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휘몰아치며 눈물이..." 기자가 체험한 '최면 치료'

2017-07-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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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그거 다 가짜야" 기자도 이렇게 믿는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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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그거 다 가짜야" 기자도 이렇게 믿는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최면 요법을 이용해 16년째 미궁에 빠져있던 피살 사건의 새로운 단서를 찾는 걸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최면 수사를 통해 범인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 목격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최면 수사를 통해 범인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 목격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실제 최면 요법을 이용해 범인을 잡거나, 심리 치료에서 효과를 봤다는 사례들이 넘쳐났다. 직접 '최면 요법'을 체험해보고 싶어졌다.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빛 프로이드 최면 센터를 찾았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TV에서 자주 봤던 낯익은 얼굴의 공영일 교수가 상담실에서 나왔다. 공영일 교수는 10년 넘게 최면 치료를 해온 전문가다.

방금 전까지 다이어트를 위해 최면 치료 중인 고객과 상담했다는 그는 본인도 최면 다이어트로 10kg 가까이 뺐다고 했다. 언뜻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최면 치료 체험 이후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최면 치료에 앞서 성향과 감성을 알아보기 위한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나는 조용하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같은 30가지 문항에 맞다(○), 보통(△), 아니다(X)를 골라 표시했다.

공영일 교수에게 서류를 건네고 상담실로 안내받았다. 방 중앙에는 푹신해 보이는 1인용 소파가 놓여있었다. 일단 사무실 우측에 놓인 긴 소파에 걸터앉았다. 맞은편 책상에 앉은 공 교수는 서류를 훑었다.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최면 치료가 진행된 상담실 내부 모습 / 한빛 프로이드 최면 센터
최면 치료가 진행된 상담실 내부 모습 / 한빛 프로이드 최면 센터

서류에 무언가를 체크하던 공 교수는 "평화주의자시네요"라고 입을 뗐다. "내성적이지만 사람들하고 섞이려는 성향이 강해요. 논리적인 성향도 같이 발달했네요. 직업을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그 뒤로 공 교수는 기자가 가지고 있는 성향들을 줄줄 외웠다. 간단해 보이는 설문 문항들은 에니어그램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무의식 지표'라고 했다. 설문 내용과 함께 말투, 목소리, 행동, 반응 등을 종합해 피최면자의 성향을 판단한다고 했다.

최근 기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뭔가를 분주하게 하고는 있지만 계속 제자리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출근 중에도, 일과 중에도, 퇴근 후 집에서도 무료함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가 빠지길 반복했다. 공 교수가 내린 솔루션은 최면 치료를 통한 '자신감' 불어넣기였다.

본격적인 최면 치료에 앞서 자리를 중앙 소파로 옮겼다. 긴장한 탓에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이게 진짜 될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공 교수의 말에 따라 편안한 자세로 기대앉아 심호흡을 20번쯤 했다.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다 보니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렸다. 심호흡을 마치고 양손을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공 교수는 이제 몇 가지 테스트를 하겠다고 했다. 최면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운동쯤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양손이 천천히 붙는다는 말에 자석처럼 손이 서로 이끌렸다. 신기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신기하죠?"라는 말에 "네"라고 대답도 했다.

최면 상태에서 공 교수 말에 따라 두 손을 붙인 김준호 씨 / KBS '1박 2일'
최면 상태에서 공 교수 말에 따라 두 손을 붙인 김준호 씨 / KBS '1박 2일'

보다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공 교수는 기자 눈가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손바닥 움직임에 따라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가 '딱'하는 손가락 사인에 맞춰 눈을 감았다. 눈을 뜨려고 노력해보라는 말에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본격적인 최면 치료가 시작됐다.

시계를 떠올려보라는 말에 맞춰 동그란 시계를 마음속에 그렸다. 사무실에 걸려있는 까만색 테두리에 평범한 시계였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최근 가장 무료했던 기억으로 가봅니다"라는 말에 맞춰 최근 기억들을 더듬었다.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다음엔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더 먼 기억을 소환했다. 중학교 시절 과외를 하러 찾았던 친구 집 풍경이 떠올랐다.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가득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화가 나 있었고, 나는 어울리지 못한 채 친구들 주위만 뱅뱅 맴돌았다.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태어나 처음 거절을 당했던 기억'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과 불안함, 슬픔, 자책 등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치면서 눈물이 났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따뜻한 위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딱' 소리에 맞춰 이번엔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 신입생 시절, 와글와글 시끄러웠던 기숙사 생활을 떠올렸다. 친구의 엉뚱한 잠꼬대에 숨넘어가게 웃었던 기억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기억과 성취감을 느꼈던 기억 몇 가지를 떠올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그 느낌들을 온몸 구석구석에 퍼트렸다. 맨 처음 떠올렸던 마음속 깊이 있는 상처 받은 기억, 내 자신감을 갉아먹었던 기억들을 이 행복한 느낌으로 덮었다.

공 교수는 "이제 깨어날 때, 지금 행복하고 즐거운 느낌 그대로, 자신 있게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죠?"라고 했다. "그래, 난 할 수 있어!"하는 자신감이 솟았다. 다시 '딱'하는 소리에 맞춰 미소를 지은 채 최면에서 깨어났다. 금세 민망함이 몰려왔다.

눈물 자국을 닦으며 가장 처음 한 말은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갑자기 픽 쓰러지며 잠에 빠져들거나, "레드 썬!"하는 주문 같은 건 없었다.

내가 뭘 하는지, 상대가 어떤 말을 하는지도 다 인지할 수 있었다. 대답도 반응도 다 내 의지대로 했다. 현실적인 감각들은 흐려지지만, 깊숙한 곳에 있던 기억들은 오히려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굳이 평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비교를 해보자면 멍 때리면서 혼자 상상할 때와 비슷했다. 몸은 붕 떠 있는 것 같지만 생각하는 내용들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펼쳐졌다.

공영일 교수는 "최면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어떤 영화를 보면서 완전히 몰입하거나 집중해서 본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나. 그러고 나면 그 집중한 장면이나 대사는 생생하게 남는다. 그것도 일종의 최면 상태"라고 설명했다.

최면요법은 실제로 수사나 치료 방법의 하나로 널리 쓰이고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활동 상태에서 나타나는 뇌파인 베타파(β)를 세타파(Θ)로 바꿔내는 원리다. 세타파에서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긴장이 이완되면서 특정 사건에 대한 기억력이 증가한다.

미국에서는 1959년부터 최면을 범죄 수사에 활용해왔다. FBI 영구미제사건 전담반에서는 최면 수사로 약 60% 이상의 사건들을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19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최면 수사 전담 부서가 설치된 후 지금까지 활발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최면 수사로 납치 당시 기억을 되살려낸 피해자 / KBS '뉴스 타임'
최면 수사로 납치 당시 기억을 되살려낸 피해자 / KBS '뉴스 타임'

심리 치료 분야에서는 일상적인 스트레스 해소에서부터 트라우마, 공황장애, 우울증 등 중한 증상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공 교수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불안한 감정을 느끼고 불안한 행동을 한다. 그걸 의식에서 끊임없이 되뇌면서 심화가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학습이 된다. 최면 치료는 이 학습된 무의식을 최면을 통해 바꿔주는 원리다. 무의식에서 생각과 감정, 행동까지 변화하게 해주면 의식에서도 그런 부정적인 반응들이 줄어들면서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인 욕구나 의지는 모두 무의식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최면 요법으로 다이어트나 금연에 성공하는 사례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딱 한 번 해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 곳들도 있긴 하지만 증상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정신적인 부분은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쉽게 쌓아 올리면 쉽게 무너지게 되어있다"고 했다.

최면 치료를 통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마음 속 상처를 찾아낸 남성진 씨 / 네이버TV, E채널 '별거가 별거냐'

공 교수는 최면치료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평균 8~12번, 기간으로는 3개월 정도 투자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회당 비용은 전문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10~20만 원 사이다. 비싼 곳은 한 번 하는 데 200만 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 지방은 10만 원 선으로 형성되어 있다.

공 교수는 주의 사항에 대해 "최면은 누군가가 조종하는 게 아니다. 본인이 원해야만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특별한 부작용은 없지만, 반드시 전문가에게 받을 필요는 있다. 비전문가의 경우 싫은 기억을 마구 떠올리게 하는 등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 기억을 좋게 덮어주기 위해 적당한 장치와 방법을 아는 전문가에게 받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