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만 당한 게 아니었다… 오늘(13일)부터 고등학교서 '부활'하는 제도
2023-03-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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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부활
강원도 춘천 고교서 13일부터 재개
밤늦게까지 불을 밝힐 곳은 회사만이 아니었다. 야간자율학습(야자)이 부활하면서 고등학교도 늦은 시각까지 불을 못 끄게 됐다.

새 학기를 맞은 일부 고등학교에서 야자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13일 전해졌다. 강원도 춘천의 한 고등학교는 당장 이날부터 시작한다.
강원도민일보에 따르면 신경호 강원도 교육감의 독려에 따라 도내 일부 고등학교가 2023학년도 1학기부터 야자를 시행한다. 춘천의 A 고등학교는 이날부터 야자를 시작, 전교생 700여 명 중 330여 명이 늦은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 자율 학습을 한다.
원주의 B 학교도 오는 16일부터 야자를 시작하기로 했다. B학교 교장은 "학교가 공부하는 분위기를 끌고 나갈 필요가 있어 올해부터 재개하게 됐다"고 강원도민일보에 전했다. 오후 10시까지 남아 공부하겠다고 신청한 B 학교 학생은 140여 명 수준이다.

강원도 일부 학교가 급히 야자를 재개한 이유와 관련해 매체는 '2023학년도 대학입시 모집 결과'에 주목했다. 도 교육청이 최근 발표한 이 결과에 따르면 강원도 전체를 통틀어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입학생은 총 44명(특목고 등 제외한 일반고 출신 19명)에 그쳤다. 수시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최저 등급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불합격자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도 교육청은 관내 학교에 '스스로 공부하는 학교문화 만들기 운영(안)' 공문을 보내고 참여 학교 모집에 나선 거로 전해졌다. 방학이나 쉬는 날에도 학교에 나와 공부할 학생(방과 후 자율학습) 등을 꾸린 학교에 관련 예산을 지원하겠단 계획이다.

야자 부활 조짐은 여기저기서 보인다.
'교육활동 기본 계획' 수립을 통해 그간 0교시 수업, 야자 등을 학생에게 강제하지 못하도록 규정해온 광주지역의 학교들도 시 교육청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분위기다.
광주일보에 따르면 이정선 광주시 교육감은 지난달 "교육활동 기본 계획 수립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직접적으로 야자를 재개하라는 둥 언급은 없었지만, 규제를 없애면서 암묵적으로 허용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는 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의 입장이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이 교육감이 조례와 단체협약을 위반하면서 일방적으로 폐지를 선언했다. 일선 학교는 '해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만큼 단체협상 및 노조법 위반 고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교육청의 잘못된 행태를 기필코 바로잡겠다"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 교육청 측은 "교육청의 기본 방침은 학교 운영에 간섭하지 않되, 학교 운영 주체들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고 민주·자율적으로 운영하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학생의 선택권과 건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전교조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0교시·야간자율학습 부활을 추진하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정규 수업이 끝난 고등학생이 학교에 남아 스스로 공부하는 제도인 야자는 1981년 처음 도입됐다. 1980년 신군부가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하면서 학생들의 과외나 보충수업 등을 전면 중단하자, 각 학교에서 이를 대신하는 수단으로 자습을 시킨 것이 시초다. 학업 성취도를 올릴 목적으로 시행됐으나, 강제적인 제도에 불만을 품은 학생도 많았다.

무늬만 자율인 야자는 학생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휴식을 저해하는 등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2010년대부터는 학생들이 참여 의사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학교가 늘었으나, 특별한 사유가 존재해야만 불참을 허락하는 식으로 반강제하는 학교가 적지 않았다.
이재정 전 경기도 교육감이 2016년 야자를 폐지한 선언한 뒤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이 제도가 사라지기도 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야자 부활이 결국 그 실체를 드러내자, 일각에서는 야자와 야근이 모두 가능한 '과로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말)을 깨는 정부의 근로 시간 제도 개편안(69시간 근무제)도 모자라 학생들의 발을 묶는 야자 부활은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말로는 학생들의 선택에 야자 참여를 맡긴다고 하지만, 결국엔 반강제적 분위기가 형성돼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거란 걱정도 있다.
광주지역 75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 학생 삶 지키기 연대'는 지난 9일 시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0교시 부활을 막고 야자 등에 대해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