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두고 왕복 10분거리 헐레벌떡 뛰는 배달기사들

2020-01-2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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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아파트, 안전 이유로 ‘오토바이 금지’… 헬멧·마스크 금지도
촌각 다투는 배달기사 불만 폭발… 일부선 배달료 할증 주장까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A아파트가 단지 내 ‘오토바이 진입 금지’와 함께 ‘헬멧과 마스크 착용 금지’ 안내문을 내걸었다.  / 이지은 기자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A아파트가 단지 내 ‘오토바이 진입 금지’와 함께 ‘헬멧과 마스크 착용 금지’ 안내문을 내걸었다. / 이지은 기자

일부 아파트가 오토바이 출입을 금지한 탓에 배달기사들이 헐레벌떡 뛰면서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헬멧 및 마스크 착용까지 금지해 촌각을 다투는 배달기사들이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7일 찾은 강남구 역삼동 A아파트 단지. 이 단지의 정문엔 ‘오토바이 진입 금지’와 함께 ‘입주민의 안전을 위해 헬멧과 마스크는 벗고 출입하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후 2시쯤 오토바이를 탄 배달기사가 아파트 정문에 들어섰다. 관리인이 배달기사를 제지하고 나섰다. 관리인과 몇 분간 실랑이하던 배달기사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토바이 핸들을 틀었다.

배달기사는 아파트 상가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뒤 헬멧과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배달통에서 음식을 꺼내 들더니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가 헐레벌떡 뛰며 오토바이를 세운 곳까지 다시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거친 입김으로 인해 다시 쓴 헬멧의 쉴드가 뽀얗게 변했다.

배달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기자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배달기사 B씨는 “안전을 이유로 오토바이 출입을 거절당했다”고만 말하며 서둘러 다음 배달지로 향했다.

아파트 관리인은 “입주민 안전 때문에 오토바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면서 “오토바이는 밖에 주차하고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기자가 왜 헬멧과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느냐고 묻자 “역시 안전 때문이다. 하지만 ‘업무 중 헬멧 착용은 의무’라며 벗지 않은 기사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헬멧 및 마스크 착용 금지가 배달원 보호를 위한 조치는 아니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사고에 대비해 배달원 얼굴을 육안이나 CC(폐쇄회로)TV로 보다 쉽게 확인하기 위한 규정일 가능성이 높다.

A아파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C아파트를 방문했다. 이 아파트의 사정도 비슷했다. 관리실 앞에 어김없이 ‘오토바이 출입 금지’ 안내가 붙어 있었다. 다만 헬멧 및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다는 안내는 없었다. 아파트 관리인은 “택배 트럭이나 차는 출입이 가능하지만 아이들 안전을 위해 오토바이 출입은 막고 있다”고 말했다.

A아파트 배달을 위해 배달기사가 상가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했다.  / 이지은 기자
A아파트 배달을 위해 배달기사가 상가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했다. / 이지은 기자

배달기사들은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자기 집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고객 요구가 가뜩이나 복잡다단해지는 상황에서 오토바이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갑질’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한 배달기사는 “도보로 배달하는 사이에 음식이 식거나 불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라고 말했다.

일부 배달기사는 ‘갑질’ 아파트를 대상으로 배달료 할증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파트 정문에서 배달지까지 거리를 미리 고지해 배달기사에게 배달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배달기사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배달업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배달기사들의 불만을 잘 알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쿠팡이츠 관리자는 “아파트 정책이므로 도와드릴 방법이 없다. 하지만 건의 내용은 담당 부서에 전달해 개선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내놨다.

다른 배달업체의 관계자는 “배달기사들이 아파트 관리인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많다”면서 “심한 경우에는 욕까지 듣는다”라고 했다. 그는 “배달료 문제는 회사 운영 방침에 따라야 한다”면서 “담당 관리자에게 건의해도 별다른 대안이 나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배달료가 높다는 원성이 자자한 상황에서 배달료 할증은 추진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면서 “할증 대상 아파트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어렵다”고 밝혔다.

home 이지은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