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금수저의 끝판왕… 역사 속 유명 위인의 피를 물려받은 연예인 5인방

2021-06-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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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빈이 7년간 숨긴 정체 '윤봉길 의사 종손'
정약용 6대손 정해인… 독립투사 후손 신해철

부모의 영향력으로 유복하게 자라난 이들을 일컫는 금수저. 연예인들 중에도 남다른 성장배경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 금수저들이 있다. 그런데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아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위인들의 고결한 DNA를 물려받은 후손 연예인들이 있다.

정약용 직계 6대손, 정해인

정해인 / 뉴스1
정해인 / 뉴스1

배우 정해인(33)은 조선 후기 최대 실학자이자 조선이 낳은 천재인 다산 정약용의 6대손이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정해인은 선조 정약용이 살던 시기를 그린 영화 '역모: 반란의 시대'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대 임금이었던 정조가 정약용을 보고 얼굴이 희고 단아하며 아름답다고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외모도 되는데 온갖 지식을 죄다 섭렵하고 인간 됨됨이까지 좋은 완전체, 즉 '엄친아'였던 것. 정해인의 얼굴은 조상덕인 셈이다. 팬들 사이에서 '정선비'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준수한 외모, 단정하고 깍듯한 정해인의 모습이 '정약용 6대손'이란 이력과 맞아떨어져 더욱 회자된다.

독립운동가 손녀, 박환희

박환희 / 뉴스1
박환희 / 뉴스1

2016년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통해 연기자로 발돋움한 배우 박환희(31)는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하종진 선생이다.

그녀는 예능 프로에서 "어머니가 어릴 적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뵌 적은 없지만, 독립만세를 외칠 때 태극기를 나눠주며 항일투쟁을 하셨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종진 선생은 항일투쟁을 하다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독립투사다. 독립만세 시위 때 경남 함양에서 태극기를 나눠주고 대구 시내의 주요 관청 폭파를 계획했다. 1990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독립운동가 후손, 신해철

신해철
신해철

'마왕' 고 신해철 역시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다. 외증조부 이성구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펼친 인물이다.

일제에 폭탄으로 맞선 의열투쟁의 선봉장으로 친일파 태산면장을 처단해 일제로부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상해 일본영사관에 2차례 폭탄을 투척해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결국 이성구 선생은 경성감옥에서 옥고 중 순국했다. 1990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2009년 신해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외증조부의 사진을 직접 공개하며 "3.1 운동 후 자진 체포되신 후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윤봉길 의사 종손, 윤주빈

큰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들고 있는 배우 윤주빈.
큰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들고 있는 배우 윤주빈.

배우 윤주빈(32)은 2012년 데뷔 당시 자신의 정체(?)를 숨기다 7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독립운동가 윤봉길의 종손이라고 '커밍아웃'했다. 윤봉길 의사는 윤주빈의 큰할아버지다. 두 형제의 나이터울은 아홉 살이다.

윤주빈이 윤봉길 의사의 종손이라는 사실을 숨겼던 이유는 큰할아버지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윤주빈이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조상 윤봉길 의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는 전언이다.

윤봉길 의사는 국사 교과서에 실린 대표적인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다. 1932년 4월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을 즉사시키는 거사(훙커우공원 의거)를 이뤄냈고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돼 총살됐다. 그 공로로 1962년 건국훈장 중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윤주빈은 201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윤봉길 의사 종손으로 참석해 ‘심훈 선생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윤주빈이 낭독한 편지는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독립운동가 심훈 선생이 어머니께 쓴 서간문이다.

김구 선생 제자의 손자 김지석

김지석 / 뉴스1
김지석 / 뉴스1

배우 김지석(40)은 백범 김구 선생의 제자인 김성일 선생의 손자다. 김성일 선생은 19살이던 해 중국 만주 독립의용단에 가입해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

1920년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출옥 후 중국 상하이로 이주했고 김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됐다. 1932년 훙커우공원 의거 직후 윤봉길 의사와 함께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김성일 선생은 자녀들의 이름을 태어난 곳의 지명을 따는 독특한 작명법이 있었다.

장남은 베이징에서 태어나 이름이 김북경(金北京), 차남은 서울 장충동에서 태어나 김장충(金奬忠), 3남은 충남 아산군 온양면에서 태어났다고 해 김온양(金溫陽)으로 지었다.

이 중 막내 아들 김온양의 차남이 배우 김지석이다.

김지석의 큰 형은 출생지가 서울 신사동이어서 본명이 김신사(金新沙)였는데, 세 살 때 김반석(金盤石)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김지석의 경우 부활절에 태어나 이름이 김부활(金復活)이 될 뻔했으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평범한 이름을 지니게 됐다고. 이런 비화는 수년 전 김지석이 KBS2 예능 프로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 알렸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