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최초로 예능에 자막 넣었다가 욕 먹은 후 중국서 800억 대박 낸 MBC PD의 근황

2021-05-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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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폐지 막아낸 예능계의 전설 김영희 PD
예능 최초 자막 시도에 시청자 항의전화 빗발치기도

김영희 MBC PD가 2013년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인간관계론을 주제로 열린 '열정樂서' 시즌4 열번째 강연을 하고 있다. / 뉴스1
김영희 MBC PD가 2013년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인간관계론을 주제로 열린 '열정樂서' 시즌4 열번째 강연을 하고 있다. / 뉴스1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는 문구. 과거 한 증권회사의 광고로 쓰였던 것이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의 의미였다. 업계에서 역발상 전략은 종종 실적으로 이어진다. 특히 톡톡 튀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방송계에서 역발상으로 성공신화를 쓴 이들이 많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최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은 유재석 데뷔 30주년 특집으로 꾸며져 그의 후배, 친구, 스승이 출연했다. 마지막 게스트로 등장한 사람이 예능계의 전설, 김영희(61) PD였다.

김 PD는 MBC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 '느낌표' 등 굵직한 공익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만든 스타 PD의 원조격 인물이었다. 오랫동안 그와 호흡을 맞춘 연예인으로는 이경규, 이경실, 김용만, 유재석, 김국진, 박경림 등이 있다.

김 PD는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저조해 폐지 위기일 때 MBC의 최연소 국장이었다. 당시 그는 편성팀의 무한도전 퇴출 추진을 막아내려 애썼다. 지하철과 달리기하고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는 등 피땀 흘리며 노력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성공할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

유재석은 그 당시 김영희가 마주치기만 하면 "걱정말고 계속 하라"고 격려해 줬다며 "그래서 더 목숨걸고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김 PD의 뚝심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 예능 방송에서 최초로 자막을 넣은 연출자다.

MBC '놀러와' 방송 화면 캡처
MBC '놀러와' 방송 화면 캡처

인물 소개나 정보 소개를 했을때 썼던 자막을 예능요소로 삽입한 것. 일본으로 6개월 연수갔을때 현지 방송에서 자막을 예능 요소로 넣는 걸 보고 자막을 넣으면 생동감도 살리지 않을까 착안했다. 당시 우리나라 TV프로서의 자막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시도했을때는 상황을 풀어놓거나 PD가 코멘트를 내놓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출연진의 말을 다 받아서 자막으로 만드는 식이어서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청각장애인이냐"는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타 방송국에서도 흥미롭다며 따라했고, 이후 자막이 한국 예능 필수요소로 정착됐다.

김 PD의 별명은 쌀집아저씨. 그의 첫 연출작이자 히트 코너였던 '이경실의 도루묵여사'에서 유래됐다. 검은 뿔테안경에 수염 정리가 안 된 꾀죄죄한 김영희의 모습을 보고 이경실이 "명색이 PD면서 행색이 꼭 쌀집아저씨 같다"며 놀려대던 것에서 유래됐다.

1986년 MBC 예능국에 입사한 김 PD는 조연출을 거쳐 정식 PD가 된 후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맡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6년 '양심냉장고'를 통해 일명 스타PD 반열에 올랐다.

기획 당시 정지선을 지키는 차량 운전자에게 냉장고 선물을 준다는 콘셉트에 대해 "이게 무슨 재미가 있냐", "톱 연예인이 나와야 시청률이 나오는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라니" 등 강력한 내부 반대를 소신으로 버텨냈다.

어렵사리 프로그램 편성에 성공한 이후 촬영 과정은 더 힘들었다. 첫 촬영 날 새벽 3시까지 나타나는 모든 차들이 정지선을 지키지 않자, 추위와 졸음에 못이긴 스태프들은 "할 만큼 했으니 철수하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해가 뜰 때까지 촬영할 것이고 주인공이 안 나타나면 내일 다시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결국 그날 새벽 4시 13분 기적처럼 양심냉장고 1호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텅 빈 도로 위에 길을 건너는 사람도, 보는 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신호등 빨간 신호를 지키며 정지선에 정차한 주인공 차량을 김영희 PD는 직접 차량을 막아서고 인터뷰를 부탁했다. 차량에서 내린 주인공은 지체장애인 부부 이종익 씨 내외였다.

이 장면은 국민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고, 양심냉장고 방영 후 '일밤'의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서 30% 이상으로 급등했다. 이후 김영희 PD의 일명 '착한 예능' 콘셉트는 국내 예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2011년 내놓은 '나는가수다' 역시 화제성과 시청률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역대급 히트작이었다. 나가수는 당시 아마추어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이던 분위기를 프로의 세계로 끌어들여 국민적 관심을 얻었다.

김영희 PD가 2013년  서울 광진구 자양동 W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백지영-정석원 결혼식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뉴스1
김영희 PD가 2013년 서울 광진구 자양동 W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백지영-정석원 결혼식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뉴스1

나가수 폐지 이후 그는 나가수 출연 가수들의 주례를 봐줬다고 전해진다. 백지영·정석원 커플의 결혼식에도 주례로 나섰다.

2014년 MBC를 퇴사한 김 PD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현지에 외주 제작사 비앤아르(B&R)를 설립해 후배PD와 함께 '폭풍효자'를 시작으로 총 수익 800억원, 순수익 200억원을 벌어들이며 성공을 거뒀다. 중국의 예능 트렌드를 관찰 예능으로 뒤집어놓았고, 스튜디오물이 전부이던 중국 예능에 야외 버라이어티를 자리잡게 했다.

또한 미가미디어라는 회사를 중국에 설립하기도 했는데, '미가'의 뜻은 다름아닌 쌀집(米家).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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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6년 갑작스레 불어닥친 ‘한한령’(한류제한령)을 피해갈 순 없었던 그는 국내로 복귀했고, 2018년 MBC 콘텐츠 제작 부문 총괄역(부사장급)으로 기용된다.

중국 시장에서 대규모 제작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했던 그의 경험을 높이 샀다고 MBC는 설명했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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