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집단 사직'에 폭발한 환자단체들이 발표한 분노의 성명서

2024-03-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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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숨이 의료계-정부 갈등으로 희생돼도 좋을 만큼 하찮나“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5일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5일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 뉴스1

전국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25일 현실화하자 환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9개 환자단체(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로 이뤄진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서를 발표해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돼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연합회는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더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공의가 사라진 병원에서 그나마 교수와 전임의,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버텨주어 환자들도 이만큼이나마 버텼지만 이제 교수들마저 떠난다면 환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면서 "제자들에 대해 우려하는 지점이 무엇인지도 충분히 이해하며 교수들이 탈진 수준에 다다랐으리라는 점도 짐작되지만, '이해한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환자들의 현실"이라고 했다.

연합회는 "지난 2월 20일 응급 수술이나 적시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했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31건의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한 암 환자는 “중요한 개인 사정으로 외래시간을 변경하려 했으나 절대 불가하며 예정된 외래조차 취소될 수 있으니 예정된 시간이라도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어이없는 응대를 겪었다”라면서 “이식 후 표적항암제 유지치료와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인데 예정된 외래진료가 불가할 경우 숙주반응 등 큰 문제가 초래될 것으로 환자 본인 및 보호자 모두 긴장 상태”라고 말했다.

한 희귀질환자는 “3월 11일로 예정된 유방양성종양절제 수술이 연기됐다. 제가 가진 희귀질환은 유전질환으로 다른 여러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 이미 2번이나 걸렸고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0%인데 조직검사상 유방암이 아니지만 떼야 한다면서 수술을 잡아놓고 양성이라는 이유로 연기당했다. 담당 선생님이 전화해 암수술 먼저 해야 해서 양성이니 수술을 조금 연기하자는 말만 했는데 병원 어플에선 수술이 아예 취소된 것처럼 일정이 보이질 않아서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남편이 암 환자라는 여성은 "남편이 3월 초 공고 항암 치료(암 증상이 사라진 후 재발을 방지하는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입원이 2주가량 미뤄졌다.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진찰을 받아봤더니 재발됐더라. 원망스럽고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다.

연합회는 “각자의 질환과 그로 인한 증상들, 치료와 재발, 각종 수술과 검사로 늘상 질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일 수밖에 없다”라며 “의사들이 환자 손을 놓고 떠나버렸는데도 병원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작금의 상황을 마주하고 절망에 빠진 심정을 소리 높여 말할 처지조차 되지 못한다. 전공의가 사라진 병원에서 그나마 교수와 전임의(전문의),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버텨주어 환자들도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교수마저 병원을 떠난다면,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더는 보장받기 어려워질 것이며, 그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의료계와 정부는 정말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돼서야 이 비상식적인 사태의 종지부를 찍을 셈이냐"라고 물으며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돼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 상황에 대해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환자 중심으로 운영된 적이 없었고 이번 의료대란도 그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참극"이라고 했다.

이날 전국 의대 교수들은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이미 100명 가까운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도 있다. 일부 의대는 총회를 열고 '일괄 사직'에 가까운 형태로 사직서를 냈다. 의대 교수들은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간담회 결과에 대해 "알맹이가 없고 공허하다"고 일축한 바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성명]

전공의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사직까지, 극단으로 치닫는 초유의 의·정 갈등 속 현실화되는 환자들의 피해를 외면하지 말라 (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가중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

지난 2월 6일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발표로 2월 20일부터 촉발된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에 이어, 오늘 3월 25일에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단사직서 제출 방식으로 정부에 항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강행 방침과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고 수련병원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3개월 면허정지 제재에 대해 의과대학 교원이자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생각하면 우려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또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수련병원에서 1개월 이상 버텨온 교수들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탈진 수준에 다다랐으리라는 점도 쉽게 짐작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전공의와 교수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던, 그러나 이제는 텅 비어버린 그 수련병원들을 자주 찾아야 하는 중증·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이다.

그러나 ‘이해한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환자들의 현실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2월 20일,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응급·중증환자들에게 생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보건복지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제출했다. 2월 29일에는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응급·중증환자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환자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응급 수술이나 처치가 필요한 환자, 그리고 적시에 최선의 수술이나 항암치료·방사선치료·장기이식·조혈모세포이식 등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경우 사태가 장기화하면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절망스럽게도, 이제 그 우려는 속속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20일까지 9개 소속 환자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환자 불편·피해 사례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31명의 환자가 진료 연기, 취소 등으로 인한 불편이나 불안, 피해를 실제로 겪고 있음이 드러났다. 암환자들은 조혈모세포 이식술과 항암치료 일정이 연기되었고, 백혈병·혈액암 환자의 골수검사와 심장질환 환자의 수술이 연기되었다. 공고 항암치료가 2주 정도 연기되는 사이 암세포가 재발한 백혈병 환자는 다시 암세포를 없애는 관해유도 항암치료를 두 달 받아야 하고 제때 공고 항암치료를 받았다면 재발까지는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상황이 너무 원망스럽고 힘들다고 했다. 관을 삽입하여 치료받아야 하는 와상 폐렴환자가 해당 처치를 담당하는 전공의의 부재로 인해 일반 병원에 입원해 약물로 치료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수되었다. 또, 질환 특성상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0%에 육박한다는 한 환자는, 이상 소견을 보이는 유방조직의 제거술이 연기되어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각자의 질환과 그로 인한 증상들, 치료와 재발, 각종 수술과 검사로 늘상 질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일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환자 손을 놓고 떠나버렸는데도 병원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작금의 상황을 마주하고 절망에 빠진 심정을 소리 높여 말할 처지조차 되지 못한다. 전공의가 사라진 병원에서 그나마 교수와 전임의(전문의),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버텨주어 환자들도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교수마저 병원을 떠난다면,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더는 보장받기 어려워질 것이며, 그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의료계와 정부는, 정말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되어서야 이 비상식적인 사태의 종지부를 찍을 셈인가? 우리의 목숨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희생되어도 좋을 하찮은 목숨이 아니다. 초유의 강 대 강 대치에 더는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단 한 번도 환자중심으로 사고되거나 운영된 적이 없었고, 이번 의료대란도 그 연장선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전공의가 사라지면 돌아가지 않는 수련병원, 즉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수련병원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나쁜 병원이며, 그것이야말로 환자중심이 아닌 병원중심 사고와 병원중심 운영의 결정적 증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24일) 집단사직으로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 달라”라고 지시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오늘(25일)로 예정된 정부의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에 항의하기 위해 집단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가 의료계와 정부의 최악의 극단적 대립 국면을 해소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가중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 환자들에게는 지금 당장 의사들이 필요하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