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민지원 장병에게 '어우동' '하녀' 분장 요구한 인제군, 사람들 다 분노했다 (+상황)

2023-08-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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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축제에 군 장병 지원 요청
부대 소속 간부 “인권 무시한 처사”

강원 인제군이 인근 군부대에 황당한 요구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장병 지원을 요청, 일부에게 '내시', '어우동', '하녀' 등 분장을 해달라고 한 사실이 한 부대 소속 군인을 통해 알려졌다.

대한민국 군인.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뉴스1
대한민국 군인.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뉴스1

인제군 내 군부대에서 복무 중인 육군 간부 A 씨는 지난 29일 군 제보 채널인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A 씨는 다음 달 2일 지역에서 열리는 '제14회 마의태자 문화제'와 관련 "(인제군에서) 군부대에 인원 협조 요청을 했다"며 "간부 50명을 지원해 달라고 해서 현재 부대에선 인원을 편성 중"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2일 강원 인제군에서 열리는 제14회 마의태자 문화제 / 인제군
다음 달 2일 강원 인제군에서 열리는 제14회 마의태자 문화제 / 인제군

이어 "안전 통제, 교통 통제(를 위한 지원 요청) 등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인제군이 요청한 건) 분장 후 움직이는 포토존으로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야 하는 피에로 역할"이라며 "이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대민 지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 씨가 공개한 '군 장병 50명 업무분장'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인제군은 △행렬 △안전관리 △개회식 무대 주변 정렬 △움직이는 포토존 운영 등에 인력을 배치해 달라고 군부대에 요청했다.

인제군이 인근 군부대에 지원 요청한 내용이 담긴 문건. 해당 부대 소속 간부가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인제군이 인근 군부대에 지원 요청한 내용이 담긴 문건. 해당 부대 소속 간부가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축제 당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포토존 행사와 관련해서는 '신라 의상을 입고 10명씩 교대로 돌아다니며 포토존을 운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문건엔 △왕(1명) △중전(1명) △내시(2명) △문관(2명) △사또(1명) △상궁(1명) △무사(2명) △어우동(2명) △하녀(4명) △신하(4명) 등 구체적으로 어떤 의상을 입을 지까지 명시돼 있었다.

신라 의상을 입고 포토존 운영에 나서는 20명 외에 다른 장병들은 장군(10명), 군사(10명) 분장을 하거나 깃발과 큰 북을 들고 행렬에 참여하라고 했다. 큰 북을 담당하는 2명에겐 '음악 감각'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원 인제군에서 열린 마의태자축제. 사진은 2018년 행사 당시 모습.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이하 뉴스1
강원 인제군에서 열린 마의태자축제. 사진은 2018년 행사 당시 모습.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이하 뉴스1

이를 두고 A 씨는 "관할 지자체 예산으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라며 "개인의 초상권과 인권이 무시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내시', '하녀', '신하', '어우동' 역할을 맡는 게 과연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어 필요한 대민 지원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이게 군인들의 현실"이라며 "피에로 역할을 맡게 될 간부들의 인권을 부디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대한민국 군인.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대한민국 군인.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A 씨의 글을 본 네티즌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국가에 큰 재난이나 행사 등이 있을 때 군 인력이 대민 지원 차원에서 동원되고 있으나, 인제군이 제시한 업무는 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대민 지원이 '무료 알바 서비스'가 됐네", "진짜 심각하다", "군인을 공짜로 써도 된다는 인식이 문제", "이런 대민 지원은 자제해야...", "군인이 광대입니까?", "군대의 본질을 아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인제군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군부대와 상생하자는 의미에서 요청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불편함을 느낀 분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 프로그램 수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군의 대민지원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동원 명령으로, 국방부 장관은 행정부의 동원 명령에 따라 지원 요청에 응해야 한다.

국방부의 재난관리 훈령 제28조(대민 지원 기본 지침)에 따르면 정부 부처 또는 지자체로부터 병력·장비 등을 지원 요청받은 각급 부대의 장은 군 작전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다만 해당 지역을 작전지역으로 하고 있는 부대의 능력을 초과하는 경우 타 군 또는 타 부대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지원을 요청받은 부대의 장은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 후 최대한 지원한다.

대민 지원사업 선정 기준을 보면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시책사업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가 추진하는 공공사업 △사회단체가 추진하는 사업 중 공공복리를 위한 사업 △재해·재난 등의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사업 △개인(민간인)이 주관하는 사업으로 국가시책에 부합하거나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 △국민 편익 증진 및 불편 해소를 위한 사업 △민·관·군의 유대강화, 군에 대한 국민의 이해 증진 및 안보 의식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 △각종 법규에서 국방자원의 지원을 정한 사업 △기타 공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 중 하나여야 한다.

이외 △법령에 위배되거나 국가시책에 어긋나는 사항 △국방목표 및 국방정책에 배치되는 사항 △군 기본임무 수행에 지장을 주는 사항 △군사보안에 유해로운 사항 △군의 위상에 손상을 주거나 장병의 사기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항 △정치적 성격이 있는 행사 △사업주체자의 수익을 위하여 시행하는 사항 △사회정의에 반하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항 △외국인 또는 외국이 주체가 되어 시행하는 사업에 관한 사항단, 국방부 지시 또는 승인에 의한 사업 △재난 대응·피해복구와 관계없는 사항 등에 해당하는 대민 지원사업에 대해선 각급 부대의 장이 지원을 거부할 수 있다.

home 김혜민 기자 khm@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