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14년째 군병원 영안실 앞에서 사는 이유

2016-08-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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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일로 경비 근무를 하는 함상웅(65) 씨는 일이 끝나면 경기도 덕양구 국군고양병원 영안실

격일로 경비 근무를 하는 함상웅(65) 씨는 일이 끝나면 경기도 덕양구 국군고양병원 영안실 앞 군용천막으로 퇴근한다. 날아가지 않게 모래 주머니로 둘러싸인 12인용 천막 안에는 영정사진, 향로와 세면도구 같은 생필품이 있다. 원래는 영안실 안에서 살다가, 2010년쯤 보수 공사에 맞춰 밖으로 나왔다. 함상웅 씨는 이 천막에서 6년째 살고 있다.

함상웅(65) 씨가 살고 있는 경기도 덕양구 국군고양병원 영안실 앞 군용천막 / 이하 위키트리(유가족 제공)

별일이 없으면,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천막에 머문다. 국군고양병원은 함상웅 씨에게 신분 확인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고정 출입증’을 줬다.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군 관계자까지 있을 정도다.

함상웅 씨가 천막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영정사진에 분향 올리기’다. 영정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청년이 있다. 그는 2002년의 9월을 잊을 수가 없다.

22살 청년의 의문스러운 죽음

2002년 9월 18일 오전 10시 50분쯤, 서울 은평구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방패교육대의 한 야외화장실에서 입대 100일도 안 된 신병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고 함광열 이병(당시 22세) 머리에는 총상을 입은 흔적이 있었다.

고 함광열 이병 생전 사진

1차 조사를 맡은 수방사 헌병대에 따르면, 함 이병은 이날 “교보재(교육훈련을 위한 보조재료)를 옮기라”는 선임(일병) 지시에 따라 사격 훈련을 마치고, 교보재가 있는 충성관으로 향하던 중 충성관 열쇠를 분실했다.

선임 질책이 두려웠던 그는 방향을 바꿔 야외화장실로 갔다. 군은 함 이병을 두고 “평소 내성적”이라고 했다. 함 이병은 대변칸에 들어가 문을 닫고,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이어 오른쪽 귀에 K2 소총(이하 K2)을 대고 한 차례 격발했다. 헌병대는 그가 왜 K2를 들고 있었고, 어떻게 탄약을 입수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총알은 함 이병 머리를 관통해 왼쪽으로 빠져나갔다. 사고 현장에서 두개골에 부딪혀 깨졌다고 추정되는 총알 조각과 K2, 탄착흔이 묻은 방탄모가 발견됐다. 전형적인 ‘총기 자살’ 현장처럼 보였다. 군도 “자살한 것 같다”는 잠정적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다. 사고 이틀 째 되던 날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자세·수상한 혈흔·엇갈린 진술...유가족 “군은 조작·은폐로 일관했다” 주장

함 이병은 입대 70여 일만에 그렇게 ‘장기 미인수 영현(장기 영현)’이 됐다. ‘장기 영현’은 군에서 사망한 뒤 유가족이 장기간 수습하지 않고 있는 시신이나 유골이다. 차디찬 냉동고를 못 나가는 데는 저마다 사연이 있지만, 본질적 이유는 하나다. 사인이 석연치 않아서다.

지난 5일 국군고양병원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함 이병 삼촌 함상웅 씨는 “(자살이라는 수사 결과를 접했을 때)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함 이병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각별한 사이다. 함 이병 어머니, 아버지도 농성 초반 노숙 생활에 동참했다. 하지만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현재는 상웅 씨 혼자 천막을 지키고 있다.

함상웅 씨 / 위키트리

함상웅 씨는 “나도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다. 군대가 얼마나 폐쇄적 집단인지 잘 안다”며 “하지만 그때는 (군이) 너무했다. 유가족을 조사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가족도 (함 이병의) 부검 과정을 찍겠다고 했다. 하지만 군은 거절했다"며 "내 가족이 죽었는데, 왜 촬영을 막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군에 대한) 믿음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유가족은 군의 촬영 거부 직후 부검을 취소했다.

함상웅 씨와 유가족은 사고 현장에는 수상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함 이병이 스스로 총을 쏘기 비좁은 대변칸 크기(높이 1.8m, 길이 1m, 폭 86cm)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키 178cm 함 이병이 K-2를 머리에 겨누려면 개머리판을 아래로 내려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그래야 사입구(총알이 들어간 곳)와 사출구(총알이 빠져나간 곳)가 아래에서 위로 날 수 있다. 어정쩡한 자세다.

이 의혹은 2007 SBS ‘그것이 알고싶다(☞영상 바로가기, 영상 27분까지)’에서도 자세히 다뤄졌다. 결과는 역시 “불가능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총을 취해야 쏠 수 있다”였다.

또 문을 닫고 총을 쐈다는 함 이병의 피가 문 바깥면까지 튀어 있었다. 군은 “(격발 시 나온) 피가 흩어지며 벽에 튕기고, 튕겨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법의학자)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그렇게는 안된다"라면서 "(누군가 고의적으로) 뿌려서 묻은 혈흔”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다. 목격자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함 이병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는 신 모 중위는 군 조사에서 함 이병의 K2 총구가 "하늘을 향해, (함 이병에게) 기대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신 중위와 비슷한 시점 함 이병을 봤다는 수방사 경비단 소속 박모 중위와 윤모 중위는 K2가 "방탄모와 함께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진술했다. 신 중위는 군이 실시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박 중위는 '진실'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현장조사는 박 중위 진술에 맞춰 꾸며졌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함상웅 씨는 “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과 은폐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며 “이제는 답답함을 넘어 사실상 체념 상태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군 조사 결과가 바뀌겠느냐. 어쩔 때는 이런 (노숙) 생활이 ‘신이 준 임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턱을 괸 그의 손끝이 살짝 바들거렸다.

“국방부, 30년간 1차 수사 결과 한 번도 번복한 적 없어”

고상만(46) 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 보좌관은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함 이병 사건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는 앞서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JSA 김훈 중위 사망 의혹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시민운동가다.

고 전 보좌관은 "여태까지 군 사망사고를 100건 정도 봤다. 타살을 자살이나 사고사로 조작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는 굉장히 한정적"이라며 "함 이병 사건 자료를 잠시 검토한 적이 있다. 수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타살'이라고 확신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고 전 보좌관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군에서 자·타살이 발생했을 때, 국방부가 주목하는 건 '누가 방아쇠를 당겼고, 누가 줄을 당겼느냐'다. 만약 자기면 자살이고, 아니면 타살"이라고 했다.

이어 "(국방부의) 조사 내용이 뒤바뀔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며 "국방부는 지난 30년 동안 1차 수사 결과를 바꾼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군복무 중 사망한 장병은 1256명이다. 이 가운데 군이 '자살'로 추정한 사건은 774명이다. 전체 62% 정도다. 하지만 국방부가 유족 이의 제기 등으로 조사 결과를 번복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18일 "예전 같으면 의문사로 분류됐을 사례들이, 요즘에는 전향적으로 처리하려는 (군의) 움직임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보다 적극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위키트리는 함 이병 사건에 대해 국방부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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