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팬은 범죄자? 그 현장을 가봤다"

2014-08-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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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에서 경마 경기를 즐기고 있는 경마팬들 / 이하 사진=위키트리][

[서울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에서 경마 경기를 즐기고 있는 경마팬들 / 이하 사진=위키트리]

[경제산업팀 이동훈-김승일-임재랑] = 서울 용산 마권장외발매소(이하 화상경마장)가 첫 개장했던 지난 달 28일, 마사회 용산지사 건물 입구에서 한 판 실랑이가 벌어졌다.

개장 반대 시위자들이 “야, 이 도박꾼아”라고 소리치며 발매소에 입장하려던 경마팬들을 비난했다. 그러자 손가락질을 당한 한 경마팬이 “난 사업하는 사람이야”라고 맞섰다. 결국 이 실랑이는 명예훼손 고소로 이어졌다. 용산경찰서 측은 “피고소인이 두 차례 출석을 미루다 3차 소환에 응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 밝혔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경마’에 대한 인식의 격차를 보여주는 작은 사건이었다. 이 날 해프닝에 대해 마사회 홍보팀 한 관계자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멀쩡한 경마팬을 도박꾼이나 범죄자 취급하는 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돌이켜 보면 이제까지 경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지 못한 마사회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스스로 “나도 열광 경마팬이다”고 말할 만큼 경마가 국민적 레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범죄 온상처럼 여겨지는 걸까? 지금 그 찬반 논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용산 화상경마장.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반대 주민들 “도박꾼 모여들어 슬럼 될 것” vs 마사회 “현실 아니다”

[지난달 27일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반대 집회에 참여한 성심여고 학생들과 시민단체, 주민들]

입점 반대 주민들은 "경마장 이용객 대부분이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거나 소득 하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라며 "주변 지역이 슬럼으로 변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 집회에 참가한 한 주민은 "영업 개시 한 달 밖에 안 됐는데도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여러 번 봤다"며 "인근 성심여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마사회측 말을 들어 봤다.

마사회 관계자는 "도박을 위해 화상경마장을 찾는 경마팬들은 이제 거의 없다. 반대 주민들이 노숙인이나 상관없는 취객까지 경마팬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나타나 우려된다. 경마를 즐기는 팬들은 사업가, 직장인 등 다양하다. 경마팬들이 '도박꾼'이라는 시선은 편견이고 인권침해에 가깝다”고 밝혔다.

실제 몇 주 전 일어난 취객 술주정 사건도 이 같은 우려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성심여고 학생회장 H 양(17)은 “얼마 전 금요일 오후 7~8시쯤 술 취한 ‘경마꾼’이 지나가던 중학생을 깨진 술병으로 위협해 난동을 부렸다”며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경마장 때문에 학교 다니기 겁난다는 얘기들을 한다”면서 불안감을 나타냈다.

확인 결과, 사건 당일 경마게임이 끝난 시각은 오후 8시였다. 또 경마경기가 모두 끝나면 장외발매소 직원들이 모두 나와 경마팬들을 배웅하고, 30분간 2개조로 나눠 인근 환경미화와 안전지도를 하고 있었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시범운영 첫날부터 모든 경마경기가 끝나는 8시 이후부터 경마팬들을 배웅하고, 30분간 인근 환경미화와 안전지도를 하고 있다]

시간대로 봐서는 그 취객이 경마팬일 개연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취객을 의심 없이 경마팬으로 단정하는 학생들의 생각은 이미 이 지역에 누적된 '반대론'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말해 준다.

경찰 “화상경마장 때문에 발생한 치안사건은 없었다”

이에 관할 경찰지구대를 찾았다. 과연 개장 전과 후, 달라진 점은 뭘까?

먼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해 오기 전 용산역 앞 화상경마장을 관할했던 한강로 지구대를 찾았다. 이 지구대에서 수년째 근무했다는 한 경찰관은 “화상경마장이 이전하기 전까지 특별한 치안 사건은 없었다”면서 “경마장 입장 때 새치기를 하다 마찰이 생겼다거나, 객장 내에서 다툼이 생겨 출동한 경우가 1~2건 있었다. 그 외에는 오토바이 소리로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온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또 지금 화상경마장이 옮겨온 위치를 관할하는 용산역 지구대의 한 경찰은 "지난 1월에 우리 관할로 이전했다고 들었지만, 화상경마장과 관련한 폭력이나 관련 신고는 없었다"면서 "마사회가 자체적으로 객장 관리를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에 일곱은 1만원 못 되는 소액 배팅

[용산 마권장외발매소 내부에 있는 마권 자율발매기. 객장 내부에는 은행 ATM기부터 카페테리아, 흡연실, 휴게실도 갖춰져 있고, 술이나 담배, 과자를 살 수 있는 매점은 없었다]

현재 경마 경주 1경기에 걸 수 있는 금액은 10만원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마사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지사를 대상으로 한 최근 10년간 ‘마권구매 금액대별 점유비 분석결과’를 살펴보면 2004년 전체 6.6%이던 10만원권 구매비율은 지난해 3.1%로 절반이 넘게 줄어들었다. 반대로 같은 기간 3천원 이하 소액 구매비율은 20.4%에서 30.8%로 1.5배 늘어났다.

또 같은 기간 5만원 이상 10만원 미만 구매비율은 2.9%에서 1.7%로 줄었다. 3만원 이상 5만원 구간 역시 5.5%에서 4.2%로 줄어들었다. 반면 1만 원 이하 구매건수는 62.2%에서 71.2%로 늘어났다.

그러니까 열에 일곱이 넘는 사람들이 1만원이 못 되는 소액을 가지고 경마를 즐기고 있다는 말이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경마팬 얘기를 들어 봤다. 공직에서 은퇴했다는 그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오는데, 하루에 많아봐야 3~4만원 정도 돈을 건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말이 뛰는 것 보면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가 해소돼 자주 찾는다. 특히 용산 화상경마장 손님들 중엔 나처럼 은퇴한 분들이 유난히 많은데, 타 발매소에 비해 객장 분위기가 조용하고 쾌적해 그런 걸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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