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이라면 정준하도 이길 수 있다" 치킨동아리 '피닉스' 3인방

2017-04-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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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동아리 '피닉스' 멤버 3인방이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 부위를 들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치킨동아리 '피닉스' 멤버 3인방이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 부위를 들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신용수 씨, 최성욱 씨, 홍준화 씨 / 이하 손기영 기자

'치킨 동아리' 피닉스 회원들은 만나자는 요청에 대뜸 "치킨부터 먹자"라고 했다. 지난 18일 오후, 약속 장소는 서울 창천동 '크리스터 치킨'. 1996년 연세대 앞에 문을 연 전통이 있는 가게다. 가게 문을 열자 고소한 치킨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칭 '피닉스 정예 멤버'라는 홍준화(21·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3학년) 씨와 최성욱(20·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나타났다. 잠시 뒤 정장을 차려 입은 신용수(27·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졸업) 씨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취업준비생 신용수 씨는 스포츠캐스터 입사 시험을 치르고 오는 길이었다. 말끔한 외모와 달리 전설적인 '치킨 파이터'로 불리는 선배 회원이다. 신 씨는 지난 2월 치킨 업체 네네치킨이 마련한 '푸드파이터 대회'에 출전했다. 치킨 1마리를 5분 안에 먹어치워 우승을 거머쥐었다. "치킨 먹기라면 정준하 씨도 이길 자신이 있다"며 전투력을 뽐냈다.

신 씨는 치킨 덕후로서도 큰 야망을 지니고 있다.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유명 치킨 브랜드가 입점한 빌딩을 소유하고 싶다"고 했다.

홍준화 씨는 피닉스 회장이다. "치킨은 언제나 옳다"는 게 홍 씨 신조다. 평소 국내 치킨 역사 등에 대해 공부하며 치킨 관련 팟캐스트 방송도 한다.

신입 회원 최성욱 씨는 전공(경영학)을 살려 치킨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주요 치킨 업체 메뉴를 두루 먹으면서 맛·가격·서비스 장단점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최 씨는 "제주도 흑돼지처럼 방목해서 키우는 '친환경 닭'으로 치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경남 욕지도에서 먹은 '솔이네 통닭'을 평생 잊지 못할 '인생 치킨'으로 꼽기도 했다.

피닉스는 2013년 "치킨을 몹시 사랑하는" 연세대 학생들이 결성했다. 2014년부터는 다른 대학 학생이나 직장인도 회원으로 받는다. 현역 검사와 치과 의사도 회원이라고 했다. 올해 4월 기준 피닉스 회원은 30여 명이다. 8명은 여학생이다.

회원 가입 땐 면접도 한다. 치킨에 대한 애정을 자유롭게 어필하면 된다. 올해 한 지원자는 동요를 치킨 관련 내용으로 개사해 왔다고 했다.

동아리 활동 방식은 간단하다. 치킨을 같이 먹으면서 끊임없이 치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크리스터 치킨 인기 메뉴인 '꿀 마늘 치킨'. 꿀과 마늘로 만들어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난다

이날 만남도 치킨에 대한 대화로 시작하고 끝났다. 먼저 회원 3명은 '핫 치킨', '꿀 마늘 치킨', '크림 피넛 치킨'을 각각 주문했다. 신용수 씨는 순살 치킨, 홍준화 씨와 최성욱 씨는 뼈 있는 치킨을 좋아했다. 대화는 어느새 '순살 치킨 파'와 '뼈 있는 치킨 파'로 갈린 음식 결투로 바뀌었다.

신 씨는 "순살 치킨은 먹기 편하다"라며 "손에 치킨 기름이나 양념이 묻지 않고 쓰레기로 처리할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홍 씨는 "순살 치킨은 진정한 치킨 맛을 느끼기 어렵다"며 "보통 순살 치킨은 닭 다리살로 만드는데 뼈 있는 치킨은 가슴·다리·날개 등 다양한 부위를 먹을 수 있다. 치킨 각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라고 맞섰다. 최 씨도 "순살 치킨은 왠지 아이들이 먹는 치킨 같다"고 홍씨 말을 거들었다.

'수세'에 몰린 신 씨는 "그런데 후라이드 치킨보다 양념 치킨이 더 맛있지 않냐?"라며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홍 씨와 최 씨는 한 목소리로 후라이드 치킨이 더 맛있다고 했다. 홍 씨는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은 닭고기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며 "양념 치킨은 상대적으로 양념 맛이 강해 닭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신 씨는 양념 치킨에 대한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먹은 처갓집·페리카나 양념 치킨은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양념 치킨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치킨을 먹다 '음식 결투'를 벌이는 치킨동아리 피닉스 회원 3인방

치킨 이야기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피닉스 3인방은 각자 '최고의 치킨'을 꼽기도 했다. 홍준화 씨는 "국내 치킨 중 가장 바삭하다"라며 쌀로 만든 후라이드 치킨인 '쌀통닭'을 추천했다. 신용수 씨는 "향신료가 들어간 치킨이 생각보다 맛있다"라며 BHC치킨 '치레카'와 '커리퀸'을 꼽았다. 최성욱 씨는 편의점 미니스톱에서 파는 '점보 닭다리'를 추천했다.

피닉스가 유명해지면서 가끔 치킨 업체들이 새로 출시되는 치킨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피닉스는 BHC치킨 치킨 메뉴 '뿌링클'과 '치레카' 개발 과정에 참여해 냉정한 시식평을 했다. 실제 이들 조언은 제품 개발에 반영됐다.

장장 3시간에 걸친 '치킨 토크'는 내가 만들고 싶은 '꿈의 치킨'으로 마무리됐다. 최 씨는 "요즘 치킨은 단맛이 강한데, 단맛이 덜한 치킨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고추장 치킨'을 제안했다. 홍 씨는 "치킨 반죽에 할라페뇨를 잘게 썰어 넣으면 맛있겠다"라며 '할라페뇨 치킨'을 언급했다. 신 씨는 할라페뇨 대신 올리브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마리 치킨을 먹겠다"

'치킨 파이터' 신용수 씨는 이 말을 후배들에게 던지고 기자와 함께 치킨 집을 나섰다. 신 씨는 길거리를 걸으며 주변 치킨 맛집을 일일이 알려줬다. 지칠 법도 한데 여전히 열정은 불타고 있었다. 치킨은 피닉스 멤버들에게 '음식 그 이상의 존재'였다. 봄 바람 불던 신촌 거리는 고소한 치킨 냄새로 가득했다.

치킨동아리 피닉스는 연세대 앞 치킨 맛집으로 '치킨에 대한 욕구'를 꼽기도 했다. 맛과 분위기가 괜찮다고 했다. '빠빠빠 치킨'도 맛집으로 추천했다

home 손기영 기자 sk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