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안 했는데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여자… 따지다 벌어진 과격한 싸움

2023-02-23 14:38

add remove print link

극단으로 치닫는 임산부 배려석 젠더 갈등
“항상 비워둬야” vs “그럴 필요 없다” 팽팽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왼쪽), 픽사베이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왼쪽), 픽사베이

일부 광역시에서 비임산부가 앉으면 경고음을 울리는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지만,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이용에 대한 잡음은 여전하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분쟁에 젠더 갈등이 얹히면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최근 벌어진 생면부지 젊은 남녀의 실랑이는 갈길 잃은 이 제도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21일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실시간 지하철 남녀 싸움'이라는 제보 글이 올라왔다.

블라인드
블라인드

글쓴이에 따르면 한 지하철 전동차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눈치 없이' 앉아있는 젊은 여성에게 비슷한 또래의 남성이 태클을 걸었다.

남성이 뜬금없이 "혹시 임산부세요""라고 말을 걸자, 여성은 당황하면서 "아뇨. 무슨 상관이세요?"라고 쏘아붙였다.

남성이 "여기 임산부석인데요"라며 면박을 주자, 여성은 "(앉고 아니고는) 제 마음인데요. 배려석 아닌가요?"라고 응수했다.

이 지점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격화됐다.

남성이 "님이 그렇게 앉아계시면 배려가 돼요?. 비워둬야 하는 자리라고 못 배우셨어요?"라고 공세를 이어가자, 여성은 "아 별꼴이야 XX(욕설 표현)"이라며 육두문자를 날렸다.

언쟁의 주제는 얼평(얼굴 평가)으로 옮겨 붙었다.

빡친 남성이 "XX? 결혼도 못 하게 생겼구먼. 양심도 없는 사람이네"라고 비꼬자, 여성은 "XX하네"라고 뱉은 뒤 자리를 떴다.

서울지하철 전동차 내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다. / 뉴스1
서울지하철 전동차 내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있다. / 뉴스1

임산부 배려석은 2009년 서울시가 처음 시내버스에 도입한 정책이다. 2013년 서울 지하철을 시작으로 전국 지하철로 확산됐다. 노약자석과 별개로 임산부만을 위한 분홍색 좌석이 특징이다.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정책이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적지 않다. 좌석 색깔만 다를 뿐 별다른 제재가 없어 임산부가 탑승해도 일부 승객들이 모른 체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좌석은 강요가 아닌 말 그대로 배려석인데, 이곳에 앉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과 임산부로 보이는 여성이 있으면 양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 해(2021년 기준) 수송 인원이 20억명에 달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2020년 고객센터로 접수된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총 8771건으로 월평균 730여 건에 달한다.

광주 지하철에 시범 설치된 임산부 배려 안내시스템. / 연합뉴스
광주 지하철에 시범 설치된 임산부 배려 안내시스템. / 연합뉴스

광주철도공사가 지난해 12월 ‘임산부 배려석 음성 안내시스템’을 시범 도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해당 안내 시스템은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면 “임산부를 위하여 자리를 비워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오도록 설계됐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