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서 즐기는 맥주 '가맥집' 젊은 층에 인기

2016-10-1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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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맥집에서 간단한 술과 안주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 이하 위키트리 가게 맥주집, '가맥집

가맥집에서 간단한 술과 안주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 이하 위키트리

가게 맥주집, '가맥집'이 젊은 층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원래 가게 맥주집은 슈퍼(라기보단 구멍가게)에 탁자 몇 개 놓고 간단한 안주와 술을 마시는 곳이다. 슈퍼인 만큼 술도 병 맥주, 병 소주, 막걸리 등이 주를 이룬다.

'가맥'은 어떤 매력으로 젊은층까지 사로잡고 있을까.

'가맥'이 최근에 새롭게 생겨난 술 문화는 아니다. 1980~1990년대에는 가게 앞에 테이블과 파라솔을 놓고 간단한 안주에 술 한 잔을 기울이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최근 전주가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면서 전주 대표 가맥집 전일갑오(전일슈퍼), 영동슈퍼 등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서울에선 체인점인 노가리슈퍼부터 마포구에 있는 연남슈퍼, 종로구 서촌가맥집, 서대문구 몽롱문방구, 양천구 보리상회 등 가맥집 분위기를 살린 술집이 점점 늘고 있다.

지난 6일 저녁 '서울식품'이라는 가맥집을 찾았다. 가게는 서울 종로3가역과 을지로3가역 중간쯤에 있지만 대로변에서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한참 들어가야 한다.

허름하고 정겨운 느낌이 나는 서울식품. 2층에도 술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10년 넘게 서울식품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이 가게 터는 오래 전부터 '가맥'을 팔던 곳이다.

1층은 과자, 아이스크림, 담배 등이 낡은 나무 선반에 진열된 슈퍼다. 한쪽엔 테이블과 아주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안주를 만드는 주방도 있다. 가게 바로 앞에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보였다.

주인 아주머니가 슈퍼 한 쪽 구석에 있는 주방에서 바쁘게 안주를 만들고 있다

2층에는 테이블 4개와 냉장고와 인터폰이 있다. 술은 냉장고에서 각자 꺼내먹고, 안주는 인터폰으로 시키면 된다. "해물 드실 수 있지?" 1층에서 아주머니는 전화 너머로 손님과 안주를 상의한다.

갈수록 시스템이 세련되고 편리해지는 다른 가게에 비해 이 가맥집은 메뉴판조차 없었다. 날마다 안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물이 들어오는 날이 있고 아닌 날도 있다고 한다. "뭐 드시고 싶은데?" 아주머니가 고정으로 파는 안주를 대충 '슥' 읊어준다.

"김치전 있고, 부추전, 호박전, 동태전. 국물 드시고 싶으면 순두부 있고 김치찌개 있고... 골뱅이무침, 계란말이, 비빔국수도 있고. 아이고 메뉴 많네, 이렇게 말하니까~"

"이런 음식 돼요?", "호박전 매콤하게 돼요?" 등의 요구도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그날에 재료만 있다면 가능하다.

가맥집 오랜 단골들

저녁 7시쯤 가게는 이미 단골로 북적였다. 모두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자 오랜 단골이었다.

1층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단골은 중년 남성 4명이었다. 두부김치와 굴전에 막걸리 한 병,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있었다. "주로 언제 오냐"는 질문에 이들은 "심심하면 오지"라고 했다. 가맥집을 찾는 이유는 "분위기가 편하니까, 술값이 싸니까"였다. 소주 가격은 2000원, 부침개는 4000~5000원, 비싼 안주 축에 드는 골뱅이 무침은 1만 2000원이다.

가맥집 2층에 있는 테이블에서 호박전과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소박한 한 상

술잔은 종이컵, 반찬은 김치, 안주도 흰 그릇에 투박하게 나온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도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허름하지만 크게 상관 없어 보인다. 어차피 격식차릴 것 없는 사이끼리 왔기 때문이다.

가게 아주머니들과 단골 대화도 끊이지 않는다. 단골들은 "벽시계가 죽어가니 약을 넣어줘야 한다"고 참견하고, 아주머니는 안주를 많이 시킨 손님에게 달걀 후라이를 덤으로 건넸다. 홀로 온 손님은 필자뿐이었지만 노릇노릇한 부침개를 앞에 두고 막걸리 한 잔을 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식품에서는 안주를 많이 시키면 덤으로 계란 후라이를 준다

북적대는 분위기였지만 가맥집에서 터질 듯한 큰 소음은 들을 수 없었다. 오후 6시에 왔다는 1층 손님들도 7시가 조금 지나니 자리를 파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라고 했다. 서울식품은 밤 10시면 문을 닫는다.

서울식품에 오는 단골들은 주로 중년층이었다. 그러나 꽤 구석진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젊은 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거북이슈퍼 들어가는 골목길

서울식품에서 멀지 않은 익선동 가맥집 '거북이 슈퍼'는 주연령층이 20~30대다. 이곳도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북적였다. 가게 주인은 충청남도 공주 구암리가 고향이라는 28세 청년 박지호 씨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가맥집 거북이슈퍼

얼핏 보면 카페 같을 정도로 허름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가 났다. 거북이 슈퍼도 있을 건 다 있다는 실제 '슈퍼'다. 슈퍼에 있는 젤리, 과자, 컵라면도 먹을 수 있고 냉장고에서 병맥주를 직접 꺼내먹으면 된다. 요즘 가맥집 대표 메뉴로 통하는 먹태부터 오징어, 쥐포 등 마른안주도 있다. 마른 안주는 주인이 한쪽에서 연탄불에 구워 소스와 함께 내준다.

실제로 슈퍼도 운영하고 있는 가맥집 거북이슈퍼

먹태 등 마른 안주는 연탄에 직접 구워서 내준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거북이 슈퍼는 박 씨가 고향에 있던 슈퍼를 떠올리며 만든 공간이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가게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담겼다. 그는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빠르기만 한 서울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거북이' 슈퍼로 지었다. 박 씨는 "예전의 나처럼 아직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년 사이에 단골도 꽤 많이 생겼다고 했다. 가게에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도 편하게 드나들었다. 한 중년 남성은 안주로 먹다가 남은 먹태를 비닐에 챙겨받은 뒤 가게를 나섰다.

가맥집에서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사람들

젊은 손님들도 대부분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가맥집을 찾고 있었다. 이날 만난 손님들 중 '신기해서', '이색적이어서' 가맥집에 왔다는 사람은 없었다. 동생들과 함께 온 곽재원(42)씨는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왔다"며 "소박하고 편해서 좋다"고 했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유(36)씨도 "안주가 조금 부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2차로 와서 괜찮다"며 "편하게 술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가격이 나오는 음식에 비해 특별히 싼 것은 아니지만 과자도 함께 안주 삼을 수 있어 가격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주인 박 씨는 "가맥집을 하면서 굳이 '시골' 느낌을 살리려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이 좋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정서"라고 말했다.

거북이 슈퍼는 평일과 토요일에는 밤 12시까지, 일요일에는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이곳 역시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고 가정집과 가까워 맥주 외에 거나하게 취할 수 있는 소주, 막걸리는 아예 팔지 않는다.

술 평론가이자 막걸리학교 교장 허시명 씨는 "약 15년 전부터 전주에서 가맥집을 봐왔지만 가맥집이 서울까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가맥집의 허름함은 한편으로는 '편안함'"이라며 "자유롭게, 가볍게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젊은층에게도 매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허 씨는 "가맥집은 요란하기 보단 바람이 살짝 부는 열린 공간, 마실같이 잠깐 나가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독특한 소스에 찍어먹는 먹태나 갑오징어처럼 저렴하면서 실한 안주도 장점"이라며 "수입 병맥주 등도 많지만 사람들이 꼭 특별한 술을 파는 곳만 찾아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하루를 마치며 시시콜콜한 수다나 떨고 싶은 날, 사람들은 가맥집을 찾아가고 있다.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