉽(롤드컵) 결승전 시청자 수는 4400만명(이하 2016년 기준)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 시리즈 7차전 시청자 수(4000만명), NBA 파이널 7차전 시청자 수(3080만명)를 웃도는 수치다.

롤드컵 2018 결승전 오프닝 공연은 올림픽, 월드컵, 슈퍼볼 등을 제치고 스포츠 에미상을 수상했다. 2022년 e스포츠 산업 규모는 3조원을 넘고, 시청자 수는 3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호나우두(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데 리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축구스타나 NBA 전설 샤킬 오닐 등이 본업보다는 e스포츠 산업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e스포츠의 미래가 밝다고 입을 모은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게임의 올림픽 입성을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e스포츠는 폭력적이라 올림픽 가치와 맞지 않는다.” 바흐 위원장은 펜싱 선수 출신이다. 펜싱은 검을 가지고 상대하는 두 경기자가 ‘찌르기’ 또는 ‘베기’ 등의 동작으로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다. 게임과 다르지 않다.

그보다 앞서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 교류를 통한 국제 평화의 증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페이커의 얼굴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전광판에 등장했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그것도 중국 팬클럽 회원들이 생일을 맞은 페이커를 축하하기 위한 ‘교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국내 e스포츠, 아니 스포츠 선수론 페이커가 유일하다. 손흥민도 타임스퀘어에 등장한 적은 없다. 이쯤되면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론 불발돼도 스포츠쯤은 될 수 있겠다. 똑같은 ‘한국의 보물’이 공정한 혜택을 받길 희망해본다. 또,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프로게이머가 스포츠 선수로 불리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길 바란다.

home 김성현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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