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소주'의 과거, 알고 보니 독립운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네요

2021-03-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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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자금 지원위해 개발된 술 '진로'
북에선 원숭이, 남에선 두꺼비가 로고

하이트진로 유튜브 캡처
하이트진로 유튜브 캡처
하이트진로 유튜브 캡처
하이트진로 유튜브 캡처

중장년층에게는 향수, 젊은층에게는 뉴트로 열풍 속에 진로 소주(일명 진로이즈백)는 술자리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소주의 대명사인 진로가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어진 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진로의 창업주 고(故) 장학엽(1903~1985) 회장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제자다.

그는 1923년 황해도 곡산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당시 교장은 일본인이었으나, 학생들에게 꿋꿋이 조선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돼 결국 학교에서 쫒겨났다.

장 회장은 자신의 손으로 조선인 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한다. 설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바로 양조장.

장 회장은 이듬해 평안남도 용강군 진지동에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하고 진로(眞露)라는 이름의 소주를 출시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진로 소주의 효시다.

상품명은 진지동(眞池洞)의 진(眞), 증류 방식으로 술을 빚는 과정에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에 착안한 로(露), 두 글자에서 따왔다.

한국전쟁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장 회장은 부산에서 소주 '금련'을 만들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정착해 소주 생산을 본격화한다. 당시 신길동은 예전부터 물이 좋기로 소문났던 곳이었다.

진로는 1954년 상표를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바꿨다. / 하이트진로
진로는 1954년 상표를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바꿨다. / 하이트진로

장 회장은 진로 상표를 부활시키면서 로고에 쓰인 동물을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바꾼다. 원숭이는 서북 지방에서 영특함을 상징했지만 남한에서는 일본 이미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대 여러 소설에서 영물로 등장하는 두꺼비는 번식률이 높아 번영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었고, 특히 아침저녁으로 차고 깨끗한 이슬을 받아먹는 장생의 동물로 알려져 진로의 이미지와도 부합했다.

두꺼비를 앞세운 진로 소주는 한국의 전후 경제개발 기적과 함께 성공 신화를 쓴다.

창업자이자 진로 소주의 개발자였던 장 회장은 1985년 타계했다. 그는 앞서 1974년 서울 구로구에 우신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실력양성을 꿈꾸던 조선어 교사의 꿈을 이룬 것이다.

진로는 2세 경영체제에서 무리한 계열사 확장 등으로 IMF때 부도가 났고 결국 하이트맥주와 합병돼 하이트진로로 재탄생했다. 합병 후에도 하이트진로는 장 회장의 민족정신을 이어받아 독립유공자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990년대 ‘진로골드’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사라진 진로는 2019년 진로이즈백으로 다시 태어났다. 1970, 1980년대 푸른 진로 라벨 등 과거 디자인을 복원해 20, 30대 젊은이들을 겨냥해 내놓은 제품이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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