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비닐하우스가 폭우에 괜찮은지 살피러 갔다가 죽을 뻔한 사람 (영암군)
2024-09-2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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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물이 목까지 차오르더라”
한 농민이 폭우 때 딸기 비닐하우스를 살피러 갔다가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연합뉴스가 22일 보도했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에서 22일 만난 주민 김봉준(58)씨는 전날 오후 쏟아진 폭우로 제방이 무너지고 하천물이 비닐하우스까지 덮친 아찔한 상황을 떠올리며, 목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단시간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빗물이 제 목까지 차오르더라"라며 "기계로 딸기를 재배하는 스마트팜이라 비가 꽤 온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를 살피러 왔다가 하마터면 물살에 같이 떠내려갈 뻔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까스로 농장을 벗어났지만 창고에 있던 비료와 농기계 등 온갖 물건이 빗물에 휩쓸려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사흘간 계속된 폭우로 영암은 마치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곳곳이 폐허가 됐다. 242㎜의 폭우가 쏟아진 학산면은 망월천이 범람하면서 제방이 무너져 일대가 물에 잠기고 하천이 넘쳐흘렀다.
비닐하우스와 논 등 농경지는 물론, 주택과 도로도 모조리 잠겼다. 주민들은 어디서부터 복구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다. 태풍 풀라센이 중국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장맛비 수준의 비를 예상하던 주민들이 예상치 못한 폭우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전날 오후 1시쯤 내리던 비는 폭우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다 열대저압부로 변한 태풍이 전남으로 다가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오후 3시부터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하늘에서 퍼붓듯 내렸다.
시간당 강수량이 100㎜에 달하는 극한 호우가 쏟아지며 불어난 강물을 제방이 견디지 못해 마을까지 침수 피해가 확산됐다. 범람한 강물은 비가 그치자 곧 빠졌지만, 딸기 비닐하우스는 이미 모종과 농기구가 어지럽게 뒤엉킨 채 폐허로 변해 있었다. 올해 농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피해가 컸다.
마을 곳곳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배수관이 터진 탓에 빗물과 하천물이 섞여 마을 일부 지역은 물바다가 됐다. 특히 몇몇 식당은 집기들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아예 남아 있는 물품이 없는 곳도 있었다.
영암군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태풍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식당 직원 김순단(66)씨도 "식당 안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배수관이 펑하고 터져 방바닥이 박살났다"며 "식당 물건을 건져보려고 했지만 물살이 너무 빨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침수 지역은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이날 오전부터 소방 당국과 주민들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주민은 침수된 농작물과 도구들을 밖으로 꺼내, 소방관들의 지원을 받아 진흙투성이가 된 농기구들을 씻어냈다.
한때 물이 1m 높이까지 차올랐던 마을 골목은 살수차와 소방차가 오가며 고인 물을 빼내고 진흙을 씻어냈다.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큰 피해로 인해 막막해하고 있다.
영암군은 미암면과 학산면 등 침수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제공하며, 굴착기와 양수기 등 장비를 투입해 복구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영암군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폭우로 학산, 삼호, 미암면에서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며 "하루빨리 복구 작업을 마쳐 재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든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부터 사흘간 전남 여수산단에선 최고 401.5㎜의 비가 내렸으며, 장흥에선 339.3㎜, 강진에선 313.9㎜, 순천에선 331.5㎜의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로 인해 장흥에서는 수로에 빠진 80대 남성이 숨졌고, 1030㏊에 이르는 농경지가 침수돼 7억여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