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오늘… 역사에 기록될 전설적인 가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2021-06-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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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세상 떠난 마이클 잭슨
생전 흑인음악에 대한 편견 타파하고 팝의 새 역사 써

이하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스틸컷
이하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스틸컷

'팝의 황제',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12년이 지났다.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마이클 잭슨을 포함해 모두 10명. 철강 노동자였던 부친 조셉 잭슨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R&B 밴드인 팔콘즈와 기타를 연주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잭슨 브라더스. 마이클 잭슨은 이 그룹의 멤버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잭슨 브라더스는 후에 이름을 잭슨 파이브로 바꿨다.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 1961년부터 1971년 사이에 무려 110곡을 빌보드 핫 100에 진입시켰다. 특히 1970년에는 'ABC', '더 러브 유 세이브', '아윌 비 데어', '아이 원트 유 백' 등 네 곡을 빌보스 핫 100 1위에 올리며 밴드 역사상 최고 기록을 썼다.

이 당시 마이클 잭슨의 나이는 불과 12살. 12살이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마이클 잭슨은 최연소 빌보드 핫 100 1위라는 타이틀을 갖고 1971년 솔로 아티스트로 정식 출격했다.

마이클 잭슨은 이후 잭슨 파이브(더 잭슨스)와 솔로 가수 활동을 병행했다. 그러다 뮤지컬 영화 '더 위즈'에 출연하며 '천재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만났고 이것이 그의 인생을 크게 바꿨다.

퀸시 존스와 손을 잡은 마이클 잭슨은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발매한 솔로 앨범인 '오프 더 월'은 퀸시 존스와 함께해 탄생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 가운데 무려 네 곡이 빌보드 핫 100에서 톱10에 올랐고 '돈트 스톱 틸 유 겟 이너프'와 '록 위드 유' 등 두 곡은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마이클 잭슨은 여전히 흑인음악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대우가 존재하던 1970~1980년대 팝의 지형을 완전히 바꿨다. 특히 1982년 발표된 '스릴러'는 전 세계에서 널리 가창되며 앨범이 매 주 100만 장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 앨범은 모두 9개 국가의 앨범 판매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끝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1984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마이클 잭슨에게는 빌보드 200에서의 첫 1위를 안긴 음반이기도 하다.

'빌리 진', '빗 잇', '휴먼 네이처'를 비롯해 앨범에 수록된 모든 노래들이 빌보드 핫 100 톱 10에 올랐고, '빗 잇'과 '빌리 진'은 1위를 차지했다. '스릴러'는 MTV의 주요 시간대에 방송된 최초의 흑인 음악가의 뮤직비디오였다.

이후 마이클 잭슨은 전쟁, 평화, 미디어 편향 등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노래에 녹여 표현하며 전 세계를 아우르는 팝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위 아 더 월드', '맨 인 더 미러', '스무드 크리미널' 등 숱한 히트 곡들을 남기며.

마이클 잭슨은 컴백 라이브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던 2009년 6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프로포폴 과다 투여. 당시 잭슨의 불면증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던 개인 의사인 콘래드 머레이가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례는 그 해 7월 7일 가족 예식으로 치러졌다. 잭슨을 추모하는 공식 행사는 전 세계 12억 명 이상의 인구가 시청했다.

home 정진영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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