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과 패기, 예술적 모험' 폴 토마스 앤더슨에 관한 21가지 사실

2014-07-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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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페르난도 밸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어니 앤더슨은 텔레비

1.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페르난도 밸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어니 앤더슨은 텔레비전 호러무비 프로 진행자이자 성우였다. 형제자매가 9명이나 됐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은 7번째 자녀였다.

[어니 앤더슨]

2.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감독이 되도록 격려해준 것도 아버지였다. 그러나 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esquire.com]
3. 소년 시절 마르고 말이 많고, 지나칠 정도로 활달한 아이였다고 한다. 선생님들한테 위대한 감독이 될 거라고 큰 소리치고 다녔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4. 사립 기숙사 학교에서 계속 말썽을 부려 퇴학당했다.

5.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모큐멘터리' 형식의 단편 '더크 디글러 스토리'(1988)를 만들었다. 가상인물인 포르노 스타 더크 디글러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리는 영화. 제작비를 벌기 위해 애완동물 샵에서 알바를 뛰었다. 이 단편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장편 '부기 나이트'로 결실을 맺게 된다.

6. 고교 졸업 후 에머슨 칼리지 영문학과에 들어가 2학기를 다녔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중퇴한다. 하지만 이후 딱히 길을 찾지 못하자 "덜컥 겁이 나서" 뉴욕대학 영화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 역시 이틀 만에 학교를 그만둔다. 이 과정에 대해선 아래 인터뷰에서 잘 설명돼 있다.

7. 이후 앤더슨은 TV 프로덕션 어시스턴트를 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방송 FD'. 이때 단편 '담배와 커피' 시나리오를 쓴다. 제작비는 대학 중퇴했을 때 돌려받은 등록금, 여자친구 신용카드, 그리고 도박에서 딴 돈으로 충당했다.

8. 단편 '담배와 커피' 주인공 필립 베이커 홀은 앤더슨이 FD하던 시절 알게 됐다. 인지도 있던 배우였던 홀이 세트장에 나타나자, 앤더슨이 쪼르르 달려가 시나리오 '담배와 커피'를 건네주고는 읽어봐달라고 부탁했다. 홀은 시나리오를 읽어보고선 출연을 승낙했다. 홀은 "아주 잘 쓰인 시나리오였다. 물론 모험이었지만 이 젊은이와 일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9. '담배와 커피'는 1993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됐고 호평을 받았다. 우연과 운명, 질투, 배반, 실수, 회한, 용서 등 후일 앤더슨이 다루는 주제의식이 잘 드러난 아주 훌륭한 단편이다. (주의 : 화질이 안 좋다)

10. 선댄스 영화제 측은 '담배와 커피'에 큰 감명을 받고, 앤더슨을 '선댄스 장편영화 프로그램'에 초청한다. 이 프로그램은 신인 감독이 데뷔할 수 있도록 장편 시나리오 작성, 영화 제작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첫 장편 데뷔작은 '리노의 마법사'(1996)다. 영어 제목은 'Hard Eight'. 유명해지기 전의 기네스 팰트로를 볼 수 있다.

11. 데뷔작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촬영이 끝난 후, 제작사는 감독과 상의 없이 편집했다. 분노한 앤더슨은 제작사 몰래 따로 편집한 후 이를 칸 영화제에 제출했다. 이 버전은 1996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에 상영되게 된다. 결국 영화는 앤더슨 버전의 편집본대로 극장에 걸린다. 단, 제목만큼은 'Hard Eight'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서. 앤더슨은 '시드니(Sydney)'라는 제목을 원했다.

12. 이 경험 후, 앤더슨은 "타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 다음해에 신인감독으로선 여러모로 야심찬 영화 '부기 나이트'(1997)를 만든다.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앤더슨에게 '원더 키드'란 별명을 안겨준다.

13. '부기나이트' 성공 후, 제작사 뉴라인시네마는 다음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어보라며 백지위임장을 줬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기작이 '매그놀리아'다. 제작사들이 꺼리는 복수 주인공 복수 플롯이 쓰인 거대한 드라마로서, 백지위임장 아니었으면 제작이 쉽지 않았을 영화였다.

14. 앤더슨에게 큰 영향을 준 감독으로는 마틴 스코세지, 로버트 알트만, 조나단 드미, 스탠릭 큐브릭 등이 있다. 특히 알트만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알트만이 말년에 영화 촬영하던 당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우려해 앤더슨을 '백업 감독'으로 두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앤더슨과 로버트 알트만 감독 /www.philonfilm.net]

15. 90년대에는 가수 피오나 애플과 사귀었고, 애플의 여러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매그놀리아 후반 작업 중 놀고 있는 두 사람]

16. 2001년부터 공식적으로 결혼하지는 않은 채 코미디언 마야 루돌프와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네 명의 자녀를 뒀다.

17. 그의 영화에는 필립 베이커 홀, 존 라일리, 필립 시모어 호프만, 줄리안 무어 등이 자주 출연한다. 특히 필립 시모어 호프만은 앤더슨 영화 6편 중 4편에 출연했다.

18. 헤비 스모커로서 시나리오를 쓸때면 엄청난 담배를 소비한다. "시나리오를 더 빨리 쓰고 싶지만, 담배 피느라 더 빨리 쓸 수가 없다"고 털어놓기도.

19. '스테디캠'을 이용한 롱테이크, 돌리나 크레인을 사용한 '움직이는 카메라', '대칭구도' 등을 자주 사용한다.

20.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다. 대표적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매그놀리아), 칸 영화제 감독상 (펀치 드렁크 러브),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데어윌비 블러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마스터) 등등.

21. 영국 가디언은 2012년 발표한 '베스트 감독 23명' 리스트에서 앤더슨을 1위에 랭크시켰다. 가디언은 "영화에 대한 그의 헌신은 점점 강해져왔다. PR이나 유명세에 대한 경멸은 그를 우리 세대에서 가장 신실한 필름메이커로 만들어 놓았다" 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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