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한국일보 직원들 '긴급호소문' 전문
2013-06-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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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째 이어져 오고 있는 한국일보(@hankookilbo) 사태에 대해 전직 한국

10일째 이어져 오고 있는 한국일보(@hankookilbo) 사태에 대해 전직 한국일보 직원들이 "한국일보가 존망까지 우려해야 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직 한국일보 사원 30여명은 24일 오후 노조 비상대책위 블로그에 공개된 긴급 호소문에서 "장재구 회장은 가장 크고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하며, 대주주와 대표이사에서 물러남으로써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며 "편집국에 용역을 동원했으며, 자신을 비판한 주필을 논설위원으로 강등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다음은 전직 한국일보 사원들의 긴급호소문 전문입니다.
한국일보를 사랑하는 전직 사우들의 긴급 호소문
우리가 몸담아 왔던 한국일보가 존망까지 우려해야 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패기와 명예, 긍지는 진흙탕에 떨어져 뒹굴고 값싼 연민과 추문,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전에 비해 영향력이 많이 추락했더라도 한국일보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언론 지형에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념 정파 등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진실을 전달하려는 언론은 꼭 필요합니다. 한국일보가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이러한 보도태도를 견지하려 노력해온 면은 평가받을 만합니다.
한국일보 가족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한국일보가 더 이상 망가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재건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현역 기자들뿐 아니라 전직 사우, 한국일보를 아끼는 모든 독자까지 힘을 합쳐야 합니다.
지난달 초 다급한 심정으로 노사 대타협을 촉구했던 전직 사우들은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한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이제 논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는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 간절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노사 모두에 호소합니다.
첫째, 신문제작은 지금 당장 정상화해야 합니다. 통신을 복사해 한국일보 제호 아래 집어넣는 행위는 모든 선배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입니다. 독자와 광고주들을 이탈시켜 한국일보를 회생 불능으로 빠뜨리는 해사 행위입니다. 주장과 논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신문 제작은 곧바로 정상화하기 바랍니다. 회사는 편집권 독립 협약의 절차를 준수하십시오. 편집국장을 정식으로 임명하고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임명동의를 통과한 새 편집국장은 지면 경쟁력 강화라는 인사 원칙 하에 전권을 갖고 데스크 진용을 구축해야 합니다.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한 진용을 짜는 게 최고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노조는 물론 회장도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임명동의를 거친 편집국장이 전권을 갖고 편집국을 정상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구성원은 마음을 열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번 사태로 편집국 구성원들 사이에 깊은 골이 생기고 있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거나 아까운 인재들을 잃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더욱 참담한 일입니다. 감정의 응어리야 쉽게 풀리지 않겠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관용과 인재 사랑의 한국일보 정신을 살려서 화해와 대타협의 길을 모색하기 바랍니다. 이번 과정에서 생긴 갈등을 이어간다면 한국일보는 독자들로부터 영원히 배척당할 수 있음을 무겁게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장재구회장은 가장 크고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하며, 대주주와 대표이사에서 물러남으로써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새삼 밝히는 것은 모두에게 민망한 일이지만, 장 회장은 회사가 처한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서도 200억 원 반납문제와 자신의 퇴진에 대한 약속을 또 다시 지키지 않았습니다. 편집국에 용역을 동원했으며, 자신을 비판한 주필을 논설위원으로 강등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국일보가 독자와 구성원, 전직사우 등으로부터 사랑받는 언론으로 회복되기 위해 현명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이 것이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선택일 것입니다.
셋째, 회사 경영진은 회장을 위해서라도 현명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하십시오. 회장의 진정한 측근이라면 용역 동원의 명을 받았을 때 단호히 거부했어야 합니다. 부당한 명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회장도, 한국일보도, 그리고 경영진 스스로도 사지에 빠뜨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넷째, 노조는 장재구 회장이 결단을 내리면 입장이 달랐던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화해와 대타협의 길에 나서 주기 바랍니다. 이번 일은 대주주로 인해 빚어진 사태입니다. 대주주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보낸 동료들이 인신 공격까지 하는 것은 지성인다운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OB들도 각자 조금씩 생각이 다르고, 현재 양 편에 서 있는 후배들에 대한 생각도 약간씩 다릅니다. 하지만 선배들 입장에선 모두 아끼고 싶은 후배들입니다. 이런 전통 속에서 한국일보 선후배 간에 끈끈한 정이 이어져 왔습니다. 생각의 다름, 입장의 차이로 격한 언쟁을 벌이고 나서도 함께 한 잔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게 한국일보의 풍토였습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안고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한국일보의 보도태도를 지켜온 바탕이었습니다. 지금 후배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게 크게 걱정스럽습니다. 증오는 스스로를 태울 뿐이며, 화해야말로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은 선배들의 간절한 호소에 귀 기울여주길 당부합니다.
뿌리 없는 집안은 사소한 다툼도 험악하게 끝냅니다. 뿌리 깊은 가문은 큰 갈등도 슬기롭게 해결합니다. 한국일보는 뿌리가 깊고 탄탄한 나무임을 모두가 보여주시길 갈망합니다. 이번 갈등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한국일보를 우리 사회의 정론지로 다시 한 번 우뚝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한국일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책무이기도 합니다.
역설이지만 이번 사태는 그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잊혀져 가던 한국일보적 가치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구성원들이 한국일보의 미래를 깊이 고민하는 계기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뿌리깊은 한국일보의 저력을 보일 때입니다. 모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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