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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마라톤대회 앞서 보는 '슬픈 손기정 이야기'

2015-11-0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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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평화 마라톤 대회 페이스북 일제강점기(1910~1945)였던 1936년, 일장기를

손기정 평화 마라톤 대회 페이스북

일제강점기(1910~1945)였던 1936년,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을 달려야 했던 손기정 선수.

그는 시상식에서 환하게 웃을 수 없었던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는 늘 슬픔에 차있던 국민들에게 엄청난 기쁨을 준 인물이었다.

오는 22일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에 앞서 손기정 선수에 대해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익숙하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하던 손기정 선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1. 여자 고무신 신겨도 달리고 싶어하던 소년

이하 손기정 기념관

손기정 선수는 1912년 5월 29일 신의주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달리기를 무척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어머니가 헐거운 여자 고무신을 신겨 놓아도 손기정 선수는 새끼줄로 고무신을 동여매고는 달렸다. 새끼줄 때문에 발등이 벗겨지고 피가 나기도 했다.

결국 어머니는 운동회에서 1등으로 들어오는 손기정 선수를 본 뒤 '다비'를 사줬다. '다비'는 일본 사람들이 양말 대신 신던 외버선으로 고무신보다 가벼웠다.

2. 그는 1935년 명치신궁대회에서 '마의 30분벽'을 깼다

그간 올림픽에서도 마라톤 기록이 2시간 30분의 벽을 깨지 못했으며 10회 우승자 자바라의 기록은 2시간 31분 36초였다.

1935년 11월, 베를린 올림픽 예선을 겸한 명치신궁대회에서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6분 14초를 기록하면서 1위를 하는 동시에 세계 신기록을 갱신했다.

신기록을 세운 뒤 시상식에서 '기미가요'가 나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일본 기자들이 "왜 우냐"고 묻자 김연창 인솔교사는 "베를린 올림픽에 나가게 돼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3. 그의 출전을 매우 못마땅해했던 일본대사관 직원들

"어째서 마라톤에는 조센징(조선인)이 두 명이나 있소?"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 독일 프리드리히역에 도착한 손기정, 남승룡 선수를 본 일본대사관 직원이 한 말이다. 이후에도 컨디션 조절에 집중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대표팀은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을 떨어뜨리기 위해 30km 선발전을 열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일본인 선수 스즈키가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4. "페이스 조절해" 마라톤 당시 손기정 선수를 도왔던 영국 선수

1936년 8월 9일 열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초반 선두는 손기정 선수가 아닌 1932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우승자인 아르헨티나의 자바라 선수였다.

무섭게 달려오는 손기정 선수를 보며 영국의 하퍼 선수는 천천히 달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자바라 선수가 곧 무너질 것으로 보이니 페이스 조절 잘해서 같이 뛰자는 뜻이었다. 손기정 선수는 이를 받아들였고 하퍼와 그는 러닝메이트로 함께 달렸다.

무리하게 달리던 자바라는 30km 지점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레이스를 포기했다. 손기정 선수는 마지막 반 바퀴를 전력 질주해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였다.

하퍼 선수는 2시간 31분 23초 기록으로 들어왔다. 2위였다.

손기정 선수는 이후 "(하퍼에게) 지나치게 스피드를 내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 스포츠맨십을 지닌 훌륭한 선수다. 우승은 그의 친절한 충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5. 작가 심훈이 손기정, 남승룡 선수를 기린 시를 남겼다

심훈은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3위 기록)를 축하하고 기뻐하며 시를 지었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백림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군에게-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 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를 켜 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했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이후 이 시를 지었다는 이유로 심훈은 일본 경찰에게 끌려갔다.

5. 한국인 기자에게 온 전화에 눈물 터뜨린 손기정 선수

손기정 선수는 우승 후 일본 언론에 "이렇다 할 느낌은 따로 없다. 감격했을 뿐이다"라는 짧은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 우승 축하합니다. 우승 소감을 들려주십시오"라는 조선일보 기자 전화에 그는 통곡했다.

6. "난 코리아에서 온 손기정"

손기정 선수는 활달한 성격이었다. 그는 외국인 선수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누군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손긔졍'과 'KOREA'를 함께 적어줬다. 한반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이성구 선수는 손기정 선수가 사인에 한반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성구 선수가 "당신 그러다가 일본으로 송환되고 올림픽에 못 나가"라고 했다. 손기정 선수는 "나를 올림픽에 안 내보내면 자기들만 손해지"라고 답했다.

7. 일장기 말소 사건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손기정 선수가 달고있었던 일장기를 지워 신문을 내보낸 사건은 유명하다.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사진을 전체적으로 흐릿하게 했다.

이후 일본군은 가장 먼저 사진 수정을 제안했던 이길용, 현진건, 최승만, 신낙균, 서영호 씨 등 동아일보 사원을 심하게 고문했다.

또한 우승 후 일본 선수단 본부는 축하 파티를 준비했으나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선수단 본부 임원들은 이에 분노해 조선인 선수들을 더욱 냉대했다.

8. 제자 서윤복 선수, 태극기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

이후 손기정 선수는 감독으로 활동했다. 1947년 4월 19일 그의 제자 서윤복 선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태극기를 단 채 달렸고 우승했다. 태극기를 달고 이룬 최초의 승리였다.

서윤복 선수 우승 기념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과 함께

오는 22일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는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손기정 평화 마라톤 대회'다.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79주년과 광복 70년을 기념해 마련된 대회다. 마라톤 코스는 5km, 10km, 하프, 풀 코스로 나뉘어 열린다.

'가을을 온몸으로' 손기정 평화마라톤 개최

접수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홈페이지(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 사이트로 연결)에서 하면 된다.(☞바로가기) 마라톤대회는 손기정기념재단이 주최하며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후원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측은 이번 대회가 하퍼와 손기정 선수가 함께 페이스 조절을 해나갔듯이 마라토너들이 파트너십을 기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마라톤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운동"이라며 "여성, 남성 나아가 가족이 함께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평화'를 되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