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내에서 민주화 상징된 아웅산 수지' 7가지 순간

2015-11-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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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 로이터 뉴스1평범한 아내에서 민주화의 상징이 된 여성이 있다. 바로 미얀마 정치인

양곤 = 로이터 뉴스1

평범한 아내에서 민주화의 상징이 된 여성이 있다. 바로 미얀마 정치인 아웅산 수지(70) 여사다.

영국에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삶을 살던 아웅산 수지는 1988년 위독한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로 돌아왔다.

다시 찾은 고국에서 독재 정권에게 억압받는 미얀마 현실을 보게 된 아웅산 수지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바람과 아버지가 못다 이룬 조국의 민주화를 실현시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아웅산 수지는 독재 군사정권에 14년 간 가택연금을 당하고 그 사이 해외에 있는 남편은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아웅산 수지만을 바라보는 국민과 남편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결국 미얀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이후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고 최근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다.

아웅산 수지 여사의 드라마 같은 삶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7가지를 꼽아 봤다.

1. 아버지 아웅산 장군 암살로 미얀마를 떠나다.

wikipedia

아웅산 수지는 1945년 6월 19일 버마(미얀마 옛 국가명) 독립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장군과 킨 지 여사 사이 고명딸로 태어났다.

아웅산 수지 아버지는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를 독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미얀마 독립 2년 만에 정적에 의해 암살 당했고 아웅산 수지는 어머니와 외국에서 생활했다.

아웅산 수지는 1964년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하고 영국인 마리클 에리어스와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았다.

2. '8888 민주화 항쟁'으로 민주화 혁명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다.

양곤 = 로이터 뉴스1

아웅산 수지는 1988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병 간호를 위해 귀국한다.

당시 버마는 26년간 계속된 독재정권에 의해 심각한 경제 파탄과 인권 유린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버마 국민들은 1988년 8월 8일 아침 8시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 승려와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8888민주화 항쟁'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의 딸인 아웅산 수지가 자신들을 위해 행동해주기를 바랐다.

8월 26일 양곤 쉐다곤 사원 인근 공원에서 50여 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수지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로 민주화 투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유튜브, DVB TVonline

그는 미얀마를 일당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당'에게 다원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미얀마 민중과 함께 야당 세력을 망라해 '민주주의민족동맹(NLD :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한다.

3. 14년 간 가택연금, 그를 더 강하게 만들다.

아웅산 수지 홈페이지

군사 정부의 탄압으로 아웅산 수지는 1989년 첫 가택연금을 당한다. 군부세력이 말하는 그의 명목상 죄목은 '내란죄'다. 그는 총 14년 간 가택연금 처분을 당했다.

1990년 아웅산 수지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음에도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동맹(NLD)가 전체 의석의 82%를 차지해 압승한다. 군정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오히려 지도부 등 당원 수백 명을 투옥하고 탄압한다.

아웅산 수지의 감금은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버마 국민의 더 강한 지지와 세계적인 명성을 이끌어냈다.

4. 평범한 아내의 삶 대신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다.

영화 '더 레이디'

오랜 자택연금으로 그는 영국인 남편과 영국 국적의 두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게 됐다.

1995년 국제 사회의 압박으로 가택연금 6년만에 풀려났지만, 1999년 남편이 영국에서 암으로 사망할 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출국을 포기한다.

그는 2000년 9월 2차 연금 조치로 양곤 밖으로 여행이 금지당한다.

5.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 21년 만에 수락 연설을 하다.

양곤 = 로이터 뉴스1

1991년 아웅산 수지 여사는 민주화 운동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다. 하지만 가택연금 상태인 수지 여사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의 두 아들과 남편이 대리 참석한다.

그는 2012년 6월에서야 노벨평화상 수상 21년 만에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상 수락 연설을 했다. 그는 노벨평화상이 자신이 느끼던 소외감을 없애고,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세계의 요구를 재확인해 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6. 부활한 아웅산 수지, 미얀마 민주화 선봉에 서다.

2012년 4월 1일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민주동맹(NLD)도 재보선 대상 45석 가운데 43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등을 차례로 만나며 세계적으로 미얀마 민주화의 지지를 얻어갔다.

이하 wikimedia

7. 총선 과반 의석 차지

지난 8일 미얀마에서는 총선이 실시됐다. 그 결과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상하원 전체 의석의 절반(329석)을 넘어 348석을 차지해 단독 집권이 가능해졌다.

1962년 이후 53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군부독재가 막을 내릴 수 있을 지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양곤 = 로이터 뉴스1

또한 많은 국민은 아웅산 수지가 미얀마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형행법상 수지 여사는 직접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 지난 2008년 군사 정권은 영국인과 결혼한 수지 여사를 겨냥해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국민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헌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수지 여사가 군부와의 협상으로 내년 초까지 개헌에 성공한다면 그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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