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마비’ 40대 남성이 걸었다, 20년 가슴에 맺힌 한을 박차고

2019-06-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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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씨 로봇슈트 입고 ‘사이배슬론 국제대회’ 출정식 참가
“두 다리로 처음 섰던 날 밤 아내 몰래 눈물을 흘렸다” 회상

사이배슬론 선수 김병욱(45)씨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보행보조로봇 워크온슈트를 착용하고 시연을 보이고 있다.    / 카이스트
사이배슬론 선수 김병욱(45)씨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보행보조로봇 워크온슈트를 착용하고 시연을 보이고 있다. / 카이스트
24일 대전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동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출정식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하반신 마비 환자인 김병욱(45)씨가 로봇 슈트를 입고 두 발로 걸었다.

김씨는 1998년 뺑소니 사고로 하반신 전체가 마비되는 장애를 얻어 20년 가까이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왔다. 그러다 2015년 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재활의료진의 소개로 공경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 팀에 합류한 뒤 약 5개월간에 걸친 피나는 훈련 끝에 로봇을 입고 두 다리로 걸어 2016년 열린 1회 사이배슬론 국제대회에서 착용형 외골격로봇(웨어러블 로봇) 종목 3위에 올랐다.

공 교수 팀은 내년 5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2회 대회에 출전해 세계 1위에 도전한다.

‘사이보그 올림픽’으로 불리는 사이배슬론은 신체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로봇과 같은 생체 공학 보조 장치를 착용하고 겨루는 국제대회로 4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이날 출정식에서 김씨는 “로봇을 입고 두 다리로 처음 섰던 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면서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내 몰래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공 교수 팀이 개발한 ‘워크온슈트’는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보행보조 로봇으로 사람의 다리 근육 구조를 모방해 설계됐다. 지난 대회에서는 로봇을 착용한 김씨가 앉고 서기, 지그재그 걷기, 경사로를 걸어올라 닫힌 문을 열고 통과해 내려오기, 징검다리 걷기, 측면 경사로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 총 6개의 코스 중 5개를 252초의 기록으로 통과했다.

2회 대회는 그동안 발전한 기술 수준을 반영해 코스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공 교수는 이를 위해 대형 컨소시엄을 구성해 하지마비 장애인이 사용할 외골격로봇 개발과 대회 준비에 나섰다.

사이배슬론 선수 김병욱(45)씨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보행보조로봇 워크온슈트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카이스트
사이배슬론 선수 김병욱(45)씨가 하반신 완전마비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보행보조로봇 워크온슈트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카이스트
공 교수와 나동욱 교수(세브란스 재활병원)가 공동으로 창업한 ㈜엔젤로보틱스가 로봇기술을 담당하고 사람의 신체와 맞닿는 부분에 적용될 기술은 재활공학연구소가 개발한다. 완성된 로봇을 선수에게 적용하는 임상 훈련은 세브란스 재활병원이 맡았다. 이 외에도 영남대학교·국립교통재활병원·선문대학교·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스톡스 등이 참여한다.

내년 대회를 겨냥해 새롭게 제작되는 ‘워크온슈트4.0’은 완벽한 개인 맞춤형으로 양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대회에서는 보조 도구 없이 제자리에 선 채 물컵을 정리하는 미션 수행에 활용될 예정이며, 로봇의 사용성을 향상시켜 목발을 항상 짚어야 하는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일부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컨소시엄의 총괄책임자인 공 교수는 “각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의 기술들”이라며 “이들을 잘 모으기만 해도 세계 최고의 로봇이 탄생할 것”이라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2016년 대회에서는 김 씨가 공 교수 연구팀의 유일한 선수였지만 내년 대회는 세브란스 재활병원·재활공학연구소·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각각 선발한 총 7명의 선수 후보가 준비한다. 모든 선수에게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된 워크온슈트 4.0을 지급해 보행 훈련을 진행한 뒤, 오는 11월 대회에 출전할 선수 1명과 보궐 선수 1명을 최종 선발할 예정이다.

김씨는 “내부 경쟁이 생겨서 부담이 많이 커졌지만 여러 사람과 이 로봇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여러 사용자의 목소리가 모아지면 로봇도 그만큼 더 좋아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밝혔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