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준 전주 첫 개인전, 왜 <검은 산수>인가?

2024-05-0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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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수)일부터 오는 31일(금)까지 유휴열미술관(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신뱅이길 55, (0

지난 5월 1(수)일부터 오는 31일(금)까지 유휴열미술관(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신뱅이길 55, (063) 227-7510)에서 양규준 작가의 전주 첫 개인전(검은 산수 EXHIBITION)이 열리고 있다.

관람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작가 양규준>

양규준 작가는 전북 순창군에서 태어났다.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화가로서의 꿈을 위해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및 동대학원에서 전문교육을 받는다. 이후 선화 예술고교에서 13년 동안 후진을 가르치며 연이은 개인전을 통해 화단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펴왔다.

1997년 돌연히 그는 남태평양 뉴질랜드로 떠났다.

한국 입시미술교육에 대한 환멸이 창작에만 전념코자 하는 작가의식을 낳은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평소 동경해 왔던 고갱의 타이티행처럼 그것은 뉴질랜드에서 원시자연을 통해 삶의 근본을 다시 찾아보고자 하는 장도였다. 그러나 너무 다른 이국의 생활환경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15년이란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그동안 Auckland 미대 대학원 실기과정, WhiteCliffe 미술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며 차츰 현지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 결과 수차례 Auckland 유수의 갤러리 초대전과 뉴질랜드 최대 사립미술관인 Wallace Art Centre, Auckland 시청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등,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던 스스로의 정체성이 비로소 회복됨을 느낀다.

2012년 귀국 후, 그는 중앙대 미술학부, 선화예고에서 강의하며 <검은 산수> 작업을 꾸준히 발표한다.

한동안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년 전부터 아예 한국에서 기거하며 그가 원하는 작업환경을 찾아 나섰다. 그 무렵 그의 작업들은 그의 오랜 외국생활에도 불구하고 점점 동양의 자연관에 더욱 매몰돼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작가로서 오직 한국의 자연관을 탐구하고 실현하려는 마음가짐뿐 다름이 없었다. 그림과 삶의 일치... 그 실행의 첫걸음이 바로 올 1월 무주안성 칠연계곡 무주예술창작스튜디오 행이었다. 48년 만의 귀향이기도 했다.

왜 <검은 산수>인가?

“내 그림에 있어 검정은 어린 시절 서예시간, 습자지로 스며드는 진한 먹색에 대한 나의 기억이 반영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남태평양의 자연환경 속에서 느낀 산과 바다, 검은 숲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으리라.

내 <검은 산수> 그림은 검정색 공간 속에 아련히 퍼져나가는 흰색의 울림, 그것은 까만 밤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오는 희미한 여명처럼 내 삶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기억들, 희망 그리고 나의 꿈에 관한 기록이다.“

보통 검정은 어둠의 색을 의미하며 빛에 반대되는 색이다. 그러나 물감의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을 혼합하면 검정이 되므로 검정은 대단한 포용력을 갖는 셈이다.

한국 현대 사상가 다석 류영모(1890~1981) 선생은 일찍이 빛은 물질세계와 이성을, 어둠은 정신세계와 신비를 의미한다 했다. 빛이 꺼지면 ‘어둠’과 ‘빔’과 ‘없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빔과 어둠 속에서 절대적인 것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실제 우리가 뭔가 깊이 생각하고자 할 때 눈을 감고 어둠속에서 떠오르는 뭔가를 기대하는 것도 이런 이치인지 모르겠다.

나는 검정을 ‘꿈이 떠오르는 꿈이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검정화면에서 꿈을 낚아 올리는 것이 나의 작업과정인 것이다.

나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해질녘 산책을 즐긴다. 그리하여 온 어둠이 들녘에 가득 내릴 때까지 시간을 소비하며 걷는 일이 내가 하루 중 가장 바라는 시간이다. 많은 저녁을 그리워하며 무한한 우주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유하는 길... 어쩌면 이것은 물질적 가치관으로 가득한 우리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왜 남태평양 뉴질랜드에서 무주 안성인가?

검다는 말은 깊다는 의미가 있으며 아득하다는 말과 통한다.

뉴질랜드는 지리상으로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지나 숱한 섬들을 수없이 관통해야 만 다다를 수 있는 남태평양 최남단 섬나라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나라가 지리상으로 순백의 남극에 가장 가깝다는 사실에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붉은 남십자성이 빛나는 짙푸른 군청색 뉴질랜드국기가 바다인 듯, 밤하늘 은하수를 암시하는 듯 무척 깊고 아득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무주 또한 지역적으로 무진장이라 일컫는 오지의 대명사가 아닌가. 이 지역을 동서 방향으로 여행해보라. 중첩된 산 흐름이 끝이 없다. 골짜기엔 냇가 물줄기가 끊겼다 이어지기를 수차례 반복, 마침내 깊은 곳으로 아득히 흩어 사라진다.

나는 덕유산자락 첩첩 산 둘러싸인 안성분지가 산수화의 이상향인 도원경의 요건을 두루 갖췄다고 생각했다.

옛날 어떤 이가 한없는 깊은 산 고개를 넘고 넘어 지친 몸으로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앞이 확 트이고 먼 땅에 복사꽃이 만발하고 초록 들판엔 모내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이...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음직했다. 산중 칠연폭포로부터 흘러내린 물줄기가 계곡을 따라 숱한 대소의 물 흐름(폭포)을 만들어낸다. 분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상선약수의 묘수는 바로 만물의 생명수인 것이다. 이것이 바다로 흘러 다시 기화하고, 광풍에 검은 구름이 비를 내리고, 물은 다시 대지를 검게 적신다. 이렇듯 우리는 대자연의 순환체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연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점점 더 몸살을 앓고 있다. 문명은 소위 오지라 일컫는 곳마저 그저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지리적으로 혹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땅에서 살다 간 선인들의 삶을 되짚어 보면, 저 깊고 아득한 곳에 아직 꿈꿀 수 있는 공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나에게 거기가 바로 남태평양 뉴질랜드 외딴 숲이었고, 무주안성이었다. (2023.11. 양규준)

home 이상호 기자 sanghodi@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