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진삼 충청향우회중앙회 13대 총재
2022-10-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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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과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여야를 떠나 누구든지 만나 협력할 것
총재 취임후 1억7천만원 장학금 지원 받아내기도

[위키트리]김주완 기자= 육군 참모총장과 체육청소년부장관을 역임 한 충남 부여 출신의 이진삼 전 국회의원(18대·자유선진당)은 지난 7월1일 충청향우회중앙회 제13대 총재에 취임했다.
우리나라 국방·안보분야 최고의 전설적인 인물로 정평이 나있는 이 총재는 평생 군인으로서 외길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는 군 생활 당시 수차례에 걸쳐 간첩과 무장공비 검거는 물론 제4땅굴 발견 등 문무를 겸비한 4성장군 출신의 자랑스러운 충청인이다. 1975년 군 복무 시절부터 지금까지 필자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그를 지난 19일 서울 중구 장교빌딩 충청향우회중앙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총재는 먼저, 어려운 시기에 향우회 총재직를 수락한 배경에 대해 "총재추대위원회에서 나를 만장일치로 추대 했는데 안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충청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우리 충청향우회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충청 발전을 위해 총 칼 들고 전투에 임할 때 보다 더 열성을 다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향과 충절의 고향, 충청도에 대해 "흔히 충절의 고장 충청사람들을 참된선비, 양반이라고 한다"면서 "충청도 어느 구석을 밟아도 충신, 열사, 의사의 정기와 발자취가 배어있지 않는 곳이 없는데 요즘 충청인들이 이와 같은 선조들의 향풍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분열 잘하는 충청인, 맥 빠진 충청인, 적극성 없는 충청인,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는 충청인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리의 자존심과 긍지를 짓밟을 때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선비 정신, 청풍명월 양반의 고향에 새 시대가 요구하는 적극적이고 화끈한 개척정신,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접목시켜 충청 정신을 재정립 하는게 저 자신 평소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내·외 1천250만명 충청인들의 단합과 결속을 이끌어 내 향우회의 위상을 높이고 충청도를 타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장으로 성장시켜 보려는 굳은 의지로 많은 선후배들의 요구에 고심 끝에 총재직을 수락하게 됐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충청향우회의 향후 사업계획에 "그간 갈등과 반목으로 흩어진 전국 향우회 조직을 재결속시키기 위해 (코로나19 등으로)중단된 산악회, 골프회, 여성회 등 각종 친목 모임 등을 활발하게 재개하고 회보 발간과 연말연시 송년회, 신년회를 등을 통해 충청인의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이벤트를 계획 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중앙회에 충청인 인재육성을 위한 '재단법인충청문화장학재단'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성공한 유력인사 등 충청출신 기업인들의 동참을 이끌어 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충남 공주가 고향인 파독광부 출신의 재미 동포께서 1억7천만원의 장학금을 쾌척해 주셨다"면서 중앙향우회 총재를 맡은 후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발적 회비 납부가 이어지고 있어 향우회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충청과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여야를 떠나 시·도지사를 포함한 어느 정치 지도자들과도 적극 만나서 협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끝으로 충청향우회 회원들에게 당부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충청향우회는 전국 각지의 시·군 향우회와 거주지 단위로 지역 충청향우회 등 여러 조직으로 구성됐는데 그동안 교류와 결속이 미진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며칠 전 서울 강서구 충청향우회 한마음체육대회에 다녀왔는데 4천500명이란 엄청난 인원이 참석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충청인은 모두 하나라는 인식하에 위상 제고를 위해 향우들의 화합과 단합을 다져 나가겠다. 제가 그 선두에 서서 직접 발 벗고 열심히 뛰겠다"며 "이제 남은 여생을 오로지 충청향우회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시키는데 매진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육군사관학교(15기)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21사단장, 3군단장, 1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노태우 정부에서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의 군사 무술인 특공무술을 특전사 참모장 시절 직접 고안해 보급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1967년 대위시절 방첩대 특공대장으로서 특수요원들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북한에 침투해 적 33명을 사살했던 일화가 국방부 문서의 기밀해제로 지난 2011년 MBC TV 9시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6·25 전쟁 이후 많은 간첩을 잡은 군인으로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 당시 이 총재의 북한 침투는 5.16 이후 남북간 경제력 차이가 벌어지지 김일성이 한국정부를 전복하는데 역량을 집중,수시로 무장공비를 침투 시키는 등 총 680회에 걸쳐 도발을 해 온 것에 대한 대응 보복차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