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한전 사장 '집무실서 무기한 숙식' 선언… 조롱하는 한전 직원들
2023-09-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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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직후 퇴근 않고 24시간 근무 돌입
첫 정치인 사장의 작심 메시지에 '갸우뚱'

최악의 재무위기에 빠진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동철(68) 신임 사장이 취임 직후부터 회사에서 숙식을 자처하고 나섰다. 직원들에게 비상경영 상황이라는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라지만 정작 이를 지켜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22일 주요 매체에 따르면 김 사장은 20일 취임 후 "직면한 절대적 위기를 극복하는 실마리가 보일 때까지 당분간 이번 추석 연휴를 포함한 휴일을 모두 반납하고, 24시간 본사를 떠나지 않고 핵심 현안을 챙기겠다"고 간부들에게 선언했다.
실제 김 사장은 임기 첫날 '워룸(비상경영 상황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장실에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이곳에서 수면을 시작했다.
김 사장은 내주까지 본부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한전의 역할 재정립, 전기요금 정상화, 특단의 추가 자구책 등에 대해 실무진과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 시장의 파격 행보에 대해 한전 내부에서는 취지는 이해하나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불편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 누리꾼이 '김 사장 무기한 회사 숙식 근무' 기사를 소개하자, 한전 직원임을 인증한 A씨가 '정승일 : 내가 퇴근해서 위기가 온 것인가?'라는 조롱성 댓글을 달았다.
정승일 전임 사장이 회사에서 숙식하지 않아 한전 재무위기가 왔겠느냐는 반어적인 표현이다. 사장이 숙식 근무한다고 조직이 바뀌었으면 벌써 바뀌었다는 풍자다. 경제관료 출신 정 전 사장은 재정 위기과 방만 경영 등의 책임을 지고 지난 5월 조기 사퇴했다.
그러자 다른 회사 직원들은 "출근해서 위기가 온 게 아닐까", "자기가 퇴근 안 하면 밑의 애들 다 죽으란 소리인가"라며 전현직 사장을 싸잡아 비꼬았다.
이에 한전 직원 B씨는 "ㅋㅋㅋㅋㅋㅋ"이라며 조소했고, 한전 직원 C씨는 "다음 주부터 (숙식 근무) 시작한다고 한다"며 "집에 왜 안 가?"라고 비아냥댔다.
블라인드에는 그밖에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가중 아니냐", "불침번 가동되는 것 아니냐"는 한전 직원들의 한탄 게시글도 올라왔다.
국민 여론도 호의적이지 만은 않다.
주요 포털 기사 댓글 창에는 "전형적인 보여주기", "직원들 X고생 시키는 줄 모르고", "직원들 퇴근은 다 했네" ,"비서들 죽어 나겠네", "사장 임금을 무급으로 해야지", "거기서 잔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러고는 성과급 잔치하겠지", "24시간 근무하는 건 좋은데 분 단위로 업무일지 적어라", "그런다고 빚이 갚아지나" 등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김 사장으로선 진심을 몰라주는 조직 안팎 기류에 섭섭할 법하지만 이는 그와 정부가 자초한 성격이 강하다.

지난 62년간 한전 사장으로 정치인이 선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김 사장이 최초다.
광주 광산구에서 내리 국회의원 4선(17~20대)을 한 김 사장은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산업은행에서 근무했다. 한전 등 에너지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없다.
역대 정부는 여러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해왔지만, 국민경제에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는 한전만큼은 예외로 했다. 현 정부는 이런 불문율을 무시했다.
정부에서는 강도 높은 한전 개혁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면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료나 한전 내부 출신 인사가 아닌 '전력 카르텔'과 무관한 외부 인사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다.
한편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1조원을 넘어섰다. 사상 처음이다. 한전은 올해도 7조원 안팎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