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이 일본 덕에 잘살고 있다고? 그 반대가 아니고?

2019-07-1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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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한국, 우리 덕에 잘살면서 일본 감춰”
한국인들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든 '망언'
한국정부만 호통 치는 일부 언론이 더욱 씁쓸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 채널A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 채널A

길거리에 침을 뱉듯 워낙 많은 헛소리를 뱉은 인물이다. 이번에도 대수롭잖게 넘기려고 한 까닭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빌미로 일본이 단행한 경제보복이 한일 무역전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신문에 뱉은 말이 얼마나 역겹고 논리에 어긋나는지 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얘기다.

구로다는 지난 13일 산케이신문에 쓴 칼럼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한국의 ‘일본 감추기’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경제성장에 대한 일본의 공헌을 무시한다는 것이 칼럼 요지다. 가령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 기아자동차는 마쓰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닛산의 도움으로 성장했는데, 한국인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교과서에서도 ‘일본 감추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이 1965년 수교할 당시 벌어진 반정부 학생운동은 기록하면서도 당시 수교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사실은 적지 않는다고 구로다는 말했다.

구로다는 지난 5일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한국이 이렇게 풍요로운 나라로 발전하기까지 일본의 협력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확히 알아달라”고도 했다. 같은 헛소리를 열흘도 안 돼 거듭 들으니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다. ‘지랄이 풍년이구나.’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 창출이다. 이익 없는 곳에 기업은 나아가지 않는다. 적선하듯 한국에 기술을 넘기진 않았단 얘기다. 실제로 현대차는 1980년대 초반부터 기술을 이전받는 조건으로 미쓰비시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했다.

물론 지금은 현대차와 미쓰비시의 관계가 역전됐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미 15년 전 미쓰비시에 엔진 기술을 이전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기술을 가져간 미쓰비시가 현대차에 고마워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더 올라가면 일본 경제 자체가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딛고 컸다는 걸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대공황 직전까지 내몰린 일본에 한국전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는 “한국전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 군수물자를 부지런히 내다판 덕에 경제가 기적적으로 부활한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한국 덕분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가번(메이지 유신을 추진한 삿초 동맹 중 하나)이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전수받아 이룩한 막대한 부(富)가 메이지 유신의 주춧돌로 작용했다고 짚는 역사학자가 많다. 따지고 보면 일본이 근대화를 이룬 자체가 조선의 도자기 기술 덕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국 근대화와 현대화가 한국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왕인 박사는 어떤가. 일본에 건너가 유교를 비롯해 백제의 앞선 문화를 전수한 그는 ‘일본 학문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고대 아스카문화가 과연 그렇게 꽃피울 수 있었을까. 한국만의 시각이라고? 동양미술을 전공한 미국의 사학자 존 카터 코벨(1910~1996) 박사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대해 ‘한국은 맏형이고 일본은 어린 동생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이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심지어 코벨 박사는 고대 한국은 일본과 문화를 교류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문화를 퍼주기만 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전까지 한국에 남아 있는 일본 문화의 흔적이 거의 없는 데 반해 일본 곳곳에서 한국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코벨 박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영향을 방증하는 자료가 워낙 많아서 이 짧은 글에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 덕분에 일본이 발전한 데 대해 감사를 표하는 일본인의 글은 접하기 힘들다. 한국이 ‘일본 감추기’를 일삼는다는 구로다의 주장이 티끌만큼의 설득력이라도 얻으려면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일부나마 언급했어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 글이 구로다를 설득하리라곤 눈곱만큼도 기대하진 않는다. 일본 우익의 입인 구로다보단 일본 정부와 구로다 같은 일본 우익에 편승하는 글을 휘갈기는 일부 한국 언론을 꼬집으려고 이 글을 썼다. 이들 한국 언론은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선 자존심이나 염치 따위는 기꺼이 내다 버린다. 이런 언론이 쓴 자학적 역사관으로 중무장한 글보다는 최근 MLB파크에 올라온 한 누리꾼의 글을 읽기를 권한다. 이 누리꾼은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 애증이 교차하는 우리나라 대표 기업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대표주자이면서 범법행위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일본은) 그런 삼성의 옆구리에 비수를 들이대고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자식에게 부당하고 비겁한 공격 들어오는 건 못 참습니다. 때려도 우리가 때릴 겁니다. 이 일련의 사태가 위안부 재협상과 일제 강점기 징용 관련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위안부 재협상과 일제 강점기 징용배상은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이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의 정신, 정체성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뻔뻔함을 호통 치지 않고 한국정부의 잘못만 언급하는 글은 구로다가 뱉은 칼럼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아, 맞다. 딱 하나 다른 것이 있다. 구로다 글과 달리 한국어로 쓰였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