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학교폭력으로 숨진 딸 졸업식에서 교사한테 들은 말 “저건 또 뭐야”
2023-04-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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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으로 사망한 딸 졸업식에 참석한 어머니
2015년 5월 은광여고 학교폭력으로 사망한 박주원 양
서울시 강남구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 측으로부터 받았던 홀대 경험을 고백했다.

지난 2015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은광여고 1학년 고 박주원 양의 어머니 이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2일 '영혼이 참석했던 은광여고 졸업식'이라는 제목의 긴 글을 게재했다.
문제 없이 시간이 지났다면 박 양이 졸업했을 2018년, 졸업식 당일 이 씨는 은광여고에 찾아갔다. 그의 글에 따르면 그만둔 줄 알았던 학교 측 인성부장이 그사이에 복직된 상태였고, 그는 이 씨에게 떨떠름한 얼굴로 "왜 오셨냐"라며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뭐냐"라고 되물었다고 했다.
이 씨가 졸업식에 참석해 딸의 죽음과 관련해 발언할 것이고, 학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사과하라고 말하자 인성부장은 헛웃음을 치면서 "그건 뭐..."라고 말끝을 흐렸다고 했다. 이 씨는 "은광여고는 학폭위, 재심, 행정심판을 거치는 내내 드러나는 증거와 달리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 대응했다. (가해) 아이들이 스스로 자퇴했다면 자기 잘못을 알기에 도망간 것이고 이제라도 학교는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말했지만 인성부장은 계속 웃기만 했다고 기억했다.
상복을 입고 박 양의 영정사진을 든 채 졸업식에 참석한 이 씨를 본 한 여교사는 "저건 또 뭐야"라고 발언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이 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교육자인 사람이 사람의 사진을 보면서 저거라니... 사물이 된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는 이 씨에 대해 '학교폭력 희생자로 사망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아이의 어머니'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아이의 어머니가 대신 졸업식에 참석했다'는 말로 소개를 대신했다.
교장은 이 씨에게 하고 싶은 발언도 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말했지만, 막상 졸업식이 시작된 후 이 씨에게 따로 주어진 발언 시간은 없었다. 식순의 끝이었던 교가 제창까지 다 하고 나서도 이 씨에게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폐회식 선언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이 씨는 결국 직접 교장이 있는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발언 내용 전문은 아래에 있다.)이 씨가 발언하는 동안 교장은 안절부절못하며 마이크를 빼앗으려고 했고, 이사장은 미리 나가버려서 듣지 않았다. 하지만 졸업생과 학부모들은 강당에서 나가지 않고 서 있던 그 자리에 멈춰서서 이 씨의 말에 집중했다. 일부 학부모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 씨는 "사죄도 용기가 필요한 건데 오늘도 은광여고는 용기가 없는 비겁함을 보였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나를 꼼짝하지 않고 시선 마주치고 들어주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나마 가슴에 남는 하루였다. 이래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라고 글을 마쳤다.
박주원 양은 2015년 5월 은광여고 1학년 재학 중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유족은 서울시교육청과 학교법인, 가해자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유족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권경애 변호사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에 열린 세 차례의 항소심 기일에 전부 출석하지 않아 유족이 최종 패소 판결받았다.

유족은 권 변호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정직 수준의 징계가 아니라 다시는 법의 무대에 설 수 없도록 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변호사 징계 개시 절차를 시작했다. 권 변호사가 근무했던 법무법인 해미르는 2023년 4월 6일 자로 그가 탈퇴했다는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게'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아래는 고 박주원 양의 어머니 이 씨가 2018 은광여고 졸업식에서 발언한 내용 전문이다.
쉽지 않은 발걸음이지만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왔고, 여러분에게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왔으니 잠시만 들어주십시오. 저에게 발언 기회를 안 주시려고 자꾸 뒤로 미뤄서 제가 이렇게나마 요청하니 나가지 마시고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들 중에는 주원이가 누군지, 제가 누군지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까 교장 선생님께서 주원이와 저를 소개할 때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아이라고 단순히 말씀하셨지만 주원이는 학교폭력 은광여고 왕따 사건으로 시달리다 하늘나라로 간 아이이고, 은광여고는 주원이가 그렇게 당한 것에 대해서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 처리했습니다. 학교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주원이 장례식조차도 학교는 숨긴 채 나중에서야 1학년 9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주원이는 중학교 때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다 사망한 거다"라고 일축해 버렸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오늘 졸업식에 초대받아서 온 것이 아닙니다. 굳건하게 마음먹고 여러분들 혹여 상처받을지도 몰라서 걱정도 했지만 도저히 어미로서 이 순간, 이 자리를 안 올 수 없어서 왔습니다. 마치 초대받은 사람, 준비됐던 것처럼 단상에 올랐지만 저는 아무 준비 없이 계획 없이 저 스스로 온 겁니다. 비록 외면당하고 존재조차도 무시당한 채 세상을 떠난 아이지만 어미로서 내 아이의 졸업식을 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 망치려고 온 게 아니라는 말씀드립니다. 단상에 앉아 403명의 졸업장 수여를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자식도 소중하지만 여러분들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딸들입니다. 이사장은 2016년도 졸업식 축사에서도 여러분의 선배들에게 "내가 200억을 투자했는데 명문대 진학률이 고작 이거냐며 모멸감을 주었고, 그 발언은 언론에 뉴스거리가 돼서 엄청난 욕을 많이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졸업축사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야망을 가지고 성취해서 리더가 돼라. 성취하면 주인으로 살 것이요 성취하지 못하면 노예로 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403명 중에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하지 않았던 대학에 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403명 모두가 똑같을 수 없습니다. 성취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403명 중에 단 한 명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여러분 모두가 사회로 나가 시련이 생긴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주원이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손잡아 주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배우지 말고, 젊은 여러분이 희망이니 사람답게 함께 사는 세상,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어 만들어 주시길 부탁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