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인 오늘(5일)은 대한민국 '해군·해병대의 아버지'가 태어난 날입니다”

2021-05-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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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초대 해군참모총장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일부 지휘한 손원일 장군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는 어린이날. 5일(오늘)은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이자 독립유공자인 손원일 장군의 음력 생일이다.

손 장군은 지난 1919년 6월 22일(음력 5월 5일)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음력으로 생일을 따지는 경우가 더 많던 시절이었다.

미 해군 스트러블 제독과 악수하는 손원일 장군 / 이하 뉴스1
미 해군 스트러블 제독과 악수하는 손원일 장군 / 이하 뉴스1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손 장군은 민간 상선의 항해사로 뱃사람이 됐다. 중국 해군 국비유학생으로 독일에서 유학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손 장군은 조국을 잊지 않았다. 그의 부친 손정도 목사의 영향이었다.

손 목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임시의정원 의장(현 국회의장)을 역임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힘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손 장군 역시 상하이 독립운동 단체 비밀연락원 임무를 받아 입국했다는 혐의로 일제에 의해 옥고를 겪기도 했다.

광복 이후 손 장군은 대한민국에 귀국해 현재 해군의 모체가 된 '해방병단'을 창설했다. 이어 조선해안경비대의 총사령관으로 부임했다가 1948년 9월 5일 해군 창설과 동시에 초대 해군참모총장이 됐다.

부임 다음해인 1949년에는 신현준 장군의 건의를 받아들여 해병대 창설을 승인하기도 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6.25 전쟁)이 발발하자 손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영흥도와 덕적도 탈환 작전을 지시했다.

이 탈환 작전의 성공은 이후 인천상륙작전 대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손 장군은 자신이 직접 소총을 들고 한국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휘하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 촬영한 손원일 장군(윗줄 왼쪽 두 번째)
김구 선생과 함께 사진 촬영한 손원일 장군(윗줄 왼쪽 두 번째)

또 손 장군을 찾던 미군 장성들이 "최전방에서 돌격하고 있다"는 그의 보고에 경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상륙작전 후에도 손 장군이 이끄는 해군은 바다에서 북한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고 이는 우리 군 전체에 큰 힘이 됐다.

휴전 후 중장으로 예비역에 편입한 손 장군은 다음해 국방부 장관에 취임해 1956년까지 장관직을 맡다 퇴임했다.

이후 1980년 신장병 투병 중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손 장군을 이순신, 장보고와 함께 '한국 역사의 3대 제독'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현재 손 장군의 이름은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으로(손원일함) 그리고 매년 해군을 위해 힘쓴 장병에게 수여하는 상으로(손원일상) 남아 있다.

다음은 손 장군이 임종 당시 남긴 것으로 알려진 유언이다.

사랑하는 내 조국을 위해 나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한다.

그들은 모두 바르고 굳건한 신념으로 해군을 만들어 보려고 힘썼고, 오늘날의 해군으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확신한다.

내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귀한 생명을 바친 우리 조상들의 사무친 한과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 산화한 장병들의 넋과 한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 없는 서러움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home 황기현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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