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비살롱'에 부치는 인디뮤지션들의 추도사

2015-11-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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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바다비’(이하 바다비)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11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복합 문화

‘살롱 바다비’(이하 바다비)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11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복합 문화공간이다. 십센치, 갤럭시 익스프레스, 장재인 등 지금은 '스타'가 된 인디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데뷔 무대를 치뤘다. 바다비에 '인디 인큐베이터'라는 별칭이 생긴 이유다.

지난달 21일 바다비가 문을 닫았다. 지난 1일 오후 바다비가 있던 곳을 찾았다.

나들이객으로 북적대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지나 산울림 소극장을 거쳐 조금 더 걸었다. 한적했다. '181-5', 바다비가 있던 건물 앞에 서자 최근 새 앨범을 낸 김사월 씨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뻑뻑한 유리문을 미니 꿉꿉한 곰팡이 냄새가 확 풍겼다. 지하 1층은 철문에 막혀 가볼 수 없었다. 우편함에는 '살롱 바다비' 앞으로 배달된 두 통의 편지가 먼지 쌓인 채 꽂혀 있었다. 바다비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바다비'가 있던 건물 정경.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막혀 있었다 / 위키트리

지난달 14일부터 18일 5일 동안 뮤지션 40여팀이 이곳에서 '바다비, 잠시만 안녕'이라는 고별공연을 펼쳤다.

권나무, 갤럭시익스프레스, 비둘기우유, 안녕바다 등이 참여했다. 타바코 쥬스는 해체 5년 만에 원년 멤버가 모여 공연을 펼쳤다. 바다비 대표 '우중독보행' 이 씨(40대)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뽑았다. (우중독보행은 시를 쓰는 이 씨의 필명)

'바다비' 마지막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바다비' 사장 이씨(무대 오른쪽) / 유튜브, wikitree4you

11년 전 이 씨는 다양한 문화가 싹트는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며 바다비를 시작했다. 지하 1층 30평이 안되는 작은 공간은 '인디 인큐베이터'라 불리며 그만의 행보를 이어왔다. 주인장 이 씨의 고집스런 운영 철학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일 이 씨는 전화 통화에서 "대관료가 우선이면 소신 있는 공연을 할 수 없다. 특화된 공연, 뮤지션의 창작성이 돋보이는 공연 중 어떤 건 잘 되지만 어떤 건 그렇지 않다. 다양한 문화가 살아나고, 여러 예술가가 무대에 서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공공의 무대가 필요하다"며 바다비 운영 철학을 설명했다.

목요일 오픈스테이지 '정신UP데이', 수요일 '단독 공연', '이달의 아티스트' 등 바다비가 기획한 대다수 공연이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이유다.

이윤 추구를 주목적으로 삼지 않던 바다비는 치솟는 홍대 인근 건물 임대료를 버티기 버거웠다. 2007년과 2011년 폐업 위기도 두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바다비를 아끼는 뮤지션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 폐업을 막아냈다.

이번 운영 중단에 특별한 이유가 있냐 묻자, 이 씨는 "특별한 이유야 많죠"라며 씁쓸히 웃었다. 그는 "11년 동안 운영했지만 수익이 없었다. 오히려 빚쟁이가 됐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빚이 생기고 괴로워 했다"고 말했다.

바다비가 있던 건물 근처 H 부동산 공인중개사 이지훈 씨는 “(이 근방 부동산 시세는 최근 몇 해 동안) 평당 1000(만원)씩 올랐다. 올해는 주춤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매물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임차인 보호에 따라 집 주인이 임대료를 함부러 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권리금 0으로 들어왔던 전 임차인이 새 임차인에게 권리금 5000~6000만원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건 바다비가 '잠시만 안녕'이라며 돌아올 것을 예고했다는 점이다. 이 씨는 "(돌아올) 대안은 없다. 하지만 이 공간은 반드시 되살릴 것"이라며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봄까지 (바다비를 살릴) 대안을 찾을 수 없다면 돌 길 위든 흙 길 위든 바다비가 여태껏 해온 것처럼 순도 높은 공연을 펼칠 것"이라며 "지원을 받거나 공동사업가를 찾아 바다비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바다비, 잠시만 안녕' 공연 모습 / '살롱 바다비' 페이스북

바다비를 지키고 싶은 건 이 씨만이 아니다. 바다비에 대한 기획을 준비한다고 하자, 기꺼이 글을 보내주겠다 말한 뮤지션들이 있다.

2011년 EP '상실의 시대'로 데뷔한 밴드 '이상의날개' 보컬 문정민 씨, 밴드 초창기 무대를 바다비에서 가졌던 '갤럭시 익스프레스', 201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 부문을 수상한 권나무 씨도 긴 글을 보내왔다. 홍대 인디씬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받(Vad Hahn)' 씨는 한 편의 시같은 글을, 2015 스페이스공감 '9월의 헬로루키' 해일 보컬 이기원 씨는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보내왔다. 바(Bar) 운영까지 하느라 바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이재훈 씨도 흔쾌히 참여해줬다.

뮤지션 6팀이 보내온 이 글에는 바다비에서 나눈 추억, 이곳에서 키웠던 꿈, 고향이 없어지듯 안타까운 마음이 담겼다. 권나무 씨는 바다비를 "끝없이 낭만을 이야기하던 공간"이라 했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부터 소개할 글은 '낭만을 이야기하는 공간의 사라짐'에 부치는 추도사다.

1. ‘이상의날개’ 보컬·기타 문정민
석기시대레코드

‘살롱 바다비’에서 첫 공연을 한 게 2012년 4월 5일로 기억합니다. 한 번의 밴드 와해 위기를 거치고 다시금 재정비했을 때 공연을 처음 가졌었죠.

그 이후에도 한동안 홍대 앞에서 공연 기회를 얻지 못해 밴드가 침체 되었을 때 종종 기회를 주셔서 즐겁고 따뜻한 마음으로 공연하곤 했습니다.

바다비 덕분에 밴드의 힘든 시기도 극복할 수 있었고 또 많은 뮤지션들, 팬 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홍대 앞에서 활동하며 정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습니다.

바다비의 역사 속에 수많은 밴드가 있고, 거기에 저는 미미하게나마 단 몇 줄 남겼을 뿐이지만 참 행복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어요. 바다비가 아주 잠깐만 숨을 고르고, 잠깐만 쉬었다가 멀지 않은 언젠가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할게요! 바다비 네버 다이!

2. 갤럭시 익스프레스

러브락컴패니

이주현(베이스)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결성하고 밴드 이름을 만들지 못해 공연을 ‘똥’으로 했던 적이 생각나는 곳입니다. 처음 인상이 뭔가 너무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인상이 편했던 곳이 사라져 안타깝습니다. 바다비 네버다이!

박종현(기타)

동태찌개와 떡볶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공연도 같이 끓어올랐던 추억의 공간입니다. 다시 한번 끓어오르기를 기대합니다!

김희권(드럼)

갤럭시 초창기 때 많이 공연했는데 너무 좋아하던 공간이고 집 같은 느낌의 공연장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포즈도 해서 그런지 엄청난 추억의 공간이다. 우리만의 놀이터가 하나 사라져간다는 게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바다비 수염난 털보 형님 역시 푸근한 인상이다.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3. Vad Hahn

'바다비' 고별 무대에 선 Vad Hahn / Vad Hahn 페이스북

살롱 바다비, 취한 별들의 시간, 빛나던 시간, 빛이 사라지고 어둠의 시간이 되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어처구니 없는 노래를 불렀던가.

그것 다 받아주고, 웃어주고, 박수쳐주고, 위로도 보내주고,

바다비가 올 거야. 받아! 비가 올 거야.

그때 내 노래 또 아래로 아래로 쏟아내야지.

4. 밴드 ‘해일’ 보컬·기타 이기원

‘바다비’에서 공연하는 해일 / 해일 페이스북

우리가 ‘바다비’에서 처음 공연한 날은 2012년 5월 26일이었다. 그 해 3월 막 활동을 시작하고 모든 것들에 막막하던 시절에 바다비는 우리에게도 따뜻한 인큐베이터였다.

우리는 바다비의 다양한 기획 중 하나인 ‘지진병기666’에 종종 초대 받았는데, 그때마다 마치 우리가 바다비에 숨겨진 비밀 병기가 된 것 같은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었다. 많은 이들에게 큰 고마움을 주던 공간이었다. 잠시만 안녕했으니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5. 권나무

'바다비' 고별 무대에 선 권나무 씨 / 권나무 씨 페이스북 페이지

끝없이 낭만을 이야기하던 공간 하나가 사라졌다. 곧 새로운 공간으로 돌아오리라 기대하지만 내가 알던 곳이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재빨리 생각들을 정리하고 분리해내어야만 내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얄궂은 강박 때문에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무엇이 이곳을 사라지게 했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항상 아주 가까이에서 같이 먹고 마시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이곳에 철저히 타인이었다는 것도 함께 인정해야했다. 우리가 진실하다고 믿게 되는 모든 것에는 결국 적당한 거리가 생기지만 그 거리는 오랜 시간속에서 형성된 거리일 때 그 의미를 갖는다.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던 시간들이 더 많이 쌓였다면 아마 나는 이 곳의 상실을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느꼈을까.

나는 과연 얼마나 더 냉정하고 침착해져야만 하는가. 항상 사라지는 것들은 내 마음에 묶인 실태래 같은 덩어리들을 남긴다. 그것들은 다시 묶인 매듭을 풀거나 접시 위에 올려두고 가위로 잘라버릴 수도 없다. 이제는 정말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이 사라질 거라는 것을 갑자기 받아들여야만 했고 나에게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갑자기 뒤늦은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음악가로서의 첫 무대를 이곳에서 치루었다. 첫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하고 앨범발매 쇼케이스를 이곳에서 열기로 한 것은 단지 이 공간이 편안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비로소 시작되었던 공간에 대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고마움의 표현이자 곧 이 곳을 떠나 더 많은 세상을 겪어보려 한다는 작은 선언이었다.

떠나야만 하는 것과 떠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우리가 집을 떠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추운 밤을 맞을 때 다시 돌아 올 곳이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동교동으로는 갈 수 없으니 이제 나는 내 마음 속에 방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가끔씩 그 거리와 편의점과 입구와 계단과 화장실과 무대와 사람들과 천장의 별들과 석호형의 우렁찬 무대 인사들을 꺼내어 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은 내가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나는 모든 것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의 오래된 주제이다. 살롱바다비는 이렇게 사라지는 것으로 마지막 낭만을 완성하는지도 모르겠다. 훗날에 누군가 바다비는 어떤 곳인가라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바다비가 낭만적인 곳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염원대로 곧 다시 바다비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채,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는채 그곳에서 노래를 시작하고 꿈을꾸고 무르익고 떠나고 돌아오곤하는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오랫동안 공간을 운영해 오신 석호형과 배소누나를 비롯해 바다비에 함께했던 식구들에게 멀리서나마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 서천에서, 권나무

6.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기타 이재훈

밴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우리가 홍대에서 ‘굴다리’를 넘어가는 이유는 거의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살롱 바다비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홍대에서도 외지고 외진 그 곳까지 굳이 살롱 바다비가 아니라면 갈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클럽 빵’도, ‘공중캠프’도 굴다리는 건너지 않았습니다. 바다비에서 공연이 있는 날마다 맥주며, 포켓 양주며 사다 마시던 굴다리 밑 편의점도 갈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레코드페허’가 있는 날이면 굴다리 너머 길바닥에 사람이 북적였습니다. 그 길가에서 설탕을 녹여 뽑기를 만들어 음반과 함께 팔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외진 곳까지 사람이 모이게 하는 힘은 살롱 바다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스스로 바다비와의 인연을 말합니다. 지금은 꽤나 유명해진 이들도, 아주 매니악한 장르를 해서 유명함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하나같이 바다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음에 어떤 곳으로 가더라도 모든 음악과 음악가를 사랑했던 바다비는 또 사람이 모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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