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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연합뉴스
 

"입술에 빨간색 립밤 바른 사람 자수해!"

지난해 11월 부산 A 중학교에선 다소 살벌한 풍경이 벌어졌다. '불시 외모 단속'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교사들 지시에 한 개 반 학생들이 모두 복도로 나가 일렬로 늘어섰다.

교사들은 학생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살폈다. 얼굴에 화장했는지, 입술에 밝은색 립밤을 발랐는지 규정에 맞는 스타킹을 착용했는지 등을 확인했다. 

화장 여부가 긴가민가할 때는 학생에게 직접 얼굴과 입술을 닦아내도록 지시했다. 휴지에 색이 묻어나면 곧바로 체벌 대상이 됐다. 

이 학교는 같은 해 9월엔 한 학년 학생들을 학교 강당에 모두 몰아넣고 이 같은 불시 외모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경기도가 지난 2010년 처음 학생 인권조례(이하 학생 조례)를 제정하고 서울시, 광주시, 전라북도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지만. 아직 일부 학교의 '학생 인권' 인식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개성을 표현하려는 학생들과, '멋 부림'을 폭넓게 금지하려는 학교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서울시 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학생 인권교육센터가 2017년 1월 발표한 '월별 유형별 권리구제 접수 현황'에 따르면 '개성' 유형 권리구제 요청 건수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개성 유형 구제 신청'이란, 학생이 "우리 학교가 나의 외모나 복장을 부당하게 규제했으니 교육청이 바로잡아 주세요"라고 요구했다는 의미다.

이 조사에 따르면 2013년, 2014년에 조사된 개성 유형 접수 건수는 각각 30건, 11건으로 총 26가지 구제 유형 중 1위 ('기타 유형' 제외)를 차지했다. 2015년 조사에서는 30건으로 2위였으며 2016년에는 14건이 접수됐다.     

 

학교는 무엇을 근거로 '외모 단속'을 하는 걸까? 틴트를 바르고 학교에 가는 게 정말 나쁜 걸까?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외모 규제'에 대한 궁금증과 해답을 이해하기 쉽게 1문 1답으로 정리해 봤다.


1. 학생은 멋 부리면 안 되나요?


원칙적으로 '안 될 것'은 없다. 일선 학교에서 행하는 외모 규제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공식 조항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 업무를 총괄하는 교육부를 비롯해 각급 교육청도 구체적인 학생 외모 규제 지침을 두지 않고 있다. 


서울 지역 한 중학교 이모 교사는 "학생지도규정 등은 교육법 등 상위 규정을 참고해 일선 교사들이 학부모, 학생들과 합의해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즉, 학생 외모 단속은 공식적인 법률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교사는 학생 외모를 규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와 학부모 등의 요구로 만들어진 일종의 '불문율'인 셈이다.



2. 그럼 학칙에 "빨간색 립밤을 바르면 안 된다"고 쓰여 있으면 바르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 학칙 위반이다. 교칙은 학교와 학생이 함께 만든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특별시 학생 조례 19조에 따르면 "학생 또는 학생자치조직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안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학칙을 바꿀 때)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전체 학생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학내 공청회를 거쳐 그 결과를 반영하여야 한다"고 정해두고 있다. 

쉽게 말해, 학생들이 언제든 학교에 "부당한 교칙 바꿔주세요!"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가 "선크림은 되지만 비비크림은 안 돼" 등 학생에게 불리한 교칙을 정하려면 전체 학생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3. 선생님들이 가방 검사도 하시고 심하면 막 뒤져서 틴트, 고데기 이런 거 막 가져가세요!

 

조례 위반이다. 서울, 경기도 등 학생 조례에는 "교직원은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원칙적으로 학생 주머니나 가방을 마음대로 뒤져도 안 되고 그냥 빼앗아 가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교육청 학생 인권교육센터에 따르면 "구체적인 상담 내용은 비밀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지만, 학생 물건을 압수해 그대로 폐기하거나 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한 신고가 많다"고 밝혔다. 

인터뷰에 응한 정모 학생은 "빗이나 화장품을 빼앗아 학기 끝날 때 주신다고 하거나, 졸업할 때 주신다고 하며 실제로는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선생님과 친한 학생들이 가서 떼쓰면 돌려주는 경우를 봤는데 기준이 뭔가 싶어 황당했다"고 했다.



4. 학생 조례 그거 별거 없잖아요. 제가 교육청에 신고했는데도 별일 없었는데요?

 

학생 조례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관리하는 '학생인권옹호관'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학생인권옹호관이 조례를 지키지 않은 학교를 견제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권고 조치'다. 권고를 받은 학교는 이행 계획서를 작성해 교육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행 계획서는 일종의 '학교가 쓰는 반성문'인 셈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측에 따르면 "지적받은 학교가 제출한 이행 계획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이행 계획서 제출을 거부해도 실질적인 행정 규제를 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반론도 있다. 한 서울 지역 중학교 이모 교사는 "단위 학교 입장에서 교육청이나 인권위원회 등에서 내리는 권고는 엄청난 부담이다. 권고 내용대로 따르지 않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이어  "학생인권옹호관이 접수된 신고 내용을 자세하게 조사하기엔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학생의 일방적인 신고 내용이 조사 결과에 반영이 많이 되고, 학교는 충분한 해명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5. 그럼 어떡해요? 우린 계속 못 꾸미고 부당하다고 말도 못 해요?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학칙 컨설팅팀'을 운영해 올해 안에 학생 조례에 어긋나는 학칙을 모두 바로잡는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교육청 측은 "관할 내 학교나 학생의 요청이 있으면 컨설팅팀을 파견해 해당 학교 학칙을 살펴본 후 학생 조례에 어긋나는 학칙은 수정토록 할 방침"이라며 "일선 학교장님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학생들이 직접 학칙을 적극적으로 바꿔 달라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한 중학교 박모 교사는 "우리는 '동네북'이다. 교사들은 이미 정해진 규정을 집행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도 직접 학생들과 부딪히는 역할을 맡다 보니 온갖 욕을 먹는다. 교육청의 지적을 받는 것도 우리고 학부모의 항의를 받는 것도 우리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학생들이 학생회나 자치회를 꾸려 생활 규정을 바꾸도록 적극적으로 건의하면 학교 측에서도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지도할 수 있는 기준을 학생들이 나서 명확하게 정해주면 교사들의 부담도 줄어든다"고 했다.  


  
6. 우리가 규정을 바꾼다고요? 그런 건 어른들이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경기도 서울 등 학생 조례를 먼저 시작한 지역은 "학교·학생·학부모"가 적극적으로 학생 생활 규정 등을 정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례가 없는 다른 지역도 학생회를 이용해 각종 규정을 직접 변경하거나 수정을 건의할 수 있다. 

인천 지역 한 중학교 박모 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나서 규정을 바꾸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이다. 학생들이 나서면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린다. 학생들이 직접 학우와 학부모들을 설득해서 합의를 도출해내고, 이를 학칙에 반영하면 학생들이 꾸미고 싶은 만큼 외모를 꾸밀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교사로서는 외모 규제를 풀어주고 싶어도 풀어줄 수 없는 처지다. 조금만 느슨하게 학생지도를 하면 곧바로 학부모회 등에서 항의가 들어온다. 뜻 있는 교사들이 학생 전체에 설문 조사를 하면 '학생 생활 규정 현행 유지' 의견이 무시 못 할 수준으로 파악된다. 교사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목마른 사람'인 학생들이 우물을 파기 위해 두 발로 뛰는 것이 제일 빠르고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학생 인권단체 '아수나로'가 지난해 조사한 '서울 지역 여학생 용의 복장 규제 사례 모음' 209건 중 일부다. 학생들이 직접 응답했다.  

1. 검은색 스타킹에는 검은색 양말만, 살색/커피색 스타킹에는 흰색 양말만 신어야 한다.

2. "몸 라인이 드러나 야하기 때문"이라며 '치마에 주름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3. 선도부가 반마다 들어와 화장품이 든 파우치를 전량 회수하여 들고 나갔다.

4. 교복 바지는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맡아야만 착용할 수 있다.

5. 교복 길이는 치마 무릎 위 10cm까지만 가능하다. 선생님들이 자를 들고 다니며 직접 길이를 확인하신다. 교복 치마 주름을 수선한 걸 들키자 커터칼로 해당 부분을 뜯어냈다.

6. 색조 화장이 안 된다고 해 오일틴트(무색)를 발랐는데 압수당했다.

7. 남자 선생님이 입술에 화장품을 바른 여학생 손목을 붙잡고 지도실로 끌고 가 억지로 지우게 했다. 

8. 치마 길이 검사할 때 의자 위로 올라갔다. 선생님 눈높이에 치마를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9. 컬러 렌즈를 끼면 안 된다면서 직접 손을 넣어 빼가신 적이 있다.
 
10. 손톱이 길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았다.

11. 회색이나 흑백 색 신발만 신을 수 있었다. 브랜드 로고에 색이 있으면 검은색 마커 등으로 칠해야 했다.

12. 스타킹은 검은색만 되며 살색은 야하다는 이유로 금지당했다.

13. 압수한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넣고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한 경우가 있었다.

14. 압수된 옷을 돌려받지 못했으며 화장품의 경우 반성문을 썼음에도 돌려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꺼져' 등 욕설과 고함을 들었다. 자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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