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직 의사입니다… CPR 망설이는 거 이해합니다"
2022-10-31 10:16
add remove print link
“여성 환자에 남성들 조치 못해” 생존자 증언
“살면 미담, 죽으면 처벌” 불편한 응급구조법

29일 발생한 서울 이태원 참사 당시 여성 환자를 상대로 남성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생존자 증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그런데 성추행범 누명을 쓴다는 걱정과는 별도로 일부 현직 의사들 사이에서도 응급 상황에서 나서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무슨 까닭일까.
30일 뉴스1에 따르면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자신을 이태원 참사 생존자라고 소개한 한 인물의 글이 올라왔다.

이 누리꾼은 "사고 당시 대다수 사람이 호흡 부전 증세를 겪는 상황에서 구급 대원들의 인력이 부족해 주위에 있는 시민 중 CPR이 가능한 사람을 찾았다"며 "그러나 환자 중 여성들이 대다수여서 남성들은 건들지도 못했다. 그래서 여성 간호사나 CPR이 가능한 여성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다행히 주위에 (여성) 간호사분들이 은근히 많아서 도와주시고 같이 수습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이런 기류에 동조하는 의료계 인사의 글이 떴다.31일 병원 어플 '똑닥서비스'에 '난 개업 의사다. CPR 망설여지는 거 이해한다'는 글이 올라와 에펨코리아 등 다른 커뮤니티에 공유됐다.



개업의 A씨는 "'신체 접촉 부분에서 떨어져 달라'는 리뷰를 받고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사연을 소개했다.
게시글에 따르면 최근 A씨 병원에 21살 된 여 환자가 어머니와 같이 내원했다. 열이 많이 나고 숨소리도 거칠었다. A씨는 환자 등에 청진기를 대고 진찰했다. 그런데 어머니 표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 환자는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와 A씨는 약을 주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뜻밖의 리뷰가 달린 것이었다.
A씨는 "성별을 떠나 의사가 환자를 그것도 등에 청진을 했는데도 저런 리뷰가 달린다"며 "저 리뷰 이후로 청진기를 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의사 면허도 없고 관련 자격증도 없는 사람들한테 CPR을 요구하느냐"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의사가 CPR을 망설이는 이유는 신체 접촉으로 인해 자칫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후유증 때문만이 아니다.
현행 응급의료법에서는 의사가 응급환자에게 처치하고 발생한 손해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민사, 형사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하지만 응급환자가 사망할 경우 응급 구조활동을 한 의사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민·형사적 처벌을 받고 있다.
이에 의료계는 "살려내면 미담이고, 못 살리면 처벌이냐"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다만 최근 국회에서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긴급하게 응급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의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응급처치 등을 할 때에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