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입학하자마자 첫 시험 이후 자퇴하는 고등학생이 늘어난 이유
2023-05-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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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고 있는 청소년 학교 자퇴 비율
대학 입시 제도에 따른 고등학생의 선택
"고등학교 생활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자퇴했어요."

청소년들의 자퇴율이 높아지고 자퇴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덩달아 자퇴 학생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공교육을 거부하는 비행 청소년으로 어느 정도 비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엔 세상 이치를 빠르게 깨달은 현명한 학생으로 비치기도 한다. 요즘 학생들이 자퇴를 결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입시 제도 때문이다.
◆ 철저한 자기 관리는 필수… 수시모집 전형
수시모집은 한마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아닌 교내 성적과 평가 등 여러 요소로 대학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전형이다. 수시 종합 전형에서는 교과 성적뿐만 아니라 학교생활기록부의 여러 영역을 함께 고려해 학생을 뽑는다. 수시 교과 전형에서는 교과 성적 순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고등학교에서 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를 합산해 학기 말에 받은 성적표를 기준으로 대학에 간다.
그러니 학생들로선 수능 공부와는 또 다른 교육 과정인 내신 성적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면서도, 학교 생활의 균형을 맞춰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고, 수능 공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 고1 자퇴생 늘어나고 있는 이유

지난달 EBS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K - 교육격차 2부 나의 자퇴기'에서 대치동 입시전략연구소장 남윤곤 씨는 "내신 성적이 무너지면 내신으로 들어가는 수시 전형이 없어진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차피 수능으로 뽑는 것도 40%나 되니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수능 공부를 하겠다'라고 생각한다. 수능 전형이 늘어나는 것과 자퇴생이 늘어나는 것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퇴를 결정한 학생 A 군은 "내신에서 보통 암기를 많이 시킨다. 그런 수업 방식은 별로 수능 대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학교 수업을 오후 4시까지 받고, 저는 저대로 수능 공부를 따로 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자퇴 학생 B 양은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안 듣고 정시 공부하는 친구들은 공부를 못하게 막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수능) 공부를 제대로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를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레시오고 교사인 서부원 씨는 "아이들은 어떤 게 자기의 입시에 유리한지 판단한다. 정시는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수능만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학생들은 학교 자체가 자신의 입시 진로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이미 '학교는 입시를 위해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도록 공론화됐고,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주입한다. 이게 공교육 붕괴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 효율만 따지는 사회가 되면…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자퇴를 결심한 데는 시간적 효율을 따지기 위함이 크다. 사실 남들이 다 걷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용기이고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효율만 따지는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생각할 필요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이익이 되지 않으면 버려지고 사라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익이 될 만한 게 새롭게 생겨나고,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사라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엔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시장지상주의의 맹점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작성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는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 시민적 참여,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 사회의 덕목이 사라진다. 효율성만 추구하기보다는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허태균 고려대학교 사회심리학 박사는 한국 사회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방송된 tvN '어쩌다 어른'에서 허 박사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직장은 많아야 40%가 안 된다. 청년의 70%가 대학에 가는데 졸업장이 필요한 직장은 40%에 불과하다. 이건 대학 졸업자 절반이 본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허 박사는 "대한민국 사회적 문제는 무엇을 열심히 안 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방향이다. 내가 이렇게 죽도록 열심히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아무도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만 말했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개인이 잘못 선택한 것을 스스로 혼자 다 책임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사회의 흐름을 따랐을 뿐이다. 사회의 지도층, 사회의 시스템은 국민에게 계속 업데이트된 좋은 정보를 주면서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도 된다. 이쪽으로만 가면 다 죽는다' 이런 말을 해줘야 한다. 한국 사회가 다음 세대에서라도 악순환을 막는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방향으로 뛰면 1, 2등이 생긴다. 원으로 퍼져 나가면 1, 2등이 사라진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